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이즈> 시사회 다녀왔습니다.
일단 언론 시사회가 어느정도 풀렸다는 것에 대한 정보만 듣고,
그리고 대략적인 소재만 가지고 순수하게 영화를 봤습니다.
솔직히 아무런 기대도 없었고, 그냥 저예산 시즌 치기용 호러영화 정도 생각하고 봤습니다.
그러나,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이 영화는 올해 신인감독상 혹은 음향상 확정 영화입니다.
그리고 저는 선언을 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가 만약 손기를 넘기지 못한다면,
단호하게 한국 극장영화의 미래는 없다고 판단하겠습니다.
예. 어떤 일정 부분에서 이 영화는 미쳤습니다.
제가 지금 쓰는 후기는 아예 스포일러를 제외한 내용이므로
보셔도 무방하지만, 아마 영화를 개봉하고 나서 보시면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설계해서 쓰겠습니다.
그럼에도 그것도 불편하신 분들은 표시선 밑은 보지 마시고 보시길 추천하고.
보신다면 반.드.시 메가박스에서 사운드 특화된 상영관에서 보셔야 합니다.
이 영화의 사운드의 중요성은 콰이어트 플레이스나 맨 인 더 다크 그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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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평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저는 생각 이상으로 놀랬습니다. 영화의 개연성에 무리가 없고, 크게 헛점이 없습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비록 영화적인 장치들이 있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접근법을 했다는 데서 일단 다른 영화와 비교의 궤가 다릅니다.
물론, 무엇이 우선이다라는 절대 이분법적인 사고는 아닙니다.
그것보다 “와 이걸 이렇게도 풀 수 있구나”라는 짜릿함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 분석은 후술하고,
일단 제가 극찬을 마지 않는 기술적인 부분을 말하겠습니다.
이 영화 <노이즈>는 사운드 설계가 미쳤습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할 수 있는 모든 사운드 테크닉이 죄다 들어갔습니다.
굉장히 디테일하고, 물론 딕션도 매우 잘 들립니다.
김수진 감독의 단편 <선>에서도 사운드가 매우 중요한 역활을 했는데,
이번 데뷔작은 정말 작두를 탔다는 생각 밖에 안 듭니다.
물론, 누군가는 기분 나쁘다, 귀가 아프다 이렇게 느낄 수 있는데
저의 주관적인 평가는 그 모든 테크닉이 이 호러, 스릴러, 서스펜스 장르와 공간 자체를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 면을 봤을 때 굉장히 영리하면서 훌륭한 선택을 했습니다.
김수진 감독처럼 신예 감독이 엄청난 저예산에
제한된 공간이라는 설정과 그럼에도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체감에 대한 고민으로
“사운드”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매우 탁월했습니다.
이런 예가 물론 해외에도 있습니다. “맨 인 더 다크”나 “콰이어트 플레이스” 같은 경우죠.
그런데 접근법은 완전히 다릅니다.
‘맨 인더 다크’나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경우 무음의 환경에서 소리에 집중하는 방식의
고전적인 서스펜스 방식입니다.
하지만 “노이즈”는 반대로 접근합니다. 매우 풍부한 사운드와 공간감 속에서
계속 이질감을 주면서
서스펜스를 만들어주는 설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설계나 일부 장면의 기법은 얼마나 뛰어나면,
소리만 듣고 있어도 관객이 영화속 공간에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더 나아가 주인공의
심리를 온몸으로 ‘체감’시켜줍니다.
여기서 ‘체감’이란 그냥 기분에 따른 ‘체감’이 아니라 정말 물리적인 체감입니다.
약간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특정 음역대가 충돌하면 생기는 ‘공명’ 현상을 이용합니다.
(이 현상을 응용한 것이 가상 7.1 서라운드죠)
그렇게 관객에게 “공명”현상을 음향으로 ‘직접’ 일으켜서
관객이 특정 감각을 몸으로 느끼는 것처럼 만듭니다.
묘사를 하면, 심봉사가 영화를 봐도 심리와 공간을 몸으로 알 수 있을 정도로 묘사를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사운드 디자인의 설계 영역을 넘어서 공학적 지식이 기반 되어야 합니다.
개념은 아주 오래전에 나왔는데, 이렇게 응용을 잘 한 작품은 처음 느낍니다.
물론 가스파 노예가 <돌이킬 수 없는>에서
이런 기법을 실험적으로 부분 사용한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아예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설계해서
이토록 구현했다는 것은 굉장히 인상적인 기법이고,
이 영화가 앞으로 잘될지 아닐지 그건 알 수 없어도
다른 작품에 분명히 영향을 줄 기법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이 기법을 영화의 공간과 장르에 융합시켰다는 점에서
신인감독인데 그 연출의 기예가 얼마나 뛰어난지 말해줍니다.
이 밖에도, 연출적인 부분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타이밍입니다.
이 영화는 고요하게 톤으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톤과 점프스케어가 혼합되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점프 스케어가 더 비중이 높은데, 타이밍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영화에 대해 불감증이 걸린 사람도 정말 깜짝깜짝 놀래킬 정도죠.
감독이 얼마나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얼마나 많은 영화들의 데이터에서 참고했는지 느껴집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스포가 되니, 이 정도로만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박자감을 상당히 독특하게 잡습니다.
이제, 각본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저와 견해가 완전히 다를 수 도 있습니다만,
저는 호평합니다.
결국 이 영화는 무섭느냐, 안 무섭느냐 가 영화의 목적입니다.
그랬을 때 결국 주관적인 기준이 그 결과를 가릅니다.
만약에 유신론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거나, 종교를 가지신 분이라면
이 영화는 의외로 안 무섭습니다.
다른 언론사 기자의 말처럼 “초자연적인”과 “호러”를 합친 기분만 들 겁니다.
유신론적,무신론적, 불가지론 기준이 작품에서 특히, 호러라는 장르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게 유신론적 기준으로 호러를 그리면 그것은 오컬트가 됩니다. “곡성”이나 “파묘”가 그 예이죠
하지만, 무신론 혹은 불가지론적인 기준으로 호러를 그리면 일종의 “코스믹 호러”가 됩니다.
이 영화는 제가 추측컨데 이 영화의 세계관은 무신론, 불가지론적인 세계관을 가집니다.
그래서 곰곰이 추론해보면 극에서 묘사되는 공포의 원인과 결과가 매우 뚜렷한 편입니다.
그러나, 그 뚜렷함이 가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거나 혹은 불확정성에 기반한 공포라는 “코스믹 호러”의 중요한 요소와
정확하게 어긋납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호러로 접근한 관객은 오히려 약간 이질감과 너무나 친절함에
공포감이 반감될 것입니다.
마치 무신론자가 오컬트를 보면 괴장한 컬트처럼 보이는 이유죠.
그래서 이 영화는 중간에 장르를 살짝 틉니다.
영리하면 영리한 선택이죠.
호러처럼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심리 스릴러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가 되니 최대한 생략하면,
결국 이 이야기는 무엇을 어떻게 인지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존재를 정의 하느냐에 대한 물음입니다.
모든 사건은 인과관계가 성립되고, 결국 극이 끝날 쯤에 관객에게 묻는 질문은
굉장히 날카롭습니다. 왜냐면 궁극적으로 존재론에 대한 물음이거든요.
매우 저는 흥미로웠습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소재에서 시작한
이 서스펜스 미스터리 스릴러의 물음이
결국 존재론적 질문이라는 점은 상당히 깊은 인상을 줬습니다.
아주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설계 되어 있어요.
조지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 혹은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을 기반으로 펼쳐진다는 가정으로
이 영화를 해석하면
이 영화에서 가지는 스탠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세계관은 우리가 인식하는 한에서만 존재가 인정됩니다.
그 특정 존재가 미스테리 한 사건, 특히 공간에서 나오는 사운드, 대사, 단서 등으로 논증 되면서 펼쳐집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그 존재를 어떻게 정의,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느냐에 대한 비유와 행동으로
영화는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결국 특정한 도구를 통해 “편향”적 인지를 합니다. 본능적인 행동이죠.
그랬을 때 주인공이 “인지하는 존재”를 정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의 연속으로 극은 이어집니다.
결국 그것에 대한 나름의 실용적인 해답으로 엔딩을 맺는다고 봅니다.
이런 면을 봤을 때, 홍보나 광고에서 주장하는 호러적 문법은 초반에 따르지만,
실질적인 세계관이 심리 스릴러입니다. 정신 분석학적 접근이죠.
그런 작품이기 때문에, 만약 순수한 오컬트 호러를 생각하신다면 꽤나 이질적이거나 김 빠질 수도 있고,
이런 장르의 변주를 충분히 숙지하시고 받아드린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딜레마와 생각할 꺼리를 주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제가 내용을 하나도 안 쓰고 최대한 묘사는 해야겠는데,
해석을 달자니 약간은 글이 꽤나 거추장스럽긴 합니다.
일단 보시면 이해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튼 이런 접근법에서의 물음 “과연 나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 라는 문장은
공교롭게도 영화 “곡성”에서 주인공이 가지는 딜레마와 비슷합니다.
둘이 차이점이라면 “곡성”은 유신론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오컬트 장르로 결국 주인공을 방관하지만 연민하는 방식을 가졌다면,
“노이즈”는 무신록적 혹은 불가지론적인 입장에서 세계관을 접근하고 심리 스릴러로 풀었으며 주인공을 긍정하는 엔딩이라는 해석을 가졌다는 부분입니다.
이런 면에서, 상당히 기술적인 뛰어난 기예를 가진 것을 봤을 때
김수진 감독은 아마 포스트 나홍진이 될 가능성이 매우매우 크다고 예측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찬사를 늘어놨으니 또한 냉정한 단점도 지적해보겠습니다.
일단, 가장 큰 단점이 장점이었던 사운드입니다.
저는 아마도 감독이 사전에 이퀄라이징 작업까지 한 음향시설이 준수한 상영관에서 봤기 때문에
영화의 매력을 100%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대한민국 상당수의 상영관은 음향 세팅이 엉망입니다.
그리고 아마 CGV의 질 떨어지는 지방관에서는 그 위에서 말한 공명이 구현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아예 성립이 안 되는 영화입니다.
마치 3d안경을 벗고 보는 3d입체 영화를 보는 꼴이죠.
더욱 현실적인 문제는 여기에서 터집니다.
저예산 국산영화를 위해 일일히 튜닝을 맞춰줄 상영관은 많지 않고 극장 재량에 맞춰져있다는 것이죠.
그만큼 이 영화는 사운드의 의존적인 영화입니다.
만약 이 영화를 그냥 OTT로 보신다면
감상은 아주 끔찍해집니다. 왜냐면, 넷플릭스건 어느 OTT건
자사 규격이 아닌 외부규격으로 세팅된 음향은 OTT제공사에서 강제로
컴플레서를 걸어버리니까요. 리버브와 공간감이 완전 박살이 납니다.
이런 기술에 대한 시장의 한계 또한 명확히 가지는 영화입니다.
물론 이런 부분은 엄밀히 말하면 극장의 무성의이니 영화에 대한 단점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냥 돈에 눈이 멀고 수익에 눈이 먼 극장을 탓해야죠.
그러므로 이 영화는 반드시 사운드 환경이 훌륭한 메이저 극장관에서 보시길 추천합니다.
저 같은 경우 오늘 시사회가 코엑스 메가박스 였는데 상당히 좋았습니다.
지방 프랜차이즈는 제가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 단점이 위에서 말했듯이
이 영화의 주관적이라도 해석을 하려면 칸트와 조지 버클리같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끌고 와야
설명이 됩니다. 이 말인 즉,
이런 것에 별 관심이 없거나 사전 지식이 없는 일반 관객, 15세정도의 정말 평균 지식을 가진
관객의 눈으로 보면, “대체 이 영화가 뭘 말하고 싶은 거지?” 라는 감상이 걸릴 수 있습니다.
즉, 이동진 같은 전문 평론가나 리뷰어의 해석이 없다면 굉장히 해석이 어렵습니다.
이야기가 어렵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는 꽤나 직관적이고 장르의 문법대로 갑니다.
그 안의 메세지가 꽤 복합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그리고 상당수가 메타포나 많은 복선으로
숨겨져 있기 때문에 해석 없이 직관적으로 보면 꽤나 요상한 영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직관적으로 깊은 철학을 간접적이라도 느끼게 해주는 글이 정말 좋은 글이라는 면을 봤을 때,
이 영화의 메세지는 다소 불친절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사회에서 밀접한 소재를 가지고 만든 대중적인 소재의 이야기가
정작 대중성과 떨어지는 화두를 던집니다.
그래서 관객은 “나한테 확 와닿지가 않다”는 감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흥행에서 리스크하고 판단합니다.
근래의 2020년 이후 흥행동향에서 장르의 재해석이라는 흐름을 넘어
이제 관객에게 텍스트로 일종의 공감,공론화를 일으키는 것이 요즘 콘텐츠의 트랜드라는 면에서
상업영화로서는 상당이 약점, 작가주의 영화에서는 강점으로 작용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단점은, 이 영화는 소재와 메세지. 그로 만들어진 세계관에서 시작한 영화입니다.
‘아이디어’ 와 ‘플롯’에서 만들어져서 그 것을 위해 캐릭터가 들어갔습니다.
그랬을 때 필수 불가결하게 생기는 것이 캐릭터가 도구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몇몇 캐릭터는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캐릭터가 도구적입니다.
이런 부분은 나홍진 감독에게도 자주 지적되는 부분인데,
마치 플롯을 위해서 캐릭터가 소비된다는 점이고 이로 인해 몇몇 문제점이 발생합니다.
바로 인상이 깊은 상징적인 장면이 적다는 것이죠.
이 부분은 상당히 흥행이나 상업영화의 문법에서 지적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나홍진 감독의 경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대사”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씁니다.
혹은 엄청난 노력을 들이고 돈을 들여서 미쟝센으로 극복하죠.
하지만, 이 영화에는 예산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쟝센으로 극복하는 데 한계를 가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산과 상관이 없는
‘대사’가 매우 스테레오에 가깝습니다.
‘대사’는 캐릭터의 변수이자 성격이자 상징입니다.
그래서 ‘대사’가 맛있어야 캐릭터와 배우가 삽니다.
은유나, 반어, 어투, 혹은 상징, 원라이너 등으로
맛있는 대사들로 캐릭터의 개성을 압축해줘야 하는 데
그런 부분에서 심각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의 불일치 혹은
분명히 입체적인 인물인데 꽤 스테레오한 표현으로 구현됩니다.
이런 부분은 말 맛이 살아있는 나홍진 감독 영화에 비하면 상당히 디테일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김수진 감독은 사운드 연출에 스탯치를 몰빵을 해서
아마 대사에 대한 스탯을 안 찍은 느낌입니다.
아주 냉혹하게 말하면 “쳇GPT가 만든 듯한 대사” 수준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차기작에서 대사만 전문적으로 보조작가를 두던지 하면서 극복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마지막 단점은 위에 장점에 서술 했듯이
가치관이 다르면 선듯 공포를 느끼기 힘든 세계관이라는 점입니다.
이걸 굳이 단점이라고 언급한 것부터 약간 모순적이지만,
어쨌든 관객 입장에서는 만약 유신론적 관점이나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초반에 공포를 느끼기가 꽤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만약 일반 스릴러나, SF혹은 판타지라면 이런 제약이 별 문제가 안 되지만,
어쨌든 영화에서 홍보하는 장르는 호러 스릴러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마케팅부분에서 꽤나 큰 리스크가 됩니다.
이렇게 장문의 리뷰를 쓴 게 오랜만인데,
이렇게 장단점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노이즈>는 매우 훌륭한 영화입니다.
한국의 근래에 신인 감독들 중에서는 단연 독보적이고,
제가 유명영화 감독을 끌어다 비교를 해야 할 정도로
기성 감독들을 능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특정 기술적인 기량은 매우 뛰어난 작품입니다.
앞으로 김수진 감독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지요.
흥행을 할지 안 할지, 호불호가 갈릴지 안 갈리지는 변수가 너무 많아서
그래서 손기가 넘길지는 선듯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확실히 김수진 감독은
장르적으로 자기 구역을, 파이를 먹고 자리 잡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역주행의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고, 소규모 회사의 반란이 생기길 바라지만요.
확실한 건, 충무로의 세대교체가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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