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3d 영화라 하면 입체 효과를 통해 이미지의 아름다움과 살아 숨 쉬는 듯한 생생함을 강조하는 영화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구 최후의 밤’은 3d 영화의 이러한 기본 원칙을 당연하게, 또 단단하게 지켜 나갑니다. 이 영화의 3d 입체 효과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과도 긴밀히 결합되어 영화의 특징이 “3d로도 만들었다”가 아닌, “3d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3차원인 현실이 영화에선 2차원으로 격하되며, 차원으로 정의될 수조차 없는 그저 관념뿐인 꿈은 반대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환상의 특성을 재료로 삼아 스스로를 3차원으로 양껏 단장합니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살아 숨쉬는 환상의 체험인 것입니다.
‘지구 최후의 밤’은 관객에게 시각을 넘어선 새로운 3d 체험의 길을 열어 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3d라는 도구로 출발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시각과 별개로 된 특별한 영화적 체험을 이끌어내도록 합니다. 영화의 분기점의 순간 관객은 주인공을 따라 3d 안경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객과 스크린 속 주인공의 행동의 일치로부터 출발한 사고의 접점은 주인공으로부터 관객으로의 방향으로 동기화되는 감정의 통로를 만들게 되지요. 또한 영화는 역으로 주인공을 관객의 위치에 올려 놓음으로써 앞으로 이어지게 될 한 시간여의 장면들이 곧 ‘여러분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장면들은 ‘마치 꿈만 같고’, ‘모호하며’, ‘모순으로 가득 찬 환상인’ 것 같습니다. 즉 영화란 본질적으로 꿈만 같고 동시에 모호하며 모순으로 가득 찬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어 우리 눈 앞에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구 최후의 밤’은 영화 예술에 대해 아주 우아하고도 가장 영화적인 예찬을 담담히 낭독합니다. 한편, 한 시간여의 ‘영화’를 다 보고 난 관객은 곧 파편처럼 흩어졌던 현재의 시점에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거나 완결된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금방 타서 없어질 것 같은 폭죽에 시침을 거꾸로 돌려 가둔 찰나만큼이나마 그들은 다시 만났고, 우리는 영화를 보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