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손을 거친 이상 평범한 영화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오펜하이머의 일생은 수많은 인물들과 거대한 사건들이 뒤얽힌 파란만장한 삶이였죠.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의 삶을 원자 단위까지 파헤치고 분해한 뒤, 자유롭게 뒤섞어 재배치합니다. 여기에 외부에서 끌어온 강렬한 시청각적 자극을 충돌시켜 마침내, 트리니티 실험? 아니요, 이 영화를 오펜하이머의 연설 장면에서 조금 늦게 폭발시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시간 가량 오펜하이머와 관련된 두 개의 청문회가 병치될 때는 본능적으로 느꼈어요. 아, 여기가 낙진이구나.
리뷰를 쓰기 너무 어려운 영화입니다. 다른 영화들은 이런 점이 좋았다, 이런 점을 주목해서 보면 된다 이런 게 확실하게 잡히는데, 이 영화는 그냥 리뷰하기 너무 어려워요. 확실한 건 한 인물의 삶을 이토록 건조하면서도 황홀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감독은 전 세계에 놀란 하나뿐입니다. 그저 그의 삶을 따라가면서 영화를 감상해도 좋고, 삶을 파헤치면서 보면 더 좋은 영화죠.
+ 1회차는 용아맥, 2회차는 코돌비로 갔습니다. 저번에 용아맥으로 볼 이유가 없다 말했는데 취소할게요. 용아맥이 월등히 좋습니다. 사운드의 경우 섬세함이 아닌 투박하면서도 웅장함을 갖춘 음향이 요구되기 때문에 아이맥스의 다소 구린(?) 음향 시스템과 오히려 시너지가 나죠. 그리고 용아맥에서 보면 1.43:1 화면비가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장면에서의 위압감이 엄청나고, 1.43:1로 봐야 영화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거나 인물의 심리가 깊게 드러나는 장면도 많아서 용아맥 추천합니다. 코돌비는 레터박스 땜에 화면이 작게 보이는 것도 한 몫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