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ko.kr/4218045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첨부


d342b96ac48c18fff81983675b4ad7ab.jpg

 

벌써 20년이 넘도록 은퇴를 번복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아마 그의 최고 문제작이 될 듯하다. 난해하다는 평가부터, 최고라는 극찬까지 사람들의 해석도 제각각이다. 심지어는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도 시사회에서 "나도 무슨 얘긴지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언급을 했다. 그만큼 이 애니메이션은 작가주의적 성향이 짙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은 숨겨진 뜻을 해석하려 들지 않고 그가 그동안 만들어왔던 애니메이션처럼 동화를 보는 기분으로 따라가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이세계물일 뿐이다. 그래도 역시, 이야기는 통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싶어지는 것들 투성이다. 특히 가장 중심인물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이 이야기는 스튜디오지브리, 나아가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를 상징하는 이야기들로 꽉 차있고 그 안에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언과도 같은 작품이다.

 

 

3eadb159-2c0c-4348-8ff0-a585d2a018b9.jpg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린 시절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장부였지만 결핵으로 평생 병원신세를 져야 했던 어머니와, 군수공장으로 비행기를 만들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의 대부분 애니메이션에는 그래서 마더 콤플렉스, 강인한 여성상, 20세기 초 전투기에 대한 로망 등이 가득하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인공 마히토는 엄마가 있던 병원이 불타 엄마가 돌아가시고, 도쿄대공습을 피해 시골 공장 근처로 이사 간다. 이 애니메이션은 그곳에서 몇 년을 보내는 도중, 집 근처 신비한 탑과 집 근처에 사는 왜가리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렇게 도쿄대공습을 피해 공장 근처 시골집으로 이사 가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시골집으로 가서 이상한 세계로 가는 이야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첨언하자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실제 어머니는 병원이 불타 일찍 돌아가시진 않았고 오래 사셨다.

 

군수공장으로 비행기를 만드는 아버지가 그대로 나오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마을의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애니메이션은 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최대한 전쟁에 대한 언급이나 일본의 피해를 강조하진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자해를 했는데도 다른 아이들이 그랬을 거라 철석같이 믿는 아빠가 일본 정부를 대변하는 듯하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가져와 집안에 늘어놓는 비행기의 유리덮개들은 줄지어있는 유리관 같은 모습이다. 이렇듯 자국민들도 죽음으로 내몬 전쟁의 실체를 은근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실제로 종종 일본의 제국주의가 타국에 남긴 상처를 비판했고, 군수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를 전쟁부역자라 부르며 싸우기도 했다.

 

 

수정됨_https_kr.hypebeast.com_files_2023_08_shueisha-miyazaki-hayao-new-movie-the-boy-and-the-heron-still-cut-unveiled-info-14.jpg


스승과 친구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시대적 상황이 상황인지라 드러나는 정도일 뿐이고,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그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사람, 미야자키 하야오의 스승이었던 타카하타 이사오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프로듀서이자 대표이사인 스즈키 토시오에 대한 이야기다. 스즈키 토시오가 개봉 전 했던 인터뷰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왜가리는 스즈키 토시오 본인이다. 자신과 했던 대화들이 그대로 애니메이션에 녹아있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고 한다. 

 

스크린샷 2023-10-27 163019 복사3.jpg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즈키 토시오는 애증의 관계다.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쥬>의 기자였던 스즈키 토시오가 미야자키 하야오 특집기사를 내려고 찾아갔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가 무시하며 문전박대한 일은 유명하다. 마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끈질기게 마히토를 찾아오는 왜가리와 흡사하다. 왜가리가 이상한 유언비어를 떠들고 다녀서 죽이고 싶어 하는 것도 비슷하다. 스즈키 토시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 만든 <게드전기> 홍보를 할 때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이야기'로 홍보해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분노한 적이 있다. 여러 루머와 안 좋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스즈키 토시오가 지브리 초창기 작품들을 히트시킨 프로듀서임에는 분명하므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일생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걸 알고 애니메이션 속 마히토와 왜가리의 관계를 살펴보면, '자기 길을 가려는 감독'과, '감독을 속이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고 이용해먹기도 하는 프로듀서'의 밀당이 느껴진다.

 

스크린샷 2023-10-27 163019 복사2.jpg


또 애니메이션 속 큰할아버지는 타카하타 이사오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토에이 동화'입사 선배로, 애니메이션에서 영화적인 내러티브와 훌륭한 미장센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타카하타 이사오가 감독한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으로는 <반딧불이의 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추억은 방울방울>, <이웃집 야마다 군>, <가구야 공주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내러티브가 잘 잡힌 미야자키 하야오의 20세기 작품들은 전부 타카하타 이사오가 조언을 하거나 참여한 작품이다. 그만큼 그는 애니메이션의 이야기와 구성 미장센 등의 균형을 잘 맞추는 사람이었다. 그는 <원령공주>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그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오로지 자기 멋대로 내달리는 작가주의적 작품이 되는 건 그래서다. 이것을 알고 애니메이션 속 큰할아버지의 대사나 행동을 잘 살펴보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를 얼마나 존경했었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제작 도중 사망했다.

 

스크린샷 2023-10-27 163019 복사.jpg


인터뷰에는 나오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탑 안의 세상에서 만나게 되는 키리코는 그의 그림스승이었던 천재 작화감독 오오츠카 야스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브리의 채색 담당인 야스다 미치요라는 이야기도 있다)키리코는 불꽃이 나오는 막대기로 선을 그리며, 그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 오오츠카 야스오도 단순한 그림 스승이 아니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험난한 애니메이터 인생을 이끌어준 선배이기도 하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aebad74429bf410369ba197fdff1828a.jpg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
숲으로 들어가 사라진 마히토의 새엄마 나츠코를 찾기 위해, 마히토는 탑으로 들어간다. 불에 타 죽은 마히토의 엄마가 살아있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계속하는 왜가리를 따라서. 그 탑은 원래 우주에서 떨어진 물건으로, 아주 이상한 것이라고 한다. 큰 할아버지는 그 밖에다 건물을 만든 것이라고. 탑의 속 안으로 빨려 들어간 마히토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기이한 일들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젊은 시절의 엄마와 하녀 키리코도 만난다. 탑 속의 세상 역시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이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스즈키 토시오와 타카하타 이사오의 인연을 담고 있는 만큼 이 세계가 <애니메이션의 세계> 그 자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처음 도착했을 때 마주하는 황금문에는 '나를 배운 자는 죽는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거대한 무덤이 있다. 애니메이션 업계는 상업미술 업계 중에서도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같은 사람을 수없이 반복해서 그려야 하는 일, 움직임을 물리적으로 이해하고 관객에게 이해시키도록 변형해서 멋있게 만드는 일, 내 그림이 아닌 그림을 수천 장씩 그려야 하는 고통, 그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중노동이다. 심지어 박봉. 나 역시 디자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므로 그 고통을 어느 정도는 안다. 

 

내가 대학생 때, 같이 날밤새며 과제를 해 추레한 모습으로 과실을 나서는데 원서를 내러 오는 학생들이 보였다. 난 친구들과 이렇게 소리쳤다. "여긴 지옥이야! 도망가려면 지금이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오는 황금문의 문구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어리둥절하는 마히토는 펠리컨들에게 떠밀려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된다. 가지고 온 유일한 무기인 활은 다 망가져버렸다. 그래, 그렇게 멋모르고 이 업계에 들어오게 되는 거야. 게다가 그 망가진 활처럼, 네가 기존에 배운 건 다 쓸모없거든. 다시 배워. 애니메이션을 배운다고? 넌 이제 죽었다.

 

젊은 키리코는 '와라와라'라고 하는 생명을 돌보고 있다. 이 세계에서 그가 하는 일은 무덤을 지키는 것과, 와라와라에게 먹을 것을 팔아 그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돕는 일이다. 애니메이션은 그런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게 생명을 주어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 반복된 그림 몇 장을 그렸을 뿐인데, 그 그림은 살아서 움직이고 뛰어다닌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스승인 오오츠카 야스오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애니메이션의 진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생명을 창조하는 것만큼 숭고한 일이다. 비록 그 일을 배운 너는 죽겠지만. 응.

 

수정됨_https_kr.hypebeast.com_files_2023_08_shueisha-miyazaki-hayao-new-movie-the-boy-and-the-heron-still-cut-unveiled-info-11.jpg


그러나 이 세계에도 위험한 존재가 있다. 펠리컨들과 앵무새들이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먹어치우는데 몰두한다. 펠리컨은 먹을 것이 없다고 해서 생명인 와라와라를 먹어치운다. 앵무새들은 뜨거운 숨을 훅훅거리며 사람을 잡아먹는다. 펠리컨은 갈라파고스화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를 상징한다. 후대 양성의 실패, 보수적인 정치환경, 국내 내수만으로도 돌아가는 경제, 오타쿠 문화의 확산 등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침체되게 만들었다. 와라와라처럼 생명력 있는 애니가 태어나는 것을 갉아먹는다.  80~90년대만 해도 정말 독창적이고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을 많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예전 황금기 같은 애니메이션이 거의 없다. 또한 제살을 깎아먹는 업계는 스튜디오 지브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수많은 재능 있는 애니메이터를 키워냈지만, 정작 모회사나 제작사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만 감독으로 원하기 때문에 제자들이 감독으로 데뷔할 기회를 주지 못했다. 결국 스튜디오 지브리는 늙고 죽어가고 있다.

 

앵무새는 남의 말을 따라 하는 존재다. 큰 덩치에 식욕에 침잠되어 훅훅거리는 모양새. 앵무새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토록 혐오하던 오타쿠들과 흡사하다. 앵무새들은 '애니메이션을 배운자'즉 애니메이터들을 먹이로 삼는다. 그들의 삶을 갈아 만든 모에화, 먹잇감에만 관심이 있다. 작업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업계가 똑같은 성적 모에화 대상물만 만들게 한다. 그리고 오타쿠는 대체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남이 만든 것에 열광하고 남이 만든 걸 보고 만드는 2차 창작(팬픽)에 열광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오타쿠를 치가 떨리도록 싫어했다.

 

 

제목 없음-1.jpg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
하지만 이런 위태위태한 세상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균형을 맞추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큰 할아버지, 타카하타 이사오다. 돌들을 깎아 만든 블럭을 아주 세밀하게 쌓아 만든 균형. 타카하타 이사오의 애니메이션은 그런 느낌이다.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그 블럭을 물려주고, 이 세계, 애니메이션의 균형을 지키게 하고 싶다.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멘토로 참여했던 작품들은 망상이나 상상보다는 현실적인 내러티브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달한다. 하지만 잉꼬대왕, 오타쿠들의 대왕은 성격이 급해서 그 유산이 전달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한다. 결국 블럭을 쪼개버리고, 큰할아버지가 유지하던 세상은 무너져버린다.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 못한 유산은 사라져 버린다. 스튜디오 지브리도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물려받지 못해, 지난 9월 닛폰 테레비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사람들은 타카하타 이사오에게 미야자키 하야오가 많은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하지만, 둘은 연출방향 자체가 다르다. 타카하타 이사오가 참여하지 않은 후기작들이 급격히 망상적인 작가주의적 애니메이션으로 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도 타카하타 이사오가 물려주려고 한 것들을 다 물려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듯하다. 큰 할아버지가 물려주려고 한 블럭들 중, 그 난리통에 한 개만 겨우 가지고 나왔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지브리 스튜디오, 미야자키 하야오도 이전 세대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지 못한 불완전한 세계였던 셈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제 자신의 친구와 스승들이 죽어가고 자신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마땅한 자신의 후계자가 없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스튜디오 지브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자신의 블럭을 펠리컨과 앵무새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팬들은 또 다음 세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럼, 미야자키 하야오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느꼈던 생명과 감동을 느껴야 할까. 이것에 대한 답은 바로 새엄마 나츠코와의 일화가 말해준다. 마히토는 엄마가 죽고, 엄마의 동생이라고는 하지만 새엄마로 들어온 나츠코와 데면데면하다.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새엄마를 엄마로 인정하고 엄마라고 부르는 일은 쉽지 않다. 마히토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나츠코는 이미 아버지의 아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나츠코가 숲 속 탑 안으로 들어가 산실에 들어가 힘들어하고 있는 장면은, 아직 관객들에게 '진정한 지브리 애니메이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근래의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가 만든 첫 작품 <게드전기>는 엄청난 혹평속에 팬들은 그 작품을 인정조차 하기 싫어한다. 게다가 최근 고로의 작품은 3D 애니메이션이었다. 수작업 애니메이션을 선호하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선 정말 파격적인 행보인 셈이다.

 

위에서 말한 애니메이션 업계의 펠리컨들, 여러 사정으로 결국 스튜디오 지브리의 후계자가 될만한 인물은 아버지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한 미야자키 고로밖에 없게 되었다. 타카하타 이사오가 사망한 지금 앞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마저 사망하게 된다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름으로 나올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고로가 만들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행보를 보니 3D 쪽으로 가게 될 것 같다. 그것을 지브리의 팬들이 받아줄 것인가? 고로의 애니메이션을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이라 인정할 것인가? 엄마가 죽어서 갑작스레 새엄마가 된 나츠코에게 엄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죽은 엄마를 살릴 수는 없다. 죽음은 죽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새엄마를 받아들여 달라고 말하고 있다. 고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사랑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흉내 내는'것을 싫어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성격을 존중한다면 더욱 그렇다. 거기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도 역시 이전 세대의 유산을 다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온전하게 애니메이션 세상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노라고 고백한다. 좋든 싫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떠나게 될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없는 세상, 그대들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자, 그대들이여. 어떻게 살 것인가?   

 

 

 

 

 

 

--------------------

*다른 곳에서 나오는 리뷰들을 보니, 충격적 이게도 이 작품이 일본 제국주의 미화로 알려지는 것 같다. 일단, 지브리의 타카하타 이사오는 일본 공산당 출신으로 제국주의 비판하는데 앞장서는 인물이다. <반딧불의의 묘>도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내용을 보면 일본의 제국이 '자국민마저' 죽음으로 내모는 것을 비판하는 이야기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공산당원은 아니지만, 공산당지에 만화를 연재한 경력이나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일본의 좌파는 자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한다. 지브리의 두 거장이 그런 성향이니 지브리 전체는 사실 말할 것도 없다. 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역시 도쿄대공습이 나오지만,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거나 무서운 모습보다는 병원이 불타는 모습이 보일 뿐이고, 도쿄대공습이라는 말은 나오지도 않는다. 전쟁에 대한 피해나 반성등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이 애니메이션은 그냥 반전영화가 되어버리므로, 그걸 최대한 피하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린 시절에 집중한 것이다. 다음 장면은 그것을 더 잘 드러낸다.


마히토가 이사 간 시골 학교의 아이들과 다투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기가 죽을뻔했다는 피해를 강조하기 위해 돌로 자기를 쳐서 자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한 게 아니라 넘어져서 그랬다고 하지만, 군수공장을 하던 아버지는 아이들이 그랬을 거라며 범인을 찾아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아마 마히토도 아버지의 성격을 알고 있으니, 그럴 거라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 장면은, 도쿄대공습이나 원폭이 일본의 자해와도 같은 원죄이며 제국이 그것을 남탓하고 있고, 사실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변명하지 않는 일본국민을 비유하는 장면이다. 마히토는 아니라곤 하지만 거기서 더 강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마히토는 상처를 스스로 냈다고 큰할아버지에게 고백한다.

 

이런 지브리가 제국주의 미화라니, 그건 좀 억측이라 생각한다. 전작 <바람이 분다>도 일본 내부에 있는 개인의 이야기를 다룬 것에 전쟁미화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오히려 전쟁을 비판하면서도 전쟁무기 광인 자신을 비판한 내용이다. 


진짜 제국주의 미화는 일본 제국의 '대동아공영'을 은근하게 깔고 있는 <크리에이터>인데,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슈도 안되었던 점이 사실 더 의아하다.

 

*키리코 캐릭터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오오츠카 야스오이길 바랬으나, 이전 스즈키 토시오의 언급에 의하면 지브리 채색 담당이었던 야스다 미치오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우'라고 부르기도 했던 야스다 미치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바람이 분다>까지 거의 모든 지브리의 작품에 채색을 담당해왔었다. 사실 오오츠카 야스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 스승으로 아주 가까운 사이는 맞으나, 지브리가 만들어질 때 합류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이 일하면 몸이 너무 힘들어서라고.

-----------------------

 

 

출처: 본인 브런치스토리

https://brunch.co.kr/@casimov/210

 

 


profile 카시모프

별들 사이를 여행하는 방랑자.

 

이전 다음 위로 아래로 스크랩 (18)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첨부
  • profile
    best 카시모프 2023.11.02 20:45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제가 어릴 때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잡지등을 통해 관련 업계 소식은 알고 있었습니다. 20여년 전에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한다며 만든 <모노노케 히메>때 특집 기사 같은거도 났었거든요. 타카하타 이사오와의 일은 이미 유명하고.. 지금은 tv나 극장용은 아니지만 교육용 애니메이션 제작일을 하다보니, 공감되는 것이 많아서 이입했습니다 ㅎㅎ
    이 애니가 타카하타 이사오와 스즈키 토시오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은 지난 10월 25일 kbs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고 거기에 나오더군요 ㅎㅎ 한번 보셔요~
    https://news.kbs.co.kr/news/mobile/view/view.do?ncd=7800779
  • best Jeneci 2023.10.27 18:57
    이 해석 또한, 모두의 정답은 아닐수도 있지만 이런 비하인드와 해석이 시원하면서 신기하네요 감사합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
  • @Westside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best 카시모프 2023.11.02 20:45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제가 어릴 때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하려고 했었기 때문에 잡지등을 통해 관련 업계 소식은 알고 있었습니다. 20여년 전에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한다며 만든 <모노노케 히메>때 특집 기사 같은거도 났었거든요. 타카하타 이사오와의 일은 이미 유명하고.. 지금은 tv나 극장용은 아니지만 교육용 애니메이션 제작일을 하다보니, 공감되는 것이 많아서 이입했습니다 ㅎㅎ
    이 애니가 타카하타 이사오와 스즈키 토시오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은 지난 10월 25일 kbs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고 거기에 나오더군요 ㅎㅎ 한번 보셔요~
    https://news.kbs.co.kr/news/mobile/view/view.do?ncd=7800779
  • 알폰소셔젤 2023.11.08 23:57

    글 너무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특히 황금문, 팰리컨, 앵무새에 대한 해석들에 공감을 많이 했어요 다른 리뷰들은 그런식의 해석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의아했거든요
    저는 그어살을 한마디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기고백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전기 영화의 속성을 갖게 된 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던거죠
    마히토가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미야자키 하야오 또한 원작 소설의 코페르처럼 자신의 악의를 고백하고, 마히토처럼 자신의 악의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만든 영화

  • @알폰소셔젤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3.11.09 15:34
    영화가 물론 관객들에 의해서 달라지는 해석은 당연한 것이지만.. 원래 의도와 정 반대로 보이는 해석이라던가, 어떤 악의가 느껴지는 해석들을 보면서 본인들이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저처럼 해석하는 사람이 드문것에도 조금 의아했고요 ㅎㅎ;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그런 용감한 자기고백적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잘 읽어주셔서 넘 감사합니다~
  • 법규 2023.11.14 15:02
    좀 뒤늦게 봐서 작화의 뛰어남과 지브리 특유의 분위기와는 별도로 다소 메시지가 어려워서 헤메였는데 덕분에 좋은 정보 많이 얻고 갑니다!! 마지막 제국주의 미화에 대한 관점은 저랑 일치합니다만, 그 반대편 시각 또한 흔히 애국계몽운동의 일부가 타협적 민족주의로 자치론으로 대동아공영권으로 가는 시초점으로 보는 우려에서 나오는 관점으로 보면 이해가 아예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유려한 작화에서 비춰지는 전쟁의 모습 자체가 '간지'로 보여질 수 있으니까요.
  • @법규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3.11.14 20:34
    사실 말씀대로 그것 또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순이죠. 전쟁 무기, 비행기 뭘 그려도 간지가 나는 덕후라.. ㅠ ㅠ 그렇게 해석하도록 만든 것 또한 감독 본인이라, 사실 누굴 탓할수는 없죠.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profile
    스르륵 2023.12.07 13:31
    사료를 통한 방대한 지식과 날카로운 관찰력이
    마치 촌철살인의 전성기의 김구라와 임진모를 연상케합니다.

    작가님 이력에 ‘무비코리아 칼럼기고’ 라고 게재 되어 있어서 무코 회원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생깁니다.

    좋은 칼럼 잘 보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 @스르륵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3.12.08 05:32
    임진모라니요 ㅎㅎ 칭찬 감사합니다 ㅎㅎ
    무코라는게 누군가에겐 그냥 별것 아닌 인터넷 커뮤니티겠지만, 저에겐 글을 쓸 수있게 해주는 활력소 같은 곳입니다. 많은 응원을 받고 글을 쓰고 있어서 이력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ㅎㅎ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동그라미 2023.12.11 07:56
    어제 처음 봤는데,,,,어이없이 끝나서
    도데체 무슨 예기를 하고 싶은거지?
    이해가 하나도 안갔는데
    글 읽고나니 이제 이해가 가네요
    참 대단하시고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동그라미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3.12.12 08:00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해서 여러가지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지만,
    제가 어릴 때부터 지브리 스튜디오와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 관심이 있다보니 이런 해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ㅎ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밀키 2023.12.15 20:21
    쓰신 글 읽고 한번 더 봤어요. 덕분에 영화 이해가 잘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
  • @밀키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3.12.16 12:12
    이해가 되셨다니 기쁩니다 ㅎㅎ
    잘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마늘 2023.12.20 20:18
    잘 읽었습니다.
  • @마늘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3.12.20 22:16
    감사합니다~🤗
  • 잭과콩나물 2023.12.29 02:08
    해석하기 힘든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긴 글을 읽고 나니 궁금증들이 많이 해소되서 좋아요 😀
  • @잭과콩나물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3.12.29 12:11
    해석하시는데 도움이되었다니 기쁩니다 ㅎ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profile
    아키라 2023.12.31 11:50
    심도깊은 해석 잘읽었습니다^^
  • @아키라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3.12.31 17:01
    감사합니다~ :)
  • 김마요 2024.01.12 13:50

    이런... 영화를 거의 씹어서 먹여 주시는군요. 이거 읽기 전의 제 감상은 냄새만 맡은 수준

  • @김마요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4.01.12 14:27
    제가 요새 바빠서 글을 못올렸는데, 지나간 영화인데도 꾸준히들 읽어주시네요 ㅠ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만쥬쓰 2024.02.07 16:59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ㅎㅎ
  • @만쥬쓰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4.02.07 19:14
    ㅎㅎㅎ 감사합니다~~
  • 펭펭귄귄 2024.03.15 12:59
    정말 좋은 해석과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펭펭귄귄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카시모프 2024.03.15 13:02
    앗 오래전에 쓴건데 ㅎㅎ 감사합니다~~

칼럼 연재를 원하시면 <문의게시판>을 통해 문의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제목 글쓴이 날짜
무코 x 무비오어데스 영화관 향수 20,000원 [22] file
image
무비오어데스 파트너 2024.03.06 37761
아가씨, 올드보이 티셔츠 (레디 포 썸머) [5] file
image
무비오어데스 파트너 2024.04.02 26054
파트너 계정 신청방법 및 가이드 file admin 2022.12.22 343057
굿즈 소진 현황판 정리글 [154] 무비이즈프리 2022.08.15 955387
[CGV,MEGABOX,LOTTE CINEMA 정리] [37] file Bob 2022.09.18 345605
💥💥무코 꿀기능 총정리💥💥 [103] file admin 2022.08.18 675063
무코 활동을 하면서 알아두면 좋은 용어들 & 팁들 [61] admin 2022.08.17 426456
게시판 최종 안내 v 1.5 [61] admin 2022.08.16 1055348
(필독) 무코 통합 이용규칙 v 1.8.5 admin 2022.08.15 317566
더보기
5월 8일 선착순 이벤트 불판 [15] update 아맞다 16:00 4659
5월 7일 선착순 이벤트 불판 [39] 아맞다 2024.05.03 13160
<키메라> 이탈리아의 정치역사 풍자극-2 (엑소더스/<파묘>와 상징 비교/스포) updatefile
image
2024.05.05 931
<키메라> 이탈리아의 정치역사 풍자극-1 (태양의 나라/<파묘>와 상징 비교/스포) [10] file
image
2024.05.02 2649
<파묘> 어쩌면 진짜 하고픈 이야기? (은어와 참회, 아이들과 <땅에 쓰는 시>/스포) [4] file
image
2024.04.22 3389
<파묘> 영화 속 음양오행 해석-2 (동티와 역사의 파동, 불과 쇠의 <엘리멘탈>/스포) [2] file
image
2024.04.19 3008
<파묘> 영화 속 음양오행 해석-1 (우주공학도 지관 딸의 시점과 <천문>/스포) [6] file
image
2024.04.15 4415
<삼체> 벌레의 차원을 넘어서라 [10] file
image
2024.04.11 10911
<듄: part2> 액션은 어디로 갔는가? [43] file
image
2024.03.14 158448
[가여운 것들] 이름들의 어원과 나의 창조자인 부모(스포) [24] file
image
2024.03.12 156376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스포 후기 [16] file
image
2024.03.08 17085
<듄: 파트 2> 리뷰 - 모래 위에 피로 쓴 신화 (스포일러) [20] file
image
2024.03.02 15430
<파묘> 무엇을 그리 서둘러 덮으려 하시었소 [38] file
image
2024.02.28 11504
<추락의 해부> 몰락한 것들에 대한 재판 [18] file
image
2024.02.20 7038
<도그맨> 흑화한 강형욱 [20] file
image
2024.02.01 17924
<외계+인 2부> 의외로 세심한 캐릭터의 액션 [16] file
image
2024.01.23 19361
<괴물>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10] file
image
2024.01.15 30558
<플라워 킬링 문> 살인의 일상화 [16] file
image
2023.11.14 117056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새엄마는 엄마가 아니잖아 [73] file
image
2023.10.27 126544
<화란> 어둠이 어둠을 건져 올릴 때 [14] file
image
2023.10.23 4520
[오펜하이머] (5) ost 음악의 무게감과 이산성vs연속성 file
image
2023.10.17 2201
<크리에이터> 걸작이 되기엔 불쾌한 골짜기 [37] file
image
2023.10.07 7461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