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란 작품을 수학적으로 해석해보는 독사과 같은 리뷰를 이어가던 와중에

분위기환기를 위한 인터미션용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후속편의 예고같은 성격이기도 한데, 전편을 읽고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


[독사과와 키티편]

https://muko.kr/column/3767469

https://muko.kr/column/3796947
 

[플롯편]
https://muko.kr/column/3459223

https://muko.kr/column/3486131

https://muko.kr/column/3714642
https://muko.kr/column/3714770

 


서론 밑밥

 

<인간에 대한 탐구>

사춘기 때까지만 해도 속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각하던 지극히 이상주의자, 평화주의자였던 저는... 

(마치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박보영 같은 발암 캐릭터가 되기 딱 좋은...) 

성인이 되자 ‘아... 세상엔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이 참 많구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대체 저 인간이 왜저러지? 도저히 사람 속을 모르겠다~’라며 현타가 오게 되었고,

어느 순간 전 더럽게 눈치가 없는 마냥 순진하고(naive) 해맑은 사람이 되어있더군요. 

그리고 ‘왜 이렇게 사람들 겉과 속 혹은 앞과 뒤가 다르지? 

이게 자격지심(complex)이 작동하는 원리인가?’란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되었습니다.

(엄청 사교적인 성격이지만 워낙 곰팅이처럼 둔한 편이라 정작 사회성 발달은 꽤 늦었던;;;) 

 

그러다 30대가 되어 회사를 뛰쳐나와, 방향 전환한 회사에서...

“나 또 호구처럼 개고생만 할까봐 여기선 까칠하게 좀 튕길래~”라며 지레 겁먹고 을 치자, 

한 선배가 “너 무슨 피해의식 생겼니?

예전엔 좀 과하게 밝았는데(컬러) 요즘엔 좀 어두워졌어~(흑백)”란 이야기를 했고,

그 순간 ‘엇? 나도 드디어 자격지심이란 게 생긴건가?

드디어 눈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제가 MCU에서 가장 아끼는 캐릭터는...

공돌이/공순이들의 이상향인 아이언맨/토니스타크와 컴플렉스 덩어리인 로키랍니다.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이 매력적인!! XD

때문에 인피니티워랑 엔드게임 때 거의 정신줄을 놓았지요. 

 

 

 

<철학과 수학>

수학에서도 복소수 즉 실수(real)와 허수(i)가 결합된 ‘복소수(complex)’ 란 건... 

철학적/심리학적인 측면과도 밀접한 이름인데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이야기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데카르트가...

바로 이 허수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곱하면 역설적으로 음(-)의 실체가 생기는 이 말도 안되는 수의 개념은 그리스에서부터 있었지만,

여기에 상상 속 이미지 같은(imaginary) 숫자라며 ‘허수’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지요. 

(이름을 불러주면서 꽃이 된 숫자 :D)

 

그리고 바로 자격지심으로 만들어낸...

자신의 그림자, 페르소나 같은 그 역설적인 속성 때문인지 (feat. 칼 융) 

허수가 결합된 복소수에는 복합성이란 뜻의 ‘complex’란 이름이 붙었습니다.

뜨개질처럼 함께 엮어놓은 복잡한 것이란 뜻으로

‘com-(함께)’ + ‘plex(접은)’ 이란 라틴어 단어를 조합해 만들어졌지요. 

(데카르트 말년인 1650년 쯤에 첫 등장!)

 

어찌보면 몸과 마음이 따로 나뉜 실체라며 심신이원론(Dualism)을 주장했던 데카르트가

허수, 컴플렉스란 숫자의 개념을 만든 건데요.

나중에 그의 이원론적인 사상을 엄청나게 싫어한 심리학자/정신과의사가 칼 융이었고,

역설적이게도 무의식과 관련해 컴플렉스란 단어를 정신분석학적으로 가장 잘 활용한 게

진이 좋아하는 융이라는...

그리고 실수+허수가 결합되어 작동하는 원리는... 

모순된 속성을 갖는 인간의 심리랑 묘하게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본론 / 영화 속의 등장인물과 수학 

 

<등장인물1 : 오피와 상호작용>

많은 수학자들이 철학자이기도 한 것처럼... 

개인적으로 오펜하이머란 영화에는 수학적인 원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철학이 담겨있다 생각합니다.

특히 모순/역설을 수용하면서, 이성적으로 완전하게 이해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 양자역학은...

닐스 보어가 강연했듯이 세상/인간을 새롭게 이해하는 법과 매우 밀접하거든요.

 

이 영화에는 오펜하이머를 둘러싼 수많은 과학자와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마치 흑백의 그림자처럼 처리해서 

주로 메인 플롯의 바깥에 있던 스트로스의 영향력이 가장 강력하더군요.

그는 자격지심이 발동해 오피를 자기 방식대로 상상해서 이미지화를 시킨 인물이기도 합니다. 

 

과 키티라는 두 여성은 오피의 인간/과학자로서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진은 오피의 쾌속이혼-결혼을 보고, 

“와우~ 겁나게 문명화 됐구만!”(how civilized)이라 말하며, (자막이 오역이라 생각하는...)

주변의 인간관계(community)를 놓치지 말라고 하지요.

이건 나중에 히틀러가 죽자 트리니티 실험에 현타가 온 직원들의

문명과 기술장치’란 모임과 관련이 있어 보이더군요.

그리고 키티는 사회실험의 일종인 공산주의(Communism) 이념을 일컬어...

헛된 것(nothing)이라 정의했는데요.

나중에는 진의 자살로 인해 오피가 방황을 하자...

“이 자쉭아 결과를 앞두고 있는데, 정신 똑바로 차려!”(there are consequences)라며 

과학자로서의 오피를 다그칩니다.

 

또한 질량이 있는 물질/별★(인간?) 부근에서는 시간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느려진다는... 

상대성이론을 설파한 아인슈타인이 굉장히 임팩트있게 등장합니다.

참고로 시간(time)이란 건 실체가 있는지에 관해 과학계에서 논란이 분분하며, 

일단 매개변수(t)로 주로 활용됩니다. 마치 16년, 17년,... 18년처럼요. 

 

텔러는 핵폭탄 개발이란 오피의 길을 뒤따라 걷지만,

그와는 추구하는 바가 갈리며 거대한 (force/power)에 제대로 꽂힌 인물입니다. 

은 오피가 가볍게 취급한 존재였으나 윤리의식이란 면에서 나중에 추구하는 바가 비슷해지는,

다소 동떨어진 별세계에 위치한 의외의 인물이었구요.

개인적으론 그가 스트로스의 청문회에 등장했을 때 흐르던 기묘한 ost의 분위기 때문에

마치 나비효과와 같은 제3의 인물이라 느껴졌는데요.

나비효과-비선형방정식의 카오스이론은...

고전역학(결정론), 양자역학(확률론)과는 또 다른 세계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슈발리에는 오피의 과업/이상과 인간성/현실을 모두 이해해주는 친구로서

비록 대기점화 계산식의 실체는 몰랐지만 이를 공유하도록 꼬드깁니다.

오피의 인생에서 예상치 못하게 가장 치명타를 날린 인물이기도 하지요.

마치 확률  near 0이 곧 0은 아닌 것처럼요. 

그로브스는 과업을 같이하지만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진 현실적인 군인이면서  

그를 지켜주는 단단한 방패막 같은 느낌입니다.

마치 고정된 상수값처럼요. 

자꾸 오렌지를 건네는 라비는 오피가 인간적으로 너무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훌훌 털어버리게 만드는 소중한 친구 같더군요. 

로렌스는 오피가 너무 순진(naive)하게 굴자,  

과학자로서 그의 무거운 위치를 일깨워주던 도움이 되는 동료였구요.

즉 두 친구/동료는 인간/과학자로서의 오피의 질량을 변화시키는 인물 같았습니다.

 

오피가 여러 인물들과 하는 상호작용은 

의외로 양자역학의 두가지 방법인 행렬역학과 파동역학에서...

차원이나 변수가 상호작용하는 속성들과 굉장히 닮아있습니다.

어떠한 크기다. 어디쯤 위치한다. 어디로 얼만큼 움직였다. 쟨 작용 (안)한다. 쟨 으로 작용한다.

쟨 잡아끈다/밀어낸다. 쟨 중재한다(time). 쟨 갈라선다. 쟨 합쳐진다. 쟨 뭐하는 놈인가?

쟨 자칫 터질 수도 있다. 쟨 의외로 꾸준히 쉴드친다. 

얜 이 정도에서 꿀렁거린다. 얜 꼭지가 돌아버린다. 

그리고... 얜 시간에 따라 경로를 거슬러 올라간다! 등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양자역학에서는 결과값이 정확히 안나오고...

그저 이럴 확률이 있다거나, 어딜 통해서 전파(through) 했다가 계산끝! 이랍니다. 

청문회에서 키티의 대사인 ‘난 그건 대답 못하겠는데~?’ 와 ‘through~!’가 킬포인트지요. 

마치 한 길 사람 속처럼 인간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확신을 갖고 이건 어떻다 쉽게 판단할 수 없고, 

그 삶의 상호작용과 인과관계경로들을 완벽히 알아낼 수 없다가

현재까지의 양자역학적 결론일 겁니다. :)

 

 

<등장인물2 :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그 외 영화 속 등장인물 중에서는 맨하탄 프로젝트 내의 과학자들보다...

오히려 밖에 있는 닐스 보어하이젠베르크와 괴델이 눈에 띄었습니다.

닐스 보어는 제가 완전히 꽂혀버린 인물인지라, 

이 작품이 상보성(상호보완)의 원리에 따라...

오펜하이머란 인물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모두 표현한 영화란 느낌을 받게 했습니다.

오피란 인물을 다루는 플롯 가운데 앞부분 2시간은 

마치 하이젠베르크/대수학의 행렬역학(입자성)으로 한번 풀어보라고 이끌어주는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트리니티 실험이 끝난 뒤의 1시간은

슈뢰딩거/미적분학의 파동역학(파동성)으로 해석해 보라는 떡밥이 소소하게 눈에 밟혔습니다. 

(요건 써보려하는 중... 문제는 분열/융합과 관련된 미적분학은 기억이 전혀 안남. ㅠㅠ) 

 

참고로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통해 

위치와 운동량이란 두 가지를 한 번에 모두 다 측정할 수는 없다며... 

과학적 이해력의 한계를 이야기한 인물입니다. 

쿠르트 괴델은 ‘불완전성의 원리’를 통해

수학적으로 이게 이더라도 그걸 다 증명할 수는 없다며 

수학적 이해력의 한계를 이야기한 인물이었구요. 

 

무엇보다 양자역학의 확률론적인 세계관은 (God)의 유무,

즉 고전역학의 결정론적인 세계관과도 매우 밀접한 과학인데요.

하이젠베르크와 괴델 두사람 다 신의 존재를 탐색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모르겠다’를 주장한 두 인물이 ‘그러니까 신이 없다고도 있다고도 확신할 수 없겠다’란 생각에 

오히려 신을 찾아보려한 게 아닐런지...

 

참고로 아인슈타인이 ‘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고 해서, 

유대인이니까 마냥 유일신을 믿는 유신론자일 거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듯 한데요.

그는 오히려 이신론자(신은 자유방임중?)거나...

범신론자(신은 우주우주함?)에 가깝지 않을까란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게 너무나 궁금해서 다들 어떻게든 둘의 통합이론을 만들어보려고 기를 쓰는 것 같기도...

 

그런데 만약 양자역학에서 허수가 낀 컴플렉스를 적분(핵융합)하는 제타함수 ζ 의 비밀이 다 풀리면?!! 

<테넷>처럼 결정론적 세계관이 두둥! 하게될 겁니다.

과연 자유의지는 의미가 있는 것일까? 란 논란이 일게 될 거라는... 

그리고 만약 결정론적인 세계관이 맞다면? 

블랙홀 상상씬 직후에 키티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건 헛된 것(nothing)이란 정의’가 (true)으로 판명날 수도 있어요. 
오피가 말했듯 다시금 고전역학의 세계관으로 환원되는 것이지요. 

 

막판에 핵융합이란 자막이 떴던 스트로스의 청문회가 끝나고난 뒤, 

마치 시간이 앞으로 갔다가(물가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났을 때) 

뒤로 갔다가(노년의 오피, 먼 미래의 지구종말) 했던 것처럼...

적분 끝에 우주 최초의 초기값을 알게된다면? 

만물의 확정된 경로를 <테넷>처럼 이리저리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거든요. 

 

     

 <입자와 파동 / 행렬역학과 파동역학 / 이산성과 연속성> 

전 영화의 앞부분이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을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원자의 을 둘러싼 전자의 궤도가 정수로 똑똑 떨어지는 것처럼...(이산성: 셀 수 있음) 

오피의 인생을 파편(particle)적으로 툭툭 끊어서 띄엄띄엄 보여주더라구요.

그리고 저처럼 정리벽이 심한 인간은 이렇게 어지러진 것들을 보면, 

희열?을 느끼며 싹~ 정리해버리고픈 욕망에 휩싸이게 됩니다.

 

특히 용아맥에서 1.43:1 IMAX 확장비가 유난히 이상하게 튀는 장면들이 자꾸 관측?되길래... 

기억나는 속성만 쭉 적어보니 이게 묘하게 으로 접힌 하나의 처럼 보이더라구요.

이건 선형대수학/이산수학에서 다루는 행렬(matrix)과 비슷한데요. 

이산성만 쏙쏙 뽑아다 한번에 이쁘게 쫙~ 엮어서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느낌의 수학입니다. 

(참고로 하이젠베르크는 이산성을 대표하는 악기인 피아노를 잘쳤다고...)

 

그리고 트리니티 실험이 끝난 뒤, 키티에게 지시하듯 이불/대수학의 악보(sheet)가 걷히자

영화는 슈뢰딩거의 파동역학을 닮은 듯 했습니다.

마치 빛을 포함한 모든 물질들이 꿀렁이는 파동(wave)의 성격을 가진 것처럼 

오피의 요동치는 내면과 삶의 궤적을 탐색하는 듯 하더군요.

대체 언제부터?라며 그의 연속성을 알아보는 질문이 유난히도 많았습니다. 

오피는 대답을 우물쭈물 오락가락 하구요. 

 

또한 오피가 상호작용하며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이 청문회로 모여들고,

이들은 각기 다른 대답을 내놓습니다.

스트로스는 “내가 말야 어떻게 을 짰냐면~”하고...

오피와 관련된 역사(history)를 주욱~ 읊어줍니다.

즉, 뒷부분은 오피와 스트로스의 양쪽 청문회를 미친듯이 왔다갔다 하면서 

미분(핵분열)과 적분(핵융합)을 완료해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행렬에 비하면 마치 현악기스럽게 상대적으로 모호하게 꿀렁이면서...

서로 관계가 엮이는 게 슈뢰딩거의 파동역학 느낌입니다. 

함수(function)를 가지고 오피가 각각의 인물/주제들과 반응하면서 변화하는 양상을 보고(편미분),

어디서부터 어떻게 움직인건지 경로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도 하구요.(선적분) 

 

영화의 ost 음악은 주로 현악기(연속성)가 이끌고, 

건반악기(이산성)는 이를 보조하는 듯 했습니다. 

이산성도 피아노보단 하프나 신디사이저로 부드럽게 표현한 것 같더라구요. 

마치 오피가 하이젠베르크와는 가는 길이 엇갈렸다고(paths crossed)한 것처럼요. 

(이 발언을 포함해 자막번역이 아쉬운 게 꽤 많긴 했습니다. 

다만 이게 수학/물리학적으로 통용되는 어휘들이란 것까지 다 챙기기는 쉽지않을 듯한...)

 

 


결론 / 무언가를 수학적으로 파악하는 법?

맨처음 두 청문회를 시작할 때 오피는 모욕하기 전에 맥락(context)을 이해해달란 이야기를 하고,

스트로스 쪽에서는 인생을 정당화(justify) 해야하는건 불쾌하겠단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저는 수학/과학적 측면에서 질문과 반박이 엄청 중요한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오피의 청문회에서 검사 롭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던 것처럼요. 

(눈치력이 약해서 직접 속을 툭 터놓고 대화하는 게 편한...)

 

<핵분열>

- 쪼개면서 실체의 변화와 경계값을 파악하는 것 = 미분

- 분해해서 각 실체의 확률과 고유값/벡터를 파악하는 것 = 행렬의 성분

 

그러나 스트로스의 청문회에서는 질문이 별로 없습니다.

재판장보단 보좌관이 주로 질문을 던지며,

스트로스는 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계속 자기가 판단을 내리고 대답하고 있지요.

참고로 결정하다란 뜻과 밀접한 ‘determinant’

함수에서는 결정요인이란 뜻이기도 하고 행렬식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핵융합> 

- 쌓여갔던 결정된 경로와 초기값을 파악하는 것 = 적분

- 연산해서 결정된 평면과 스펙트럼을 파악하는 것 = 행렬식의 곱

 

솔직히 싸우는 걸 싫어해서 뭔가를 좋다/나쁘다로 함부로 평가내리는 걸 겁내던 저는

건축설계 배울 때 비평(critic)을 끊임없이 받으면서, 

내 주장을 명확하게 어필하는 게 꽤 힘들었습니다.

(얘 말도 맞고, 쟤 말도 맞네~하며 중립을 지키려하는 편인...)

교수가 됐든 선후배 동기가 됐든 “이건 왜 이래?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라는 

공격적인 질문이 계속 들어오고,

전 그럼 답변을 고민하면서 방어하기 위한 자료들을 준비해야 했거든요. 

(아아... 수학에서도 증명은 더럽게 싫어했었는데...) 

 

제가 봐도 이상한 거 같으면 계속 뜯어고치고 

진리? 비스무레한 것들을 끊임없이 탐색해보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요.

심지어 밤을 꼴딱 새서 힘들게 만들어온 모형을...

바로 칼로 썰어버리거나 확 뒤집어버리는 과격한 교수들도 있었던...ㅜㅜ

 

때문에 성향?엔 잘 안맞더라도 나중에는 논쟁(argue)하는 것 자체가... 

더 나은 그럴듯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름 덕질형 인간이라 상대가 납득할 때까지 증빙자료 잔뜩 찾아서 들이밀며, 

물고늘어지는 편이기도 하구요. 

(유들유들한 줄 알았더니 은근 똥고집이란 얘길 듣는 편?) 

대신에 다른 증거가 나오면 우와아~! 그렇네~ 하고 바로 깨갱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문득 양자역학이 순식간에 발전한 것도...

그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계속 “난 못받아들이겠는데 ?”라며... 

딴지 걸어준 덕분이었겠단 생각이 드는군요. 

 

개인적으론 댓글을 받으면 그걸 설명하기 위한 답변을 준비하는 식으로 다음글의 아이디어를 얻었는데요. 

(이를테면 엘리멘탈의 두 원소의 궁합편은 원래 전혀 계획에 없었던...

예전에 딴데 있던 글도 밑에 달린 다른분들 댓글이 소중해서 도저히 못지우겠더라는...) 

 

그런데 오펜하이머는 내용이 수학적으로 너무 막 나가서 그런가, (하긴... 글이 넘 토나오게 길긴 한;) 

댓글이 잘 안붙어서 속상해하던 차였습니다. 

그러다 이전글에서 섹스씬의 체위를 두고 제가 융의 아니마/아니무스의 결합같단 뻘소리를 하자, 

융의 아니마와 관련해서 너무나 멋진 반박/논쟁 댓글이 달렸기에 기분이 좀 UP됐습니다. :)

 

무코님 댓글을 요약해보자면, 

이 영화를 융의 이론으로 굳이 보면 

이 작품은 1인칭이기 때문에... 진보다는 오피가 자신의 아니마의 여러측면 중, 
그가 읊고 있는 힌두 여신 칼리의 매혹적이면서도 어둡고 파괴적인 측면에 대해서

처음으로 상징적 이미지로 대면한 거였고, 

야심적인 키티는 오피의 그 측면에 추진력이 되었다는 멋진 의견이었습니다.

실은 이 글은 무코님에 대한 답례로 쓰게된 거라는... 

 

이번 편의 주제 : 댓글은 사랑♥입니다. ㅎㅎㅎ :) 

 

 

출처: 본인 브런치스토리

https://brunch.co.kr/@nashira/27


profile Nashira

밀리터리, 역사장르와 아드레날린+광활한 풍경+저음 사운드를 사랑하며,

건축+도시, 음악영화에 관한 글을 쓰곤합니다. 

https://brunch.co.kr/@nash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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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olby3 2023.09.25 20:02
    도입부까지 열심히 읽었는데 본론이 이제 시작이라는 것 보고 우선 댓글부터 달러 왔습니다ㅋㅋ
    무코님글이 굉장히 양질 이라는 것은 부정 할 수 없지만 문과인 저로선 영화로 치면 예술영화 한편 보는 기분입니다ㅋㅋ
    나름대로 각잡고 읽어야하고 시간을 할당해야해서 바로바로는 아니지만 추후라도 하나씩 읽으려구요ㅋㅋ
    늘 양질의 글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우선 30일 시사회 보고 오겠습니다ㅋㅋ
  • @dolby3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Nashira 2023.09.26 03:09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D

    솔직히 독사과편은 위험할 수 있겠다 생각했었습니다. (접어야 하나 고민을 좀...^^;;)
    아무래도 전 수학적인 어휘를 편하게 사용하는 곳에 있었다보니, 이게 한국어처럼 자연스럽지만...
    이걸 평소에 전혀 안쓰셨던 분들 입장에서는 어휘가 생소해서 완전 외계어 같을 거란 생각을...ㅜㅜ
    실은 어느정도 독이 주입됐는지 감이 안잡혀서 동료들한테 실험해봤는데

    마지막으로 수학배운지 10년만 넘어가도 토나온다며 퉤~ 뱉더라구요. ㅋㅋㅋㅋ

  • Fabelman 2023.09.27 12:29
    파란색이나 다른 색으로 단어 강조 안하면 읽기 훨씬 편할것 같아요. 잘 읽고 있습니다.
  • @Fabelman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Nashira 2023.09.27 19:43

    오? 의견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주요단어를 튀게 하는게 가독성을 높일지
    아님 반대로 넘 정신 사나울지가 늘 궁금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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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선착순 이벤트 불판 [1] update 아맞다 2024.05.18 2390
5월 20일 선착순 이벤트 불판 [7] update 아맞다 2024.05.17 4234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강을 건너간 목소리+힘의 선택-2 (독수리 그리고 창 / 스포) [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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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1 2228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美 대선을 앞두고 정치를 담다-1 (이름 어원 / 스포 / 제목수정) [32]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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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9 4219
[키메라] 이탈리아의 정치역사 풍자극-2 (엑소더스/<파묘>와 상징 비교/스포) [2]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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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5 1714
[키메라] 이탈리아의 정치역사 풍자극-1 (태양의 나라/<파묘>와 상징 비교/스포) [15]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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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3301
[파묘] 어쩌면 진짜 하고픈 이야기? (은어와 참회, 아이들과 <땅에 쓰는 시>/스포) [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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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2 3800
[파묘] 영화 속 음양오행 해석-2 (동티와 역사의 파동, 불과 쇠의 <엘리멘탈>/스포) [2]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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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9 3327
[파묘] 영화 속 음양오행 해석-1 (우주공학도 지관 딸의 시점과 <천문>/스포) [6]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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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5 4621
<삼체> 벌레의 차원을 넘어서라 [1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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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1 11198
<듄: part2> 액션은 어디로 갔는가? [43]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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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4 159783
[가여운 것들] 이름들의 어원과 나의 창조자인 부모(스포) [2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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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2 158195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스포 후기 [16]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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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8 17320
<듄: 파트 2> 리뷰 - 모래 위에 피로 쓴 신화 (스포일러) [2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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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15628
<파묘> 무엇을 그리 서둘러 덮으려 하시었소 [38]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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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8 11750
<추락의 해부> 몰락한 것들에 대한 재판 [18]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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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0 7135
<도그맨> 흑화한 강형욱 [2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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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1 17984
<외계+인 2부> 의외로 세심한 캐릭터의 액션 [16]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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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3 19406
<괴물>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10]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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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5 30647
<플라워 킬링 문> 살인의 일상화 [16]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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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4 117171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새엄마는 엄마가 아니잖아 [73]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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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7 126799
<화란> 어둠이 어둠을 건져 올릴 때 [14]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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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3 4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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