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쓴 노트를 노트북으로 옮겨 정리한 글이라 평어체로 쓰여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
며칠 전 프랑스 파리의 한 소극장에서 4K 리마스터링 된 <이치 더 킬러>를 보았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건 고등학생 때였다. 어둠의 경로로 파일을 다운받아 핸드폰에 넣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 몰래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충격을 세게 받았던 것 같긴 하다. 영화의 폭력 장면들이 10년 넘게 지난 후에도 떠올랐으니.
극장에서는 이 영화를 처음 보지만 다시 보니 영화 자체는 그렇게 충격적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말한다고 오해는 마시길. 이건 아마 내가 이 영화의 충격적인 장면들을 기억하고 있고, 내가 성인이 된 이후로 <쏘우> 시리즈나 <테리파이어> 같은 여러 고어 영화들도 봤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 영화의 폭력 장면이 주는 충격은 완화되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다시 보면서 영화의 텍스트를 조금은 더 잘 볼 수 있었고 그것에 대해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을 섞어 조잡한 글로나마 풀어보았다. 글에 두서가 많이 없는 편이니 유의해주시길.
<이치 더 킬러>는 뒤틀린 사도마조히즘의 기상천외한 가학적 폭력이 행해지는 엽기적인 타르타로스를 보여준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인상적’이다. 이 영화에서 투 톱 구도를 이루는 카키하라(아사노 타다노부)와 이치(오모리 나오)라는 인물들은 사도마조히즘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영화는 그들의 엽기적인 폭력을 날 것 그대로 전시하며 그들 각자의 ‘가학적 자위행위’를 보여준다. 왜 이들의 폭력이 자위행위냐면 가학과 성욕이 결합되어 있는 사도마조히즘의 특성 때문이다. 이들의 폭력은 성욕에 대한 충동과 연결되어 있다.
카키하라는 사도마조히즘적 사이코 같은 면모를 모두 모아놓은 듯한 인물이다. 극단적 폭력의 자극에도 무감각해질 대로 무감각해진 그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사이코패스다. 그는 보스의 실종에 관한 진실을 추적하며 그와 관련된 이들을 다짜고짜 고문하는데, 그는 필요 이상으로 엽기적이고 잔인하고 무시무시한 폭력을 큰 표정 변화 없이 무심하게 행한다. 반면에 또한 그만큼 자신의 고통에도 무심한 인물로 보이는데 자신의 행위로 인한 대가로 조직의 상관에게 자신의 혀를 칼로 잘라 바치지만 이내 그것은 큰일이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 사실 이러한 그의 폭력에 대한 무심함은 마치 마약 중독 상태와 비슷해보인다. 자극에 익숙해져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마약중독 상태와 같은 사도마조히즘적 쾌락에 대한 본능적인 충동으로 폭력을 즐기지만 극단의 폭력에도 익숙해져버린 폭력 중독 또는 극한의 자극에도 성적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자위중독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때문에 영화 중후반부까지 카키하라에게는 그러한 자극에 의한 희열감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이치를 추적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자신에게 죽음의 위협과 공포를 느끼게 해줄 상대이기 때문인데, 그 공포는 그에게 마조히즘적인 희열을 느끼게 한다.
반면에 이치는 자신의 가학적 쾌락추구에 대해 ‘죄책감 비슷해 보이는 것’을 느낀다. 그는 어릴 적 왕따로 인한 정서적인 충격을 겪었고 그 때문에 자폐증과 정서불안을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치의 죄책감이 자신의 성적 쾌락에 대한 충동을 유발하는 폭력성을 발동시키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는 점이다. 이 죄책감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극시키고 그 트라우마는 그의 성적 충동과 연결된다. 영화에서 이치가 진짜로 과거에 자신이 좋아했던 여학생이 강간당하는 것을 목격했는지, 그것을 보면서 정말로 성적 흥분을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자신의 기억이 최면으로 인해 조작되고 있고 그 최면을 거는 사람, 지지이(츠카모토 신야)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 이치를 가스라이팅한다. 그럼에도 이치에게 있어 그 기억은 그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살인자지만 한편으로 정서적으로 불안한 연약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기억에 관해 무엇이 진실이던 간에 그는 트라우마에 대한 저항으로 폭력성을 분출하며 그에 따라오는 성적 충동에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인물이다. 그러니까 이는 심리적인 마조히즘이다.
이치의 심리적 연약함에도 관객이 그에게 절대 연민을 줄 수 없는 것이, 그의 엽기성과 폭력성은 아무리 영화적 표현이라도 도를 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간당했던 여학생은 사실 내가 그녀를 강간하길 원했다”고 하는 말이나, 그 여학생이 자신을 다시 찾아왔을 때 (그녀는 카렌이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해 중국에서 온 불법 성 노동자로 보인다. 따라서 그녀도 이치가 강간당하는 것을 본 여학생이라고 스스로를 믿게 만드는 최면을 당해 이치를 찾아간 것이다) 자비롭게(?) 발목을 자르고 목을 자르는 것을 보면 이치는 카키하라만큼 반사회적이며 제 정신이 아니다. 그의 쾌락추구에는 사랑 따윈 없고 이기적인 자기연민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치도 자위행위만 하는 것이다. 대신 그는 카키하라와 다르게 정액을 배출하며 희열을 느낀다. 다만 자위행위 후의 허탈감과 죄책감이 희열을 금세 압도하고 그것들이 다시 자위행위에 대한 충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영화는 이들의 가학적 자위행위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 도덕적이라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들의 가학적 자위행위를 보며 카메라 스스로가 그들과 거리를 두며 희열감을 느끼지는 않는달까. 이는 이 폭력의 세계에 대한 냉소를 쏟아내는 하드보일드 느와르적인 주제를 위한 것이다. 이 주제를 강화시키는 인물은 바로 카네코(사부)라는 인물이다. 이 인물은 영화 속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매우 ‘평범한’ 인물이다. 그는 사도마조히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한때 경찰이었지만 총을 분실하여 경찰에서 해임되고, 그 이후 방황을 하던 날 조직의 보스로부터 도움을 받고 야쿠자가 되었다. 아내는 자신을 떠났으며 아들이 한 명 있지만 아들과의 관계는 서먹해 보인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생각에 심리적으로 괴로워하는 인물이기도 한데 그 때문에 그는 끝까지 카키하라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자신의 무능함을 이겨내기 위해 행동을 무리하게 하려고 한다. 도무지 이해불가능한 인물들 사이에서 카네코는 그나마 관객이 정서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인물인데 영화 후반부에서 그는 매우 비참한 비극을 맞이한다. 그 비극을 통해 영화는 엽기적 폭력의 희열이 관객에게 전이되는 걸 차단하려 하며 이 타르타로스의 자멸을 무심하게 그려낸다.
영화의 폭력 장면 스틸 컷을 삽입하려고 했으나 너무나 고어해서 결국에는 뺐다.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가 폭력을 묘사하는 태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이치 더 킬러>는 과연 폭력이 주는 희열감과 거리를 두는 데에 과연 성공했는가? 이 영화의 폭력 장면들의 충격적인 엽기성은 이 영화를 컬트 고어 영화로 평가받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 영화의 수위 높은 폭력은 관객이 폭력에 대한 거리감을 두게 만든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폭력의 이미지를 보고 싶어하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타르타로스의 자멸에 반하는 이 타르타로스의 엽기적인 전시는 이 영화의 명백한 모순처럼 다가온다.
미이케 다카시는 자신이 영화계의 마르키 드 사드가 되기를 원했던 것일까. 인간의 성적 욕구는 자연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강조하며 사회와 종교의 도덕적 규범을 도발하고 비판한 사드처럼, 미이케 다카시는 폭력과 성욕에 관한 비뚤어진 상상을 여과 없이 스크린에 날 것 그대로 펼쳐보이며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무의식적인 규범을 도발하려 한 것일까. 그에게 그런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1999년~2002년 사이에 만들어진 다카시의 작품들은 확실히 그 규범을 도발한다고 볼 수 있다. <오디션>의 후반부 고문 장면, <데드 오어 얼라이브>의 영화 자체를 엎어버리는 정신 나간 결말, <극도공포대극장 우두>의 기괴한 초현실주의, <비지터 Q>의 막장이라는 말로도 표현 불가능한 패륜 가족드라마를 떠올리면 그때의 미이케 다카시는 확실히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엽기적이고 도발적이다. <이치 더 킬러>는 그 당시 도발적 필모그래피에서 중심에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고.(개인적으로는 완성도 면에서 <오디션>을 가장 지지하지만.) 다만 그가 도발 자체에 희열을 느끼는 악취미를 가진 감독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특이한 취향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한 비타협주의 컬트 감독이었는지는 관객 각자의 판단거리다.
TMI. <이치 더 킬러>는 2017년에 4K로 리마스터링되었고 이번 주에 프랑스의 한 소극장에서 재개봉을 했다. 재개봉 첫날이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90석 정도 되는 상영관 좌석 수의 7-80%가 얼추 찼던 것 같다. 영화가 시작하고 제목이 나올 때쯤 되니 퇴장하는 관객이 한 명 있었다. 다른 관객들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남아있었는데 영화에서 정말 끔찍한 장면이 나와도 신음소리만 잠깐 내는 정도의 강심장들이었다. 내 옆에는 레즈비언 커플이 앉아있었는데 영화 보는 내내 키득거리면서 보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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