1998년 8월 15일. 학생때였다.
그날은 특별했었다. 극장을 전혀 가지 않는 친한 친구 넷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로 한 날이었으니까.
그전에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영화 본것은 더록이었다.(이 영화는 몇번 재탕해서 봤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선택한 영화는 퇴마록. 당시 소설 퇴마록의 인기는 폭발적이었고,
우리 네 명 모두가 열렬한 팬이었다. 개봉일전부터 설렘을 안고 계속 기다렸었다.
안성기가 박신부래.. 현암을 신현준이 한데...추상미가 승희래.. 등등..
동네에서 딱하나뿐인 단관 영화관을 들어가기전까지는 참 즐거웠다.
부슬부슬 비도 내렸던거 같다.
그러나, 영화관을 나설 때의 우리 얼굴에는 실망감만 가득했다.
“앞으로 절대 한국 영화는 극장에서 보지 않겠다.”
우리는 하나같이 다짐했다. 악평을 쏟아내느라 바빴다.
우리가 생각한 퇴마록은 그곳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27년이 흘렀다.
우연히 들려온 소식. 퇴마록이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나온다고 한다.
솔직히 별 기대는 없었다.
애니로?
아동만화식으로 만들려는건가?
어설픈 3D?
편견으로 인한 한숨만 나왔다.
그러다가 용산에 리뉴얼된스크린엑스 갔다가 예고편을 봤다.
4면 스크린때문인가? 효과가 장난 아니라서 눈요기는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사운드가...
결국 예매했다. (용스엑 바이럴 아님..! 크크)
그때처럼 크게 기대는 하지말자.. 옛추억으로 보는거지..
그러다가 다른커뮤 VIp 시사회 후기글들을 봤다.
아 어차피 다음주면 보는데 기다리자...하다가
찾아보니 지난 주말에 영등포에서 프리미엄 상영회를 하더라..
그당시 멤버들과는 이제 다들 결혼하고 자기 삶을 사느라 바쁘지만 지방에 사는 친구를 빼고는
2명을 설득했다..... 우리는 다시 오랫만에 퇴마록 원정을 갔다.
다들 과거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며 기대는 하지 말자고 했다.
극장에 들어서자 생각과는 다르게 객석을 채운 것은 2030대 젊은 층이 아니라,
4050대의 관객들이었던거 같다. 우리처럼, 27년 전 퇴마록을 기다렸던 그때의 사람들이었을까?
마치 낡고 올드하고 오랜된 친구를 다시 만나러 온 듯한 분위기.
스크린이 밝아지고, 오랜 시간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퇴마록이
다시 우리 앞에서 움직였다.
나는 극장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을 살면서 딱 세번 봤다.
첫 번째는 대학생시절 강릉에서 열린 학보사 연수 때였다.
여름날,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개봉되어 전체가 연수도중 다같이 보러갔다.
영화가 끝나고 부원 한명이 일어서서 혼자 열심히 박수를 쳤다.
당시에는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안다. 그것이 찬사라는 걸.
두 번째는 용산 아이맥스에서였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극장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세 번째는 타인의 삶 재개봉 당시.
그날, 딱 10명도 되지 않는 관객중 한분이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 열렬하게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27년 만에 다시 만난 퇴마록.
영화가 끝나자마자 객석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도 모르게 손을 모아 작은 박수를 보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깔끔하고, 연출이 탄탄하며, 성우들에 열정넘치는 호연,기대했던 그 감정을 그대로 전해주는 작품.
그때, 실망하고 돌아섰던 우리에게 이제야 제대로 된 퇴마록이 보였다.
친구들과 아쉬움과 추억이, 그만큼 깊은 여운을 남긴 순간이었다.
아마 27년전 학생시절 친구들과 보고 싶고 기대하였던 퇴마록은 이게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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