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드림>은 2024년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로 선정됐습니다. 저한테는 3달 전부터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아카데미 후보작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극장에 부랴부랴 보러 갔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유아용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하고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제대로 눈물을 쏟아냈네요.
<로봇 드림>은 뉴욕에서 홀로 외로움을 타고 있는 개 '도그'가 자신의 친구가 되어줄 로봇을 주문하게 되고, 그 둘은 가깝게 지내며 나날이 깊은 우정을 쌓아가지만 의도치 않게 그 둘이 물리적으로 멀어지게 되면서 그 둘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의 변화를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로봇 드림>은 단순하지만 편안한 느낌의 그림체로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친근하고 감성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이야기 전반에 깔려있는 관계에 대한 통찰입니다.
보통 창작물에서 우정은 불변하는 것이라 다뤄지기 마련인데 <로봇 드림>에는 '우정도 관계의 일종이라 변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한편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로 보이기도 합니다. 주제의 폭이 생각보다 넓은 영화겠죠)
영화는 초반 30분을 넘어가면 로봇의 시점과 도그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진행되는데, 각자가 겪는 가혹한 외로움의 풍경이 관객의 심금을 두드리면서도 그 외로움에 의해 풍화되어가는 우정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섬세하게 그려내어 마치 픽사 영화가 떠올려지는 성숙하면서도 감동적인 엔딩을 만들어냅니다.
영화 제목에서 암시되는 만큼 꿈이라는 테마가 반복되는데, 영화는 로봇과 도그가 꾸는 서로에 대한 꿈과 그 꿈을 방해하는 현실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서 낙천적인 희망만을 이야기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관계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 낙천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 주제를 이야기에 착상시키기 위해 Earth, Wind & Fire의 명곡 <September>를 선곡한 것은 훌륭했습니다.
이 영화에는 대사가 없습니다. 오로지 애니메이션 자체가 가진 표현력으로 순도 높은 감정을 풍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서 가진 섬세한 화술 자체도 뛰어나지만 거기에 타인과 관계를 대하는 세심한 태도가 녹아들면서 이 영화는 결국 마음 깊숙한 곳까지 심금을 울리는 영화가 된 것 같습니다.
별점은 ★★★★
사담으로, 이 영화를 보다보면 여러 할리우드 영화들이 머릿 속을 스쳐갑니다. 감수성은 얼핏 보면 <아이언 자이언트>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오즈의 마법사>나 버스터 키튼의 단편 <일주일> 등의 오마주가 들어가 있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이터널 선샤인>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 거 찾아보는 재미가 있더라구요.
장면들을 곱씹어 볼 수록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입니다. 로봇과 도그의 관계의 진실을 추측해보게 되기도 하고,영화가 꿈이라는 매개를 다루는 방식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데 여기서는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