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먼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얼마 전 개봉한 <더 웨일>이 종교와 구원의 상관 관계를 다시금 고민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구원"이라는 말 자체는 위험에 빠진 대상을 건져낸다는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있지만,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의 굴레에 갇힌 인생 속에서 인간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종교를 통해 구원을 갈망해왔죠. 오죽하면 연극의 시초가 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의식이니 말입니다. 고로 어찌보면 구원에 대한 인간의 갈망과 종교에 대한 열정이 공연예술의 발전을 낳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카메라와 필름이 등장한 후 부터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영화를 통해서도 종교와 구원에 대한 심도있는 질문과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었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제가 이제껏 살면서 감상했던 훌륭한 종교 영화들을 몇편 소개해보려 합니다. 참고로 전 기독교인이었고(현재는 아님) 고로 기독교 관련 영화 위주로 선택하였습니다.
1. 사일런스(마틴 스콜세지)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종교 시네마"입니다. 시네마라고 명명한 이유는 스콜세지 감독이 마블을 가리켜 말한 그 유명한 어록에서 따온 것인데, 이 영화야말로 마틴 스콜세지라는 예술가가 가장 하고싶어 하는 이야기를 카메라라는 매체를 동원하여 스크린에 풀어낸 "시네마"의 개념에 완벽히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영화는 스콜세지 감독님의 여러 걸작들 중에서도 제가 생각하는 그분의 최고작입니다. 스콜세지 감독님이 하셨던 말처럼 영화와 신앙, 이 두 가지만을 평생 사유해온 노대가의 숨결과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스콜세지 감독은 진정한 믿음이란 무엇인가?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입으로 신을 인정하고 찬양해야만 그게 진정한 신앙인가? 만약 입으로 신을 부정한다면 그건 과연 배교인가? 혹여 그것이 배교라면 인간은 신에게 구원받을 수 없는가? 또한 인간이 인간을 정죄할 수 있는가? 도대체 신이 인간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왜 신은 응답하지 않고 침묵하며 방관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세시간 가까이 집요하게 던지고 파고들고 몰아붙입니다. 더불어 앤드루 가필드도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치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자기만족적, 그리고 율법주의적 신앙에 심취한 종교인들이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는 영화인 동시에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적 깊이와 미학적 깊이를 만끽할 수 있는 숨겨진 걸작입니다.
별점 ●●●●●
2. 미션(롤랑 조페)
제가 로버트 드니로라는 배우한테 꽂히게 된 영화이자 인생 영화 단 한편을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꼽을 영화입니다. 여러 장면들과 음악으로도 유명하지만 이 영화만큼 "사랑"의 본질을 순수하게 그린 영화는 없습니다. 이 영화는 결코 단순히 서양침략사 속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선교사들을 미화하거나 기독교 정신을 설파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위험에 처한 타인에 대하여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사랑의 선택과 도리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 면에서 어찌보면 <쉰들러 리스트>같은 휴머니즘 영화에 가깝습니다. 나아가 이 영화는 사랑이 없다면 구원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아무리 자신을 희생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성경 고린도전서 13장 구절이 이 영화의 테마로 인용됩니다. 극 중에서 제레미 아이언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저 그들과 함께 있어주겠습니다'. 또한 로버트 드 니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신도 침묵하던 쓰라린 세계사의 한 페이지에서 종교적 율법이나 관습, 사상, 교리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해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사랑 그 자체를 실천하다 죽은 이들의 신념과 넋을 기리는 영화입니다.
별점 ●●●●●
3. 밀양(이창동)
이 영화는 구원과 용서의 딜레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종교적 딜레마의 한가운데로 혹은 지옥도로 주인공을 끝까지 무참하게 몰아넣는다는 점에서 <사일런스>와도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무겁게 던지지 않습니다. 또한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은근슬쩍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나아가 함부로 구원의 가능성과 답을 제시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말 없이 뒤를 비춰주는 "밀양(영제: Secret sunshine)"처럼 담담하고 사려깊게 인물을 응시할 뿐입니다. 그리고 각자를 어둠에서 건질 한줄기 빛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잔잔한 질문을 남기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훌륭한 영화는 영화가 끝난 후 부터 비로소 영화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영화이고 그래서 걸작입니다.
별점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