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보는 영화, 무비포임입니다. 창작 시와 함께 영화에 여운을 더해보세요.
한국형 하드보일드 멜로 영화 [무뢰한]과
형사 재곤의 캐릭터성을 다룬 창작시 [무형의 이름]입니다.
아래의 OST와 함께하시면 더욱 풍부한 감상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At Dawn One Day - The soundtrack Kings
https://music.youtube.com/watch?v=mArnNa1M2no&si=nk3D4StTtvq7a3Dw
[무형의 이름]
저는 여기 항상 머물렀습니다.
나의 것을 지키며
혹은 견디며
언제나 그래왔듯
이곳에 멈추어 있었습니다
그런 내게
왜 당신은 조약돌이요,
곧장 나를 향해 몸 던지는 일렁이 되나
첨벙
소리를 내며
내게 뛰든 당신께
왜 나는 단지 물이요,
힘껏 받을 수도 안을 수도 없지 않은가
찰싹
소리를 내며
차라리 그대 내게
처량한 빗물이 되시오.
받아도 안아도 아무도 모른다면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
폭풍우에 휘말린 듯
당신이 빠져오는 그 형태를
그 조약의 이름
한낱 돌덩이뿐
나 순간 잊었을텐데
모른 척 품었을텐데
만약
그랬다면 나는
그러했다면
달랐을까
아니 달랐을까
아아-
아니오 당신은
빼쪽한 조약돌을 닮은
날카로운 빗물이었네.
이미 나는
속절없이
스며들고 있었네
형태와 무관한
마침내
무형의 이름이 되어
그렇게 당신의 시간 속에 얹혀가오.
비의 행패를 맞아가며
나 주저앉아가는 당신께
가만히
그저 가만히
무형의 삶을 덧씌우며
더러운 상처 위
또 다른 이름으로
비로소
나는
나의 경어조차도
창작시 [무형의 이름]은
영화의 후반부 재곤이 혜경에게 자신의 이름을 정정하며, 사랑하는 그녀를 속인 스스로의 과오를 뻔뻔하게 정당화하는 씬을 표현한 시입니다. 그는 혜경에게 접근하기 위해 위장한 언더커버 이영준이 아니라, 다시 형사 정재곤으로 나타나며 혜경에게 한 잘못을 모두 일단락시키고자 합니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재곤 또한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이 들었습니다. 있는 대로 마음이 동해버린 둘 사이는 쉽게 끊기기엔 너무나 많은 상처들이 닮았습니다. 영화 속 재곤이 "나는 내 일을 한 것이지, 널 배신한 게 아냐."라는 자조적인 대사를 뱉게된 것도 그 이유 아니었을지요. 이런 재곤의 회피 성향을 [무형의 이름]이라는 제목의 시를 통해 진득하게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시 속 재곤은, 자신이 혜경에게 마음이 동한 것을 혜경의 탓으로 돌리는 상당히 위험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멀쩡히 일하고 있는 형사 재곤을 "양아치" 이영준처럼 살고싶게 했는지, 잔잔한 그의 삶에 던진 조약돌처럼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는지를 혜경에게 묻고 있죠.
그러면서도 그녀의 사랑 방식이 물에 날아든 조약돌처럼 몸 던지는 것이 아니라 가랑비에 옷 젖듯 잔잔하게 스미는 것이었다면, 자신이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혜경을 몰아부치지 않았을 것이라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동시에 혜경이 잔잔한 사랑 즉 "빗물" 처럼 다가왔다면, 나는 혜경이 너를 더 오래 사랑했을 것이라 자존심을 부리는 그의 발악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재곤은 아아- 하는 탄식을 내뱉습니다. 혜경을 불법도청하며 알아낸 그녀의 따뜻하고 일상적인 모습들에, 그 스스로 빗물처럼 그녀에게 스며든 것임을 그제야 깨닫기 때문입니다. 결국 재곤은 자신이 어떤 이름을 가졌든, 혜경을 멀리할 수도 애초에 정의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 상념같은 사랑에 빠지죠.
어떻게 보면 [무형의 이름]의 주인은 재곤이 아니라, 스스로를 불러주기도 하던 가장 단단한 혜경이었던 것일 수도 있겠네요. 그녀는 조약돌이든 빗물이든 간에 스스로를 무어라 정의치 않고도, 절망을 헤쳐나가려 노력했으니까요.
이러한 재곤의 깨달음은 시의 말투 변화에서도 알아채 볼 수 있습니다.
초장의 재곤은 완전한 존댓말과 함께, 형사같은 딱딱한 경어체를 숨쉬듯 사용합니다.
하지만 혜경의 등장이 예상되는 2연부터는 자신의 진심을 쏟아내듯 불완전한 문장을 구사하고있죠. 마치 "그냥 나랑 같이 살면 안될까?"에서 와르르 뱉어낸 본심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모르던 감정을 깨닫고 아무도 없는 사랑의 구렁텅이로 빠진 마지막 연의 재곤은, 경어 즉 형사 정재곤을 잃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는 문장조차 마무리 짓지 못한 채 탄식합니다. 비로소 무형의 이름을 가진 그녀 혜경에게 자신의 죄를 확인받고 나서야, 그는 이영준도 정재곤도 아닌 무형의 이름 무뢰한이 된 셈입니다.
이름 잃은 그들은 사랑을 잃었기에 이런 결말을 겪은 것일까요 아님, 사랑을 잃었기에 이름을 잃은 것일까요. 무엇이 먼저이든 간에 영화에서도 시 속에서도, 두 단어가 하나의 의미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실한 것 같습니다.
출처: 본인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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