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베어스>(자파르 파나히)
이 영화를 보면서 두 번의 소리에 전율했습니다. 오프닝 시퀀스의 "컷"과 엔딩 시퀀스의 "끽"(사이드 브레이크 당기는 소리). 시작과 말미, 이 두 가지 소리가 감독이 영화를 만든 이유를 은유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거의 지면에 고정된채 움직이고 있는데 이는 마치 카메라가 조금만 흔들려도 영화 속 세계가 송두리째 뒤흔들릴 것 같은 극도의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영화 속 영화, 감독의 상황, 감독이 머물고 있는 마을의 사건, 이 세 갈래의 서사가 얽혀서 맞물리는 플롯이 상당히 몰입도를 높이는 동시에 이 모든 픽션이 감독이 실제로 처한 영화 바깥의 현실과 맞닿아있다는 사실이 영화적 설득력과 감정적 울림을 더합니다. 나아가 카메라와 영상창작물의 실체적 역할이 무엇인지 관객들로 하여금 함께 진중한 태도로 고민해보게 만드는 예술적 기능을 자연스레 수행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상영관에 다시 불이 밝혀질때까지 엉덩이를 차마 뗄 수 없었던 작품이었고 개인적으로 현재까지 올해 최고작입니다.
*별점 및 한줄평:
●●●●○(4.5/5) 억압과 부조리에 길들여진 세계와 그 세계에 무력하게 갇힌 현실 속에서 카메라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할 수 있는가, 해야 하는가.
<추락의 해부>(쥐스틴 트리에)
법정 드라마가 아닌 법정 드라마입니다. 이 영화가 남편의 죽음을 추적하고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흔한 추리물이었다면 결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이 영화에서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관념적 질문을 관객에게 던져놓고 질문의 답에 도달하기 위해 다양한 영화적 장치들을 활용한 작품입니다. 고로 관객은 영화 속 사건의 진실 조차 결코 진실이라 확신할 수 없는 개운치 않음을 느끼는 동시에 결국 진실은 '인식과 기억의 과정을 거쳐 판단되고 결정되는 것에 불과하다'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경험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관객에게 장르적 재미를 충분히 선사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입니다. 특히 평온한듯 스산한 별장과 엄숙한듯 치열한 법정이 공간적 대립을 이루는 가운데 법정씬에서의 다채로운 카메라 워크는 장르적 몰입감을 높이는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오랜만에 각본, 촬영, 편집, (견공 스눕독 포함)배우들의 연기까지 모든 면에서 "웰메이드"라고 끄덕끄덕할만한 작품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별점 및 한줄평:
●●●●(4/5) '법정 드라마'라는 실험대 위에서 '진실'이라는 개념의 실체를 냉엄하고 신랄하게 해부한다.
위의 두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평도 그렇고... 한줄평 잘 쓰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