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메르 감독이 연출한 1970년 작 <클레르의 무릎>은 결혼을 앞 둔 남자가 휴가지에서 만나 소녀들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작품입니다.
곧 결혼을 하게 되는 30대 남자 제롬은 스위스 한 휴가지로 여행을 홀로 가게 됩니다. 우연히 휴가지에서 여사친인 소설가 오로라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묵고 있는 집주인의 딸인 15세 소녀 로라를 소개받습니다. 로라는 제롬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다가서는데 첨에 거부했던 제롬은 그녀에게 호응합니다. 하지만 변덕스런 로라는 감정적 교류가 있는 다음날 언제 그랬나듯 행동을 하죠.
며칠의 시간이 지나고 로라의 이복언니인 클레르가 휴가지로 옵니다. 제롬은 그녀에게 반하게 되고 특히 그녀의 무릎에 집착하게 됩니다. 과일을 따는 클레르의 무릎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등 금단의 열매를 향해 마수를 뻗치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진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비오는 날 둘 만 있는 시간이 되고 남친 때문에 괴롭워하는 클레르의 모습을 위로하던 제롬은 그녀의 무릎을 만지며 위로해줍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발전(?)은 없죠.
에릭 로메르의 <클레르의 무릎>의 제롬은 마치 홍상수 감독 영화의 찌질한 남자주인공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아닌 척 하며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남자의 모습을 이 영화는 담고 있습니다. 처음 만나게 되는 십대 소녀의 추파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결혼 직전의 남자의 모습은 그 욕망 자체도 위험하기도 하지만 겉으론 도덕적인 인물인양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진 않더라고요. 그리고 자신과 십대 소녀와의 이야기를 소설가 친구인 오로라에게 들려주는데 마치 고해성사 하는 듯 해 오히려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여름 휴가지를 배경으로 한 유럽 작품이 꽤나 많이 있어 왔는데 이 작품도 편안한 한 휴양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휴양지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담고 있지 않고 인물들에 집중합니다. 마치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에서 기차여행을 하는 김상경 캐릭터가 다니는 도시 특히 경주 등을 담을 때 랜드마크 등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인물에게 집중하는 모습이 이 작품에도 담겨져 있습니다.
<클레르의 무릎>은 제목만 보면 페티시라는 키워드가 언뜻 떠오르게 되는 작품이지만 영화 전반적으론 마지막 자유를 만끽(?)하는 한 찌질한 남자의 후일담을 담은 작품으로 보입니다. 뭔가 흐지부지한 엔딩도 이런 선상에 놓인 마무리가 아닌가 싶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