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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참사나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자나 조직은 그것을 은폐하려 든다. 그리고 그 진실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공개하지 못하는 것도 많다. 그런 참사에서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묻어버리려고 하는 일들이 한국 사회에서도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가. 영화 <데시벨>은 단지 '어뢰 피격'이라는 소재 때문에 '천안함 피격 사건'과 그것을 둘러싼 음모와 진실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실제 영화 내용은 그런 음모론을 들먹이며 다루는 게 아니라 '어떤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무겁고 진지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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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치를 이용한 특수폭탄'으로 테러를 일으키는 이야기는 영화 <스피드(1994)>, <다이하드 3(1995)> 등에서 정말 정석으로 잘 다루었다. <스피드>는 부상당하고 퇴임한 경찰이 받는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품은 테러리스트가 저지른 일이라는 점에서, <다이하드 3>는 개인적인 복수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그 둘과 <데시벨>은 닮아 있다. 그러나 이 둘은 경찰의 명예나 개인적인 복수의 차원에서 시작해 결국 돈으로 끝나는, 지극히 미국적인 시각의 테러범 이야기다. 그래서 선과 악이 명확하기 때문에 그들을 철저하게 응징하는데 반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데시벨>은 이 지점에서 그 둘과 차이점을 보인다. 테러범에 대해 연민마저 느끼게 만드는 이 이야기는 굉장히 한국적이며 정직하고, 나쁘게 보자면 신파적이고 진부하다고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위에 언급했다시피,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90년대에 인기 있던 철지난 소재이기도 하다.

 

폭탄 테러영화는 주로 '테러범이 누구인가', '어떻게 숨겨진 폭탄을 찾을 것인가', '어떻게 폭발을 막거나 폭탄을 해체할 것인가', '폭탄이 터지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어떠한가'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이러한 지점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영화를 본다면, 다소 김 빠지는 부분들이 보여 실망하게 될 수 있다. 테러범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고, 숨겨진 폭탄은 긴박하지만 꽤 쉽게 찾아내며 폭발을 막거나 해체하는 것에 주인공의 역할이 그렇게 크지 않다. 또 폭발 묘사는 불길이 치솟는 기존 할리우드 영화에 비해 흙먼지가 많이 날리는 묘사를 했다. 이건 어찌 보면 더 현실적이지만, 영화적인 폭발 묘사로는 조금 모자라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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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 영화는 꽤나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잘 끌어낸다. 특히 주인공인 강도영 부장(김래원)의 시점보다, 부인인 장유정 분대장(이상희)의 폭발을 제거 씬은 긴장감이 넘친다. 폭발물 자체도 기존의 영화들보다 훨씬 진보했고, EOD(폭발물 처리반)의 기술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은 어수선한 느낌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막바지에 다다른다. 클라이맥스에서는 잠수함 안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그 드라마가 굉장히 좋았다. 훈련된 군인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의 절제와 인간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을 잘 보여주었다. 한국에서는 폭발 테러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지만, 최근 한국만의 감성을 담아낸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의 시도들은 굉장히 좋다.

 

<데시벨>을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대체 왜 제목이 데시벨이며, 테러범은 왜 소리에 반응하는 폭탄을 만들었을까. 여기에는 큰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잠수함에서는 모든 외부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소리, 음파를 이용한다. 창문을 열어 밖을 보거나 카메라를 이용하는 게 아니다. 잠수함의 임무는 대부분 조용히 바닷속에서 적의 음파를 감지하는 일이다. 물체가 다가오면 반향 음파를 분석해 위험을 감지한다. 정확히 같은 건 아니지만, 데시벨이 높아지면 위험하다는 것은 잠수함에서는 매우 익숙한 일이며 이 테러가 '잠수함 선원의 일'이라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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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바로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에 철퇴를 가한다는 상징이다. 잠수함에서는 밖에 알릴 수 없는 괴로운 사건이 있었고, 조직을 위해서 생존자들은 그 일에 침묵해야 했다. 그 일을 침묵하지 않고 세상에 소리쳐 알리고 싶은 테러범의 마음과, 강도영에 대한 테러범의 분노가 '데시벨의 한계치'라는 폭탄으로 드러난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한 목소리를 내면 폭발한다. 역사는 그렇게 전복되어왔다.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덮고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사람들뿐이다. 생존자이자 피해자인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건 너무나 가혹하다.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천안함', '세월호'사건이 아니라 사실은 바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데시벨>은 이전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재로, 한국과 한국 군대에서 벌어지는 '침묵 강요'에 대한 일을 다루었지만 시기적절하게도 지금의 한국사회가 그렇다. 그러기에, <데시벨>에서 테러범을 악으로 규정하고 처벌하기에 석연치 않다. 그러면 죽음이라는 영원한 침묵을 강요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우리 삶의 평온함을 위해,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출처: 본인 브런치

https://brunch.co.kr/@casimov/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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