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을 통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의 질서
파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추락한 자리에 타이틀이 드러나면서 영화가 시작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단수가 아닌 복수이다. 그리고 벨라는 가여운 것들에 해당하지 않고, 그 여자는 벨라가 아니다.
벨라는 일종의 재탄생이다. 벨라는 임신한 어머니의 몸에 태아의 뇌를 이식한 결과물로, 신체 나이는 성인이지만 지능은 태아가 되었다. 벨라 백스터는 자살한 어머니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새 인생이자, 현재 세태를 순수한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초반부 흑백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벨라가 인식할 수 있는 세계의 범위를 제한한 것이고, 리스본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인식할 수 있는 세계가 확대되어 컬러 장면을 쓴 것으로 보였다.
이때 벨라를 가로막는 남성이 세 명 등장한다. 첫 번째 남성은 고드윈이다. 고드윈은 자신의 실험을 위해 벨라가 바깥세상을 아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벨라가 점점 나이를 먹다보니 호기심 때문에 그런 통제는 불가능해졌고, 벨라는 던칸 웨더번과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고드윈을 잠재웠다. 두 번째 남성은 던칸 웨더번이다. 웨더번은 벨라와의 섹스만을 원했다. 그래서 벨라를 거대한 케이스에 가둬서 이동한다. 하지만 벨라는 여객선에서 만난 할머니나 해리와의 대화를 통해 점점 지식을 쌓았고, 세계의 절망에 눈을 뜬다. 그러다가 결국 파리에 불시착하게 되고, 웨더번의 징징거림이 짜증나서 고드윈이 챙겨준 쌈짓돈으로 웨더번을 런던으로 보내고 파리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마지막 남성은 어머니의 전 남편 알피다. 전 남편이 찾아와 벨라를 되찾으려는 태도는, 벨라를 소유하려고한 던칸 웨더번과 닮아있다. 그래서 벨라는 전 남편에게 수술당하기 전 그 남자에게 먼저 복수를 한다. 세 남성은 벨라의 정신이 아닌 몸만을 원했고 (실험/섹스/아내), 벨라의 정신이 성장하면서 그 손아귀로부터 스스로 벗어난다.
벨라는 자신의 앞길을 막는 남성을 상대로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선택했다. 자신의 몸만을 원했던 남자들을 상대로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각각 지키는데 성공했고, 세계의 질서에 저항하여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았다. 벨라는 결말에서 고드윈의 자리를 차지했지만, 고드윈과 다르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전 남편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 말고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고드윈의 말대로 질서는 영원할 수 없어 언젠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세워진 것이다.
영화 장면들이 비범하다. 어안렌즈로 찍은 장면, 공간, 의상들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이런 미술들만으로 잡고 가는 영화의 분위기가 확실히 특별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 가장 수위가 높다. 성적인 장면들이 굉장히 많아서 언뜻 보면 신체 자기결정권을 강탈당해 혹사당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역설적으로 그 순간들이 바로 벨라가 당당히 신체 자기결정권을 지키고 있는 순간들이었다. 원작소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