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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마사코가 그린 하우스를 보시려면 클릭!!

https://www.tsundokudiving.com/house-by-watan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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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미츠루가 그린 하우스를 보시려면 클릭!! 

https://x.com/cosmicspooks/status/1586635139689631744

 

영화 [하우스]를 봤을 때 혹시 원작 만화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닌지 호기심이 들었다. 인물들은 평면적인데다 기능적이고, 영화 속의 어떤 특수효과들은 만화적 표현을 영화속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판타가 짝사랑하는 선생님 토고는 학생들과 같이 별장으로 여행을 떠나려다가 엉덩이에 양철통이 끼어서 제 시간에 갈 수 없게 된다. 영화는 그 일련의 과정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준다. 영화 도입부에서 이미 충분히 질렸던 관객들은 '이런 것까지 한다고?'하며 다시 한번 놀라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그어놓은 '만화적' 표현의 범주는 훨씬 더 커지고 예측이 어려워진다.

 

[하우스]의 만화판을 보면 다른 방향에서 놀라게 된다. 음산하면서도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만화 속에서 잘 그려져있는데 그것이 생각보다 균일하고 통일적이다. 영화처럼 작품 전체가 부숴지는 듯한 전위적 느낌은 없다. 아마 이것은 그 상상력과 표현의 한계가 만화라는 매체에서는 훨씬 더 넓게 허용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효과일 것이다. 어떤 캐릭터가 어떤 일을 해도 비현실적이거나 비논리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영화라는 매체는 생각보다 훨씬 더 현실적 사고의 제약에 갇혀있는 매체이기도 할 것이다.

 

이 만화판 [하우스]를 보면서 상기하게 되는 것은 캐릭터 '쿵푸'다. 영화 속에서 쿵푸의 그 골때리는 느낌은 만화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그것은 축약된 버전 안에서 이 캐릭터만을 돋보이게 그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겠지만 연출적으로는 쿵푸만의 배경음악, 즉 청각적 자극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만화적으로는 쿵푸만 북두신권 같은 극화체로 그려서 연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곱씹게 된다. 쿵푸라는 캐릭터는 등장부터 범상치않았다. 오샤레의 친구 일행들이 소녀스럽고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관객들에게 자기소개 시간을 가질 때 쿵푸는 날아오는 공을 후려치며 존재를 어필했다. 단지 덜 여성스럽다거나 신체적 힘이 강하다는 것만이 아니다. 작품 속에서 합의되어있던 공기를 일순간 박살내버리는 캐릭터의 활용법을 주목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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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 쿵푸가 장작을 팰 때 귀신들린 장작조각들이 쿵푸에게 갑자기 날아온다. 이 때 쿵푸만의 테마음악이 경쾌하게 흐르고, 쿵푸는 눈을 부릅뜨고 그 나무토막들을 다 쳐내서 떨어트린다. '뭐, 별 일 아니겠지'. 별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을 막 겪었는데도 쿵푸는 이 상황을 천연덕스럽게 넘긴다. 이 순간 영화는 호러 장르의 균열이 일어난다. 조악한 편집이나 특수효과로 언리얼리스틱한 표현을 뻔뻔하게 밀어붙이는 데서 충격을 주지만 어쨌든 [하우스]는 호러장르의 외피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쿵푸의 활약과 거기에 깔리는 음악은 호러라는 장르마저도 부순다. 쿵푸가 활약할 때만 갑자기 영화가 '이제 무술영화를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차력쇼를 선보인다. 이것은 1회성에 그치는 이벤트가 아니라, 쿵푸가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는 이 영화의 약속이다. 안무서울 걸 알면서도 무서운 척을 하던 영화가, 이제는 무서운 척도 안하고 갑자기 화려한 무술영화인 척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작품 내에서의 자유로운 장르전환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고 싶어진다. 쿵푸라는 캐릭터는 이 horror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작품 내부의 투쟁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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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는 오샤레 일행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하우스'와 맞서 싸우는 캐릭터다. 오샤레를 비롯해 다른 인물들은 별다른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하우스의 농간에 당해 시체 혹은 귀신이 된다. 머크, 스위트, 오샤레, 멜로디가 모두 하우스에게 당해서 이제 셋만 남았을 때도 쿵푸는 딱히 겁을 먹지 않는다. 쿵푸는 '하우스'와 말 그대로 싸우기 시작하는데, 아예 갇혀있는 집의 문짝을 부수고 나가서는 오샤레의 귀신과도 육탄전을 벌린다. 카메라가 어지럽게 화면을 돌려대고 물건들이 날아다니는 그 혼란 속에서도 쿵푸는 단 한번도 "쫄지" 않는다. 쿵푸가 얼마나 잘 싸우는지, 이렇게만 밀고 나가면 남은 일행이 모두 탈출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마저 생긴다. 이 때 '하우스'와 영화 [하우스]는 나란히 흔들린다. 이 귀신의 집이 부숴지면서 이 영화가 더 이상 호러영화로 지탱되지 않을 것 같은 위기감마저 풍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쿵푸의 머리 위로 전등갓이 씌워지고 이내 그 전등은 쿵푸의 상반신을 전부 잡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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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쿵푸가 죽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다른 친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던 것의 주체와 객체 자리가 뒤집히는 방식으로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하우스]에서 최초의 희생자였던 머크는 먹는 걸 좋아했지만 자기가 이내 먹힌다. (이 영화에서 식인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이렇게 명확하게 보여주는 건 머크 뿐이다) 그 다음 스위트는 집안 청소를 좋아하지만 이불들에 깔리고 두들겨맞는다. 청소를 당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치운다'와 '깨끗하게 한다'는 행위의 객체가 되어 아예 사라져버린다. 오샤레는 거울을 보고 있다가, 즉 거울 속 자기를 바라보기를 하다가 거울 속 귀신에게 몸을 뺏긴다. 멜로디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연주를 하다가  피아노에게 씹어먹힌다. 그렇다면 쿵푸 역시 자신의 주특기인 구타나 신체적 타격을 역으로 당하는 게 규칙으로는 맞을 것이다. 그런데 '하우스'는 쿵푸를 두들겨패는 행위의 객체 자리에 갖다놓지 않는다. 전등은 쿵푸를 전기고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화면 속에서는 오히려 쿵푸가 일종의 최면, 정신공격을 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전등에게 공격당할 때 영화는 쿵푸가 이런 환상에 빠져있다고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혹시 '하우스'는 쿵푸를 신체적으로 끝내 제압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정신공격을 감행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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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쿵푸가 전등에게 상반신을 잃은 다음에도 맹렬하게 싸우기 때문이다. 하반신만 남았는데도 쿵푸는 벽에 걸린 고양이 그림에 '날라차기'를 꽂아버린다. 이 공격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고양이 그림이 격렬하게 피를 토한다. 그 그림이 찢어지고 이내 사람 형상의 귀신마저 고통스러워한다. '하우스'는 쿵푸의 정신은 지배했어도 육체까지 지배하지는 못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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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가 오샤레 일행을 죽이는 이 과정은 명백한 희롱이다. 너는 먹는 걸 좋아하니까 너가 먹히는 것이 되어보렴, 너는 청소를 좋아하니까 너가 먼지를 털 이불에게 먼지가 털려보렴, 너는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니까 피아노한테 씹혀보렴... 그런데 '하우스'는 쿵푸를 그렇게 조롱하지 못한다. 너가 장작패기를 잘 하면 장작한테 맞아보렴, 이라고 했는데 그게 보기 좋게 실패했다. 집이 흔들리고 물건들이 날아다닐 때 다른 아이들은 혼비백산하고 있었지만 쿵푸는 눈을 부릅뜨고 역공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죽어서도 그 하반신은 하우스에게 최후의 한방을 날렸다. 이 격렬한 저항을 배경음악과도 연결짓게 된다. 쿵푸가 등장할 때마다 깔리는 배경음악은 '하우스'의 음산하고 사악한 그 분위기에 날리는 가라데의 당수와 하이킥과도 같은 음악적 역공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 현상의 의미를 더 캐볼 수 있겠다. '하우스'는 왜 다른 캐릭터들은 그렇게 가지고 노는데 쿵푸만은 가지고 놀지 못하는가. 쿵푸는 여타 여자아이들과 무엇이 다른가. 쿵푸를 제외한 아이들의 취미는 전부 다 경제대국의 풍요와 안락에 기댄 것들이다. 가장 먼저 죽은 아이는 '식탐'을 가졌던 머크였다. 제일 저급하게 인식되고 제일 원초적인 취향에 빠진 머크를 '하우스'는 응징한다. 영화 내에서 머크는 한심할 정도로 계속해서 먹어대는데, 생존과 싸워야했단 전후세대가 느끼기에 이 식탐은 가장 경멸적인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다음 죽은 스위트는 청소를 좋아하는, 즉 가사가 취미인 아이이고 그 다음으로 귀신에게 홀린 오샤레는 거울을 보고 멋부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다. 멜로디는 피아노를 치는 게 취미인 아이였다. 이에 반해 쿵푸의 가라데는 육체단련을 통해 얻을 수 있고 유사시에 자신과 남을 지킬 수 있는 그런 취미다. 어떤 면에서는 쿵푸가 다른 여자아이들보다 훨씬 더 주체적이고 자기계발적인 면모가 강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선을 마냥 긍정하기에는 두 가지 위험을 짚지 않을 수 없다. 하나는 이런 구분이 지극히 여성혐오적이라는 것이다. 멋이나 부리고, 책에만 파묻혀있고, 하루종일 퍼먹기나 하고, 피아노나 똥땅거리고... 그러나 경멸을 하지 못하고 맞수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여자아이는 육체단련에 힘을 쓴다. 이런 구분은 '남성적'으로 구분되는 육체적 단련만을 허용하는 남성중심적 시선이다. '하우스'가 최후에 응징하는 것은 누구인가. 여성스러움이 가득한 새어머니다. 

 

또 하나는 군국주의다. 우리가 스스로 단련하지 않으면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유린당하고 말 거라는, 강박적인 생존욕구다. 그러니 무장을 해야된다. 자기 몸과 친구와 사회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하우스]는 초반에 분명히 명시했다. 진짜 남자들은 전쟁에서 다 죽어버렸다고. 그리고 쿵푸는 외부의 위협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강한 몸을 가지고, 두려움없이 적과 맞설 수 있는 쿵푸의 모습은 군국주의가 지향하는 초인의 모습이다. 더 정확히는, '참군인'의 모습이다. 다른 욕망들은 모두 제거한 채로 위험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능력만을 가진 이 존재를, 전후 세대가 과연 조롱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는 숭배의 대상이다.

 

'하우스'가 패전 이후의 일본이 가진 상흔이라는 해석을 연결해본다면, '하우스'의 희롱은 평화에 젖은 후세대에 대한 무의식적인 경고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평화에 젖어서 계속 놀기만 하다가는 잔인하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그래도 싸다는 뒤틀린 불안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쿵푸의 유별난 분전은 강한 존재가 되어 죽음을 피하고 싶은 망상인 동시에 개인의 강함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전쟁의 위력을 알리는 상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으로는 결국 '전사'했을지라도, 미학적으로 이 파괴적인 조롱에 맞서는 쿵푸의 존재에는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다. "맑눈광"의 정신은 그 때도 유효했던 것이다.

 

Hausu (17).jpg

 

 


profile Solar

안녕하세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극장에 가서 영화보는 걸 좋아하고 노트북으로나 다른 매체로는 영화를 잘 못봅니다...

영화 비평에 관심이 많고 단순한 서브컬처 소비 이상으로 영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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