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반은 너무 지루했습니다.
당일 이미 영화 2편을 보고 온 것도 한 몫했지만 나뭇가지로 가려진 숲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움직이는 롱테이크는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도 이렇게 길고 느릴거야 각오해' 라는 감독의 선전포고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이처럼 멋진 장면들도 많고 자연을 벗삼아 상생하며 살아가는 지역주민들을 각인시키기엔 아주 효과적이긴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야기가 진행되니 앞서 졸린게 기억조차 안날만큼 흥미진진했습니다.
늘어지던 몸이 저절로 힘이 들어가면서 집중하게 되는데 전작들에서도 보여준 각본의 재미와 그걸 기깎는 연출은 내용을 떠나 진짜 그 자체로 웃음이 날만큼 재밌습니다.
아무튼 얼핏 쉬운듯 흐르던 영화는 엔딩에서 관객을 무척 당황시키죠.
그 엔딩에 대한 해석여부가 이 영화를 내 영화로 소화시키는 것의 가장 주안점인데 제 생각엔 결국 차에서 이야기하던 사슴의 비유(즉사하지 않은 사슴 혹은 그 부모만이 인간을 공격한다. 도망칠 길이, 물러설 곳이 없기에)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엔딩의 2가지 의문점(1.사슴에게서의 딸의 위협보다 우선시한 2.갑작스러운 살인)을 해석해보려 해도 딱 맞는 것을 찾는것은 어렵고 이는 해석의 여러방면을 열어주어 더 심도깊은 감상으로 이끌더라구요.
결국 감독은 그 모두가 답이 아니면서 또 그 모두가 답이 되는 인상만 남기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어졌습니다.
며칠째 곱씹다 에라모르겠다 룰루랄라 유튜브를 보는데 거기서 단초를 얻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개혁과 혁명입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로 불합리함를 타파하려는 것이 개혁이라면 혁명은 불합리를 견디고 버티다 한계를 넘기면 터져나오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라는 식의 이야기였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한 개혁이 실패한다면 의도와 상관없이 무슨일이든 벌어지는 것이 자연의 혁명이며 그 과정에 인간에 상처입은 사슴에게 딸이 다치는 것과 그 아빠가 누군가를 죽이는 것 또한 자연발생적인 운명론 같은 이야기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직원과 여직원의 생사가 갈리는 이유도
여직원은 이곳의 자연을 훼손시키는 일을 하려고 왔지만 적어도 이곳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곧 떠날(퇴사할) 사람입니다.
남직원은 순진합니다.
사장과 컨설팅직원처럼 의도자체가 나쁜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마을에 깊이 발을 들이려 하면서도 본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글램핑장이 지어지면 생활터전을 잃을 사슴에겐 관심이 없습니다.
글램핑장의 오수가 마을을 망칠거라는 주민들의 말에 동의는 하지만 어쨌든 윗선의 지시대로 일을 진행시키려고 하죠.
그는 자연과 상생하려하기보다 자연의 공간이 자신에게 주는 안락함(재미)만을 취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계속하여 여기저기서 핀잔을 듣는 이유도 그는 핵심을 짚지 못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이죠.
자연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닙니다.
중요한것은 인간의 개입이 자연에 미칠 영향, 즉 결과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인간이 자연에게 행하는 일의 여파가 중요한 것이죠.
남직원이 하려는 일은 이곳에 그 자체로 해악이 될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죽어야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혁명의 도구는 마을(자연)의 심부름꾼인 아빠였던 것이죠.
저 같은 경우 머리로만 이해하지 가슴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더욱 평가가 좋아지는 영화임에는 분명합니다.
기교부리지 않은 간결함이 굉장한 장점이며 영화를 되짚어가기 아주 편하게 합니다.
저같은 범인은 처음보고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할 뿐인데 어디선가 이 영화를 보고 한번에 본질을 꿰뚫는 천재들도 있다고 생각하면 경이로우면서 질투도 나네요ㅎㅎ
폰으로 쓰다보니 장문 쓰기도 어렵고 정리도 맘처럼 안되네요.
제 생각에 이 영화는 감독이 정해둔 답이 없습니다.
그저 각자의 해석에 맡기는 영화입니다.
스스로 본인의 답을 찾는 즐거운 시간 되시길:)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신.
인천의 어느 극장에서 찍었는데 악존악같은 영화에 찰떡이라 찍어봤습니다ㅎ
어제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오늘은 <갓랜드>를 봤는데,
묘하게 두 영화의 주제가 굉장히 닮아있는 것 같더군요.
쥔공 말대로 밸런스와 적절한 거리두기가 깨지면서
후반부 두 생명에게 예상치 못한(그러나 이또한 자연스러운?) 반격/대응이 가해진 듯 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총소리처럼 남자직원의 안일한 호의 안에 실재하는 위험가능성 때문이랄까...)
개인적으론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을 무너뜨릴 정도로 계획하면 안된다는 가치관을 갖고있긴 합니다만...
산속/바닷가에 휴양시설 계획을 한적이 몇번 있어서 푹푹~ 찔려하면서 관람했네요. ㅠㅠ
자기의 신념과 배치되는 일을 하며 딜레마에 빠지는 것에 공감이 화악~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산불은 담배 때문에 나겠는데?라며 보는내내 산불엔딩일까봐 조마조마했던...ㅋ
+전 자연다큐를 좋아하는 편이라 그런가 카메라 웤?이랑 음악이 너무 독특해서 잔잔한 텐션에 비해 몰입감있게 봤던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