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비> 안 본 눈이었고 나름 기대하는 바가 있었던 영화라 아카데미 기획전을 통해 잽싸게 관람했는데 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패러디한 오프닝씬과 바비랜드에서의 일상을 경쾌하게 묘사한 오프닝 시퀀스 딱 거기까지만 기발하고 흥미로웠습니다.
-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직설적인 화법 그 자체가 아닙니다. 차라리 뮤지컬과 풍자극을 표방하여 '페미니즘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보겠다'는 명확한 의도에만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인형인 바비가 몸과 마음에 생소한 변화를 느낀 후 바비랜드를 떠나는 시점까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서사를 전개할 듯 보였습니다. 허나 현실로 넘어가자마자 급격하게 '젠더' 문제를 다소 시대착오적인 화법(이를테면 갈등의 해결을 위해 '지배'와 '주도권'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건드리면서 갈 길 잃은 바비 마냥 영화도 길을 잃습니다.
- 장황한 페미니즘 강의 이후 켄의 캐릭터에 감정 이입을 요구하며 뒤늦게 '평등'과 '나다움' 그리고 인간이 되고싶은 바비의 결정을 통해 '독립된 인격체를 가진 나로서의 인간다운 삶'을 강조하지만 이마저도 '평범한 여성의 삶=생식기 검사(생물학적 성에 갇힌 여성)'라는 공식으로 귀결되는 것으로 보아 감독의 의도가 갸우뚱해질 뿐입니다. 한마디로 하고싶은 말이 이래저래 너무 많은데 그러한 기획 의도를 두 시간 짜리 발랄한 풍자 코미디에 담아내기엔 컵보다 물이 넘치는 느낌입니다. 보다 가볍게 덜어내든지 아님 보다 깊이있게 파고들든지 택했어야 했습니다.
-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주연배우가 아깝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마고 로비는 진짜 너무나도 정형화된 바비의 이미지라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선 보다 신선하고 입체적인 캐릭터 창조 및 서사가 필요한데 영화 내내 수동적이고 평면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이미지만 소모되는 느낌입니다. "이런 대사 시킬거면 마고 로비 캐스팅하지 말라"는 나레이션을 통해 제 4의 벽을 허물어뜨리면서 까지 이를 극복해보려 하지만 그저 장난같이 보일 뿐입니다. 라이언 고슬링 또한 작정하고 망가지려 하지만 바비에 가려진채 살아오다가 뒤늦게 숨겨진 남성성을 깨닫고 폭주하는 극중 켄의 서사를 고려하지 않은 미스 캐스팅이 아닌가 싶습니다. 차라리 카메오로 등장한 레슬러 존 시나가 켄이었다면 풍자 코미디라는 장르에 더 효과적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코 라이언 고슬링이라는 배우의 매력이 빛날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봅니다.
- 여러모로 논란의 중심에 설만한 요소를 갖추긴 했지만 미술과 의상 정도를 제외하고 아카데미 작품상 포함 주요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인가 의문스러운 영화입니다. 비슷한 느낌의 영화 중에 오히려 과욕과 잔재주 없이 장르와 의도에 충실한 <웡카>가 훨씬 나아보입니다. 예전에 <작은 아씨들>을 보고 원작에 날개를 달아주는 그레타 거윅의 각색 실력에 감탄했었는데 이번 작품은 상당히 아쉽습니다.
*별점 및 한줄평:
●○(1.5/5) 'Gender'와 'Human' 사이에서 소란스럽게 부유하다 'Sex'로 귀결? "바비랜드"가 아닌 <바빌론>의 그녀와 <라라랜드>의 그가 그리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