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마 시리즈 리뷰가 될 듯 하네요. ㅋ
이번편의 부제는 자유와 구속, 유목민들의 영역 갈등입니다. :)
어린시절에 건축과를 선택했던, 나중에는 건축에서 살짝 곁다른 길로 이주를 결정했던 옛 추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탄성/탄식이 종종 새어나왔습니다. 마지막엔 속으로 나즈막이 욕을 삼킬 정도로 감탄하게 되더군요.
실은 세속에서 벗어난 (다들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던) 종교적 휴양시설의 미학과, 도시 취약계층 밀집지역의 (어쩌면 다들 알고싶지 않을) 민낯/현실 까발리기가 제 관심분야입니다. 한 때는 온갖 건축사 수업을 다 쫓아다닐 정도로 역덕?이던 시절이 있었으나, 20년쯤 지나니 그 시절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기억이 다 침식되었기에 대강 눙친 설명임을 이해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이제는 단어도 잘 안떠오르고 뇌가 본격적으로 퇴행하기 시작하더라는... 크흡
다시 태어나야 하려나...ㅋ
"자신이 자유롭다고 오해하는 사람보다 더 절망적으로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은 없다" - 괴테
브루탈리즘이란? 1950~70년대에 유행한 모더니즘 계보의 건축양식으로 거대한 성채같은 민낯의 콘크리트 덩어리인 건축물을 떠올리시면 될 듯 합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엔 서울의 고속버스터미널과 종묘~남산을 잇는 남북축의 건물군인 세운상가가 있지요. (태생적으로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양식인...)
출처 : 서울역사 아카이브
이 브루탈리즘의 본류를 잠시 거슬러 올라가보면 영화 속 '자유의 여신상'처럼 '르 꼬르뷔지에'란 스위스/프랑스 건축가가 갑자기 팡~! 떠오르는 모더니즘에 닿게 되는데요. 모더니즘 건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린 건 주인공 라즐로가 공부했다던 독일의 예술학교, 바우하우스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인 매너/치장/형식 따위는 집어치우고 건축의 본질로 되돌아가 뼈대(특히 철근/철골구조), 살(콘크리트), 빛/숨구멍(유리)을 자유롭게 구성하려 했습니다. 무엇보다 건물의 하중을 벽(wall)이 아닌 기둥이 받치도록 구조를 바꿈으로써 자유로운 평면/바닥(plan)과 자유로운 입면/얼굴(facade)을 추구했지요. 이를 통해 최대한 효율적/합리적으로 인간이 살기 좋은 기계적인 건축을 꿈꾸었습니다. 때문에 20c 초반을 (희한하게도 요즘 우리나라에서 다시 유행하는) '계몽'(Lumières)주의에 따른 기계미학의 시대라 표현하기도... ㅋ
그러나 민낯 특유의 차가움(극T?)과 다소 파시스트(전체/원칙/근본주의)적이고 보편/표준화된 측면 때문에 오히려 개인의 다양성을 묵살한다면서 모더니즘을 새로운 억압/구속으로 여기는 흐름이 생겨났습니다. 이걸 포스트(post) 모더니즘이라고 하는데요. 즉, 표준화된 틀과 엘리트주의를 해체하고, 지역의 전통문화와 감성을 자유롭게 받아들여 앞으로 한발짝 더 나아가려는 반동의 물결이 일어난 것이지요.
마치 라즐로-해리슨(작용-반작용)의 관계처럼 모더니즘-포스트 모더니즘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기싸움을 하던 시기는 막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으로 넘어가던 때였습니다. 이 때 영국에서 시작된 브루탈리즘은 모더니즘의 기능성을 극대화시켜 값싼 콘크리트로 빠르게 전후 복구/재건을 할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동구권(소련 등)에서는 주로 모두에게 평등한 주택공급 측면에서 브루탈리즘을 활용하였고, 이로 인해 사회주의 건축양식이란 꼬리표가 따라붙곤 했지요. 한편 서구권(미국 등)에서는 오히려 이 양식을 주로 관공서나 대학, 도서관, 연구시설 등에 적용하면서 자본/기술력을 홍보/선전하는 거대한 랜드마크처럼 활용했습니다.
르 꼬르뷔지에의 프랑스 마르세유의 유니떼 다비따시옹(공동주택) / 인도 찬디가르의 의사당
러시아 모스크바의 부블리크(공동주택) / 캐나다 몬트리올의 해비타트-67(공동주택)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대학의 가이젤 도서관 / 미국 보스턴 시청사
그러다 80년대 포스트 모더니즘이 득세?하게 되자, 전후의 과도기에 유행했던 이 브루탈리즘은 결국 고압적/엘리트적이면서도 원시적/야만적/폭력적이란 혹평과 함께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점차 그 입지가 사그라들었습니다. 묘하게 해리슨이 라즐로를 강간할 때 뱉어낸 대사와 비슷하죠? (현재도 꽤 많은 건물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여하튼,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읽어들이는 시각에 따라 미래에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며 앞으로 나아가느냐에 대한 결정/진로가 크게 달라지게 되는 듯 합니다. (역사 교육이 중요한 이유...)
어쩌면 반쯤은 자유(自由)로운 선택으로 나아간 길의 결과에 구속 당하는 신세(身世)가 인생(人生)이지 않을런지...
영화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지키려고 기를 쓰지만 집/고향 없이 떠돌아다니는 민족, 즉 디아스포라입니다. 참고로 1막에 해당하는 시기(1947-1952)에는 UN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할계획이 수립되어 이스라엘의 첫번째 대통령이 이끌던 때였는데요. 이들에 비하면 미국은 전통이 다소 빈약한, 주로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을 내몰고 열심히 뭔가를 새로 짓고있는 나름 (먼저 된?) 신생국가인 셈이지요. 그리고 해리슨 반 뷰런은 자기집 앞뜰에 흑인(인류의 본산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나와 있는 것을 극혐하면서, 일종의 문명화라 할 수 있는 상류층의 매너/영어 억양으로 라즐로의 억양에 꼽을 줍니다.
한편, 초판본 덕후였던 해리슨은 라즐로+에르제벳 부부가 유럽에 있는 학교(현대건축의 본산지 바우하우스, 영어의 본산지 옥스포드)를 나왔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동경과 자격지심을 갖고있는 듯 하더군요. 초판본과 조부모(본산지)를 쫓던 그가 현대건축(고전건축), 영어(라틴어)에서 또다시 거슬러 올라간 본산지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고대로마)에 갔을 때, 거대한 세월의 흔적이 담긴 대리석의 질감에 홀딱 반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운명(destiny~!) 같은 일이었을지도요. 본산의 본산의 본산지에서 시간이 농축되어 그 자리에 견고하게 박혀있는 원석/자재(material)의 잠재력 가득한 존재를 마주한 것일테니까요.
(feat. 빛과 침묵의 건축가 루이스칸)
마치 거대한 성채같은 랜드마크(landmark)를 땅에 박는 건축의 이미지를 가진 이 <브루탈리스트>란 제목은 제 한몸(하중)을 온전히 이 곳에 뿌리내리지 못한 (잠재력을 가졌던) 유목민들의 신세와 대비되는 듯 합니다. 어쩌면 이 작품은 과거의 아픔 ~ 현재의 제약 ~ 미래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이동하고, 집을 떠나 타향으로 또다른 누군가의 고향으로 계속 이동하며 변화하는 과정 상에서 벌어지는 영역 갈등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feat. 철학자 들뢰즈의 탈/재영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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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의 환경에 대응하여 공간을 만드는 일 : 건축
"피난처가 되는 울타리, 울타리 없는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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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꼬르뷔지에(1887-1965)
"집은 살기위한 기계"
폴 루돌프(1918-1997)
극혐하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건축물이 철거당한...
안도 다다오(1941-) ★
빛과 (노출)콘크리트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5)
"기술이 끝나는 곳에서 건축이 시작된다"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
"적을수록 풍요롭다(Less is More)"
마르셀 브로이어 (1902-1981) ★★
"어떻게하면 이 곳을 망치는 걸 피할 수 있을까?"
루이스 설리번(1856-1924)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
"공간은 예술의 숨결이다"
루이스 칸(1901-1974) ★★★
"형태는 경이로움에서 비롯된다"
다니엘 리베스킨트 (1946-)
Q. 삶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울 때 바깥의 하늘을 올려다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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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관련해서도 수다 떨고픈 말은 너무나 많지만, 마감에 구속당한 몸이라... 일단 처음과 끝의 골조/뼈대(structure)만 잡아두고 인터미션을 가진 뒤, 다음을 기약해봅니다. ㅎㅎㅎ
[서막] 인간의 미래/욕망을 위한 (자위)도구 : 계획
▶"건축가는 상류층의 창녀다" - 필립 존슨(1906-2005)
....
[인터미션] 기억의 박제, 하모니의 순간포착 : still♥steel
▶ 한지붕 한가족을 이루는, 인생 갈림길의 증거
....
[에필로그] 베니스의 상인 : the 1st
▶ 미래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시 직격탄을 맞게될 지반 침식중인 도시
출처: 본인 브런치스토리
https://brunch.co.kr/@nashira/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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