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 주에 BFI(영국 영화 협회)에서 런던에서 1주일 동안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프리뷰 상영을 해주고 있어 마지막 날에 가서 감상했습니다.

 

영제목은 Evil Does Not Exist인데, 영화가 시작할 때 영어 제목이 한글 어순처럼 Evil(악은) - Exist(존재) - Does(하지) - Not(않는다) 순으로 차례대로 나오며 Not에 방점을 찍고 완성되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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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드니 빌뇌브는 명함도 못꺼낼 정도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말 호흡이 느린 영화였는데, 시퀀스가 길긴 하지만 관객들이 그 지극히 평범하고 긴 장면들을 다 쭉 지켜보게 만들더군요. 그러면서 의미가 없는 장면은 또 없고요. 그런 차원에서 해외 리뷰 중에 "숨이 막힌다"라고 표현한게 한편으로는 이해가 좀 되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니 왜 각각의 중요한 시퀀스들을 그렇게 길게 보여주는게 중요했는지 좀 더 깨닫게 되었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트하우스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으나 근 몇 년간 본 영화 중에 이 정도로 관객에게 큰 충격을 남겨놓는 영화가 있었나 싶네요. 머리에 마구 떠오르는 질문들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영화가 끝나고 제목을 보며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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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스케 감독의 작품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인터뷰를 찾아보니 이번 영화가 마치 맨 처음 영화를 찍은 때로 돌아간 것 같은 색다른 시도였고, 결말에 대해선 자신도 여러가지 답을 들고 있지만 관객들이 다양한 놀라운 해석을 하길 바라며, "영화의 결말에 관객이 망설임을 느끼길 바란다. 그런 망설임이 바로 시네마이기 때문이다"라는 좋은 말도 하셨더군요. 이번달 말에 한국에 개봉하면 무코 게시판에 올라올 후기와 해석들이 매우 기대되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눈덮인 일본 시골 숲의 풍경에 절절하게 아름다우면서도 어느샌가 불협화음이 느껴지는 OST가 흐르는 게 좋았고, 원래 직업은 감독이지만 이번작의 주연으로 캐스팅된 오미카 히토시가 이 영화에 부여하는 현실적인 무게감도 매우 훌륭하고, 그리고 주인공의 딸 하나를 연기한 아역 배우 니시카와 료의 청아한 얼굴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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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에 제가 극장에 가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일본 영화는 몇 년 전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였는데, 두 일본 영화를 보고 나서 공통적으로 든 생각은 "왜 한국에는 이런 장르나 주제의 영화가 없지?"였습니다. 물론 한국과 일본 영화가 각자의 특징이 있고 각자 잘하는게 있지만, 우리나라도 스펙트럼이 좀 더 넓었으면 하는 생각도 가끔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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