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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보면 볼수록 당혹스럽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가절하하는데, 분명 내 눈에도 단점들이 보이긴 하는데, 왜 점점 빠져드는지. 요상한 영화입니다. 그만큼 요즘 이 시리즈의 세계관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일주일 간 총 세 번 관람했고 그 와중에 전편 <검은 사제들>까지 집에서 OTT로 오랜만에 감상했는데, 아무리 봐도 <검은 수녀들>이 전편에 누를 끼칠 정도의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 속편이라 보긴 힘듭니다. 오히려 전편의 세계관을 꽤나 충실하게 계승하고 무난하게 확장하고 있다는 생각 밖에 안 듭니다.
개인적으로 <검은 사제들>을 장재현 감독 작품 중 가장 낮게 평가하는데요. <사바하>와 <파묘>에서 엿볼 수 있는 심도 깊은 종교적 고찰과 강렬하고 묵직한 메시지보다 장르적 재미에 기댄 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오컬트 장르와 한국의 형사 버디물을 영리하게 결합해놓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필모 중 '장르 영화'로선 가장 돋보이는 성취를 이룬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서사적으로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취한 점, 구마 의식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는 클라이맥스 등이 눈에 띄는 장점입니다. 러닝타임이 후다닥 지나갈 정도로 늘어지는 장면 없이 잘 빠진 오컬트 영화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에 비해 <검은 수녀들>은 만듦새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존재합니다. 일단 서사적으로 짚어보자면, 선택과 집중에 있어 전편만큼 능숙하지 못한데요. 아무리 너그럽게 봐도 박신부(이진욱)의 서사적 구멍이 너무 큽니다. 부마자의 증상이 해리성 인격장애와 경계선 인격장애 같은 정신의학적 질환일 뿐 부마는 환상에 불과하다 주장하며 유니아 수녀와 팽팽하게 대립하는 초반부의 그럴싸한 빌드업이 무색할 정도로 중반부에 이르러 박신부의 캐릭터는 맥이 빠집니다. 치료를 위해 희준을 수도원에 데려간다는 전개부터가 뜬금없는데요. 더군다나 두 수녀가 뒤이어 도착할 때는 박신부가 이미 악령의 존재를 믿어버린 상태입니다. 그리고 악령의 입을 통해 어머니와 동생에 관련된 과거의 어떤 트라우마가 있음을 넌지시 드러내고 박신부는 두려움에 벌벌 떱니다. 문제는 그게 뭔지, 도대체 저 사람이 갑자기 왜 저렇게 반응하는지 관객은 도통 알 수 없다는 사실인데요. 원래 각본이 이런건지 러닝타임을 의식해 삭제한건지 확실친 않지만, 귀신의 존재를 다시 보게 되며 구마를 믿기 시작한 미카엘라의 서사와 마찬가지로 박신부 또한 심리적 변화를 납득시킬만한 시퀀스 하나는 반드시 삽입했어야 합니다. 다른 각도로 보자면 후속편을 의식하여 박신부 서사의 공백을 일부러 남겨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후반부에 난데없이 또 등장해 구마 의식을 주도하는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고선 두 수녀에게 성물과 함께 구마 권한을 위임하는데요. 구마를 믿지 않는데다 구마 서품을 받지 못한 사제가 구마 권한 자체를 가질 수 없는 수녀와 결국 한 배를 타는 전개를 통해, '모든 제약을 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살린다'는 주제의식에 힘을 실으려는 의도는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관객 입장에서는 그저 뜬금포의 연속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박신부의 쓰임새 측면에서 각본이 매우 아쉽네요. 꽤 공들여 다룬 미카엘라의 서사에 비해 유니아의 서사 또한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건 전편에서 최신부(강동원)가 구마 사제로 거듭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려 김신부(김윤석)의 상세한 서사를 과감히 생략한 이야기 구조와 일맥상통하기에 납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스토리텔링에 관련한 여러 장치들도 부족한 설명 때문에 겉도는 감이 있습니다. 특히 타로카드의 역할에서 설득력이 다소 미흡합니다. 타로카드에 카톨릭적 요소가 일정 부분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미카엘라 수녀가 타로점을 본다는 설정과 신성을 경험한 세 사람이 구마 의식에 필요하다는 스토리텔링을 위해 타로점이 활용되는 부분은 그렇다치더라도, 선무당 애동이 타로카드를 부적처럼 신성시한다는 설정은 아무리 봐도 개연성이 떨어지네요. 박신부의 포지션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살리는 데는 진심이 중요하다'는 주제의식을 뒷받침하고자 쓰인 장치라는 건 알겠으나 이에 관해 좀 더 살을 붙이고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만들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주요 성물인 '베드로전서'와 '베드로의 열쇠'에 대한 설명도 빠져있는데요. 전편부터 등장하는 '프란체스코의 종' 같은 경우는 전작에서 고대 수도사들이 숲을 지날 때 악령을 퇴치하기 위해 울렸다는 배경적 의미가 충분히 언급되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성물의 의미에 대한 언급이 생략되다시피 해 구마 의식의 밀도 마저 떨어뜨립니다. 확실히 각종 종교를 망라하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종교적 메커니즘들을 관객이 쉽게 섭취할 수 있도록 이야기에 녹여내는 능력은 국내에서 장재현 감독을 따라갈 크리에이터가 없습니다.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사탄이 사자같이 삼킬 인간을 찾고있으니 신에 대한 믿음을 굳게 하고 대적하라'는 내용이 기록된 '베드로전서'가 극중에서 구마 의식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역할을 하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넘겨준 구원의 권위를 상징하는 '베드로의 열쇠'가 두 수녀에게 구마 의식의 권한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그로 인해 비로소 악령을 상대하는 수녀들의 신성과 능력이 완전해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가장 큰 단점이라 생각했던 대사가 잘 안 들리는 문제는 아무래도 여러번 보다보니 어느정도 상쇄되는 데다, 일반관에서 자막의 비중을 높인 또다른 포맷으로 관람해보니 이해에 큰 무리가 없어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단, 대사가 전반적으로 문어체로 이루어진 나머지 종종 이질감이 듭니다. 그나저나 그토록 궁금했던 악령의 이름이 '가미긴'이었네요. 12형상 악마 중 말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서 물에서 죽은 영혼을 불러낸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면 유니아가 성물을 사용한 후 누워있는 희준 위로 검은 말의 형상이 떠오르는 장면, 물에서 온 존재임을 언급하는 효원보살의 대사와 더불어 굿판이 바다에서 벌어지는 점 등을 통해 악마의 정체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이제 보면 볼수록 저를 홀리는 이 영화의 장점들을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시각적 측면에서의 맵시 즉 때깔이 훌륭합니다. 화면의 구도, 배치, 조명, 편집까지 볼때마다 감탄하게 됩니다. 특히 인물의 신체를 걸고 찍는 '오버 더 숄더 샷'이나, 그와 마찬가지로 아웃포커싱을 활용하여 사물을 걸고 찍는 촬영 기법이 시종일관 눈에 띄는데요. 이를 통해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인물과 사물 뒤에서 피사체를 응시하는 듯한 초자연적인 분위기를 연출해냅니다. 또한 중반부 유니아와 미카엘라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투샷에서 조명의 활용이 상당히 인상적인데요. 의도적으로 미카엘라의 얼굴에만 조도를 높인 채 흔들리는 나뭇잎의 그림자가 투사되게끔 연출하여 의심과 믿음 사이에서 "검은 수녀"로 변모해가는 그녀의 정체성을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그 밖에 오컬트 장르의 외피를 한층 강화하기 위해 나열되는 이미지들도 다소 무의미하게 소모되는 지점들이 있긴 하나 전반적으로 사운드와 잘 어우러져 그럴듯한 장르적 분위기를 조성해냅니다.
과하다고 지적되는 PPL도 제가 볼 때는 접신으로 인해 단 음식(아이스크림, 탕후루, 콜라 등)에 집착하게 된 미카엘라의 서사를 뒷받침하는 장치(요즘 대세인 제로 콜라가 아닌 굳이 설탕 잔뜩 들어간 "오리지널 테이스트"를 선택하는 디테일까지)로 적절히 활용되는 것 같아 그다지 거슬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배, 커피, 컵라면 등으로 대표되는 유니아의 기호 식품들과 대비를 이루며 각자의 캐릭터를 부각하는 데 쏠쏠한 역할을 하고있지 않나 싶습니다. 후반부 구마 의식 전에 미카엘라가 사탕을 입에 물고 유니아에게 담배 끊으라며 잔소리하는 장면에서는 버디무비로서의 소소한 재미 또한 묻어나옵니다.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주제의식인데요. 메시지의 무게만큼은 전편을 능가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은 사제들>에서는 교단에서 조차 감추려들며 모두가 꺼릴 뿐인 구마의 사명에 자신을 내던지는 신부들의 모습을 통해,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음지에서라도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사회의 영웅들을 은근하게 조명하고 있는데요. <검은 수녀들>은 보다 직설적인 동시에 호소력이 짙습니다. '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살리는 것' 오직 그 하나의 가치에 영화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킵니다. 이는 전편에서 악령이 퇴치되었음에도 결국 죽음을 맞이한 영신(박소담)의 이야기와 대조되어 내러티브상의 보다 절실한 목표로 기능합니다. 비록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사람만은 살리라는 김신부의 당부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악령만은 제거하라는 장미십자회 측의 입장 사이에서 희준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는 유니아의 의지가 더욱 확고해집니다. 전편에서 최신부가 악령을 제거하기 위해 돼지에 가두어진 악령을 끌어안고 스스로를 물에 던졌다면, 이 영화에서 유니아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에 악령을 가둔 채 스스로를 불에 던집니다. 끝내 살아서 물 밖으로 걸어나온 최신부의 결말이 예수의 희생과 부활을 상징한다면, 유니아는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한 성모 마리아를 그 대척점에서 상징합니다.
약 2000년 전 결혼을 앞둔 처녀의 임신은 당시 유태인 율법으로는 돌에 맞아죽어 마땅한 중죄였습니다. 고로 약혼자인 요셉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이를 조용히 무마하고 파혼하려 했죠. 허나 마리아는 메시아의 희생으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즉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것이죠. 설령 자신이 죽임을 당하더라도 말입니다.
여기서 잠시 악마 가미긴의 관점으로 가봅시다. 신에게 대항하다가 쫓겨난 타락천사인 사탄은 신이 가장 애정을 쏟아 창조한 피조물인 인간을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이러한 심리적 바탕이 전편의 악마와도 동일한데요. 인간을 너무나 미워하기에 인간의 몸을 집어삼켜 고통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각종 사건, 사고를 일으켜 인간의 생명을 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특히 가미긴은 메시아 예수 뿐 아니라 그를 낳은 마리아까지 증오합니다. 마리아가 신에 대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무릅쓰고 희생하였기에 비로소 예수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니까요. 이것이 바로 가미긴이 여성혐오의 말을 쉴새없이 쏟아내는 근본적 이유입니다. 귀신은 대개 내면의 주파수가 맞는 사람에게 빙의한다고 하는데요. 영화 속에서 언급되진 않았지만, 아마 희준 또한 학폭에 시달리는 고통의 이면에 자신을 지켜주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자리하고 있었을거라 추측해봅니다. 결국 영화는 희준에게 있어 영적 엄마와도 같은 유니아를 통해 이 모든 것을 전복합니다. 악마의 머리를 밟을 뿐더러 희준의 상처받은 영혼까지 어루만집니다.
영화는 인류의 구원이라는 대의를 위해 마리아의 자궁에 예수를 잉태하는 것에 빗대어, 희준의 구원을 위해 유니아의 자궁에 악령을 가두는 역설적 접근으로 그녀에게 마리아를 투영하는데요. 비록 연약하고 병든 여성의 몸이지만 그에 깃든 모성을 원동력으로 사람을 살리는 여성의 숭고한 희생을 부각함으로서, 전편보다 한층 짙은 농도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리고 이는 귀태 즉 무당의 팔자로 태어나 수녀가 되었으나 사람을 살리는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또다른 여성 미카엘라와, 무당의 아들로 태어나 신내림 받았으나 부적 쓸 능력을 갖추지 못한 말더듬이 선무당 애동의 애타는 진심과도 연결되며 감정적 파동을 일으킵니다. 여러모로 약하고 부족한 "선무당"들이 똘똘 뭉쳐, '기도의 핵심은 진심'이라는 대사에 걸맞게 오직 진심 하나로 귀신을 때려잡는 이야기니 그것만으로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집니다. 고로 전편에 비해 단조로운 구마 의식 연출과 군데군데 존재하는 작위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야기의 맥이 풀리지 않은 채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불 속으로 찬찬히 걸음을 옮기는 유니아가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대천사장 미카엘의 이름으로 올리는 비장한 기도 역시 어찌보면 애동과 미카엘라, 그리고 자기자신을 나란히 투영하여 셋의 사명 완수를 위해 되뇌는 최후의 결의로 보여집니다.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죠.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인간은 이렇게나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나 푸릅니다...' 나지막이 읊조리는 그녀의 쓸쓸한 나레이션에 매번 눈물이 흐릅니다. 고통으로 가득한 삶, 신을 원망하고 부정하면서도 여전히 막연하게나마 그 손을 놓을 수 없는 저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신이 창조한 인간을 다시는 건드리지 못하게 해달라는 유니아의 기도가 웬지 가슴에 사무칩니다.
<검은 사제들>과 <검은 수녀들>을 아우르는 주제의식과 세계관을 전 진심으로 지지하고 애정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범죄도시> 시리즈 같은 프랜차이즈 시리즈로 쭉 뻗어가면 좋겠습니다. 전편을 다시 본 후에 봐서 그런지 몰라도 엔딩에서 깜짝 등장하는 최신부의 모습에 돌아올 사람이 당연히 돌아온 것 처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전편은 최신부가 마치 배트맨이 된 브루스 웨인처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진정한 "검은 사제"로 거듭나는 영웅담으로 봐도 무방한데, 그의 이야기를 그렇게 끝내기엔 너무 아까우니까요. 금기를 뛰어넘고 마침내 "검은 수녀"로 탄생한 미카엘라와 함께 또다른 사람을 살리러 떠나는 그들의 여정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렙니다. 제목은 "검은 사자들", "검은 성자들" 정도로 하면 되겠네요. 게다가 아직 퍼즐이 완성되지 않은 박신부의 서사와 선무당 애동, 그리고 유니아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귀태 희준의 역할까지 후속편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12형상 악마를 차례대로 다 만나며 시리즈를 지속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장재현 감독이 그동안 창조한 오컬트 유니버스 속 캐릭터들을 그대로 썩히기엔 아쉽습니다. <사바하>의 박목사(이정재)와 그의 조수(이다윗), 스님(진선규), 그리고 <파묘>의 무당 이화림(김고은)과 풍수사 김상덕(최민식) 같은 캐릭터들이 시리즈를 이어가며 크고 작은 역할로 다시 등장한다면 참으로 반가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장재현식 오컬트 세계관의 핵심은 '모든 종교와 문화가 융합하여 진실을 추구하며 인간을 살리는 것'이니까요. 결론적으로 <검은 수녀들> 역시 그 세계관의 일부로서 부족함 없는 작품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검은 사제들> 별점 및 한줄평:
●●●○(3.5/5) 장재현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장르 영화로서는 가장 매끈하고 간결하다.
☆<검은 수녀들> 별점 및 한줄평:
●●●(3/5) 영화 전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을 살리려 헌신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간곡한 기도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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