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예술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영화들은 예술로 불리우죠.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들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오락으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경향입니다. 소비자들이 영화를 소비하는 경향이 그런 것입니다.

 

저는 키노나 스크린, 씨네21을 읽으며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입니다.

지금은 누구도 영화에 대해 장황한 평론을 하지 않습니다.

예전엔 영화 한 편 나오면 영화 잡지에 3페지에서 많게는 10페이지 이상의 평론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그런 분위기의 정점이 왕기위감독의 초기작들이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작품들은 기술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많은 평론가들을 흥분하게 했고 그들의 가이드를 따라 영화를 보던 우리들 역시 매우 흥분하게 했던 작품들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영화는 극장이나 VHS테입, 그리고 주말에 TV 특집 영화로 밖에 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DVD라는 보다 진보한 형태의 매개체가 나오고 그 즈음에 24시간 영화를 볼 수 있는 케이블채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인터넷을 통해 원하는 영화를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시기에 이르러 영화는 더 이상 예술이 아닌 온전한 오락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평론가들은 긴 글의 평론을 하지 않고 별점과 한 줄 평으로 감상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길게 하는 평론은 다들 유튜브에서 영상으로 대체를 하죠. 

심지어 이제 관객들은 평론가나 기자의 가이드 조차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보고 느끼고 즐기면 되는 것이지 이렇게 봐야 더 재밌다, 이렇게 봐야 의미를 알 수 있다는 식의 가이드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절에 영화가 예술인가 아닌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자 과거에 머무른 구시대적 발상일 듯 합니다. 

거미집은 영화가 예술인 시절에 대한 과잉 향수로 시작된 기획입니다. 

영화가 예술인 시절, 소위 말해 작가주의가 팽배했던 시절 자의식 과잉으로 점철된 한 감독의 작가주의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바로 거미집입니다. 

 

이 작품이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인 김감독의 작가주의의 산물 때문입니다. 

거장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사고로 죽은 거장의 유작 시나리오를 훔쳐 데뷔한 이래-그래서 데뷔작은 추앙 받았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데뷔 이래 통속극만 양산해서 싸구려 감독으로 비난받던 주인공이 이미 찍어놓은 영화의 결말을 바꾸면 걸작이 된다고 믿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집요하게 밀어부쳐 만들어낸 영화의 내용이 진짜 예술작품이었다면 그나마 공감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라곤 막장 드라마에 끝없는 욕망은 파멸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명제를 괴물 거미를 빌어 기이하게 마무리 지은 작품일 뿐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결말을 찍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아요. 클라이막스를 찍는 건 길게 다루었지만, 정작 그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말 장면이거든요.)

그러니 2시간 내내 영화사에 기리 남을 걸작을 만들고자 무리수를 두는 주인공의 소동극에 전혀 감정이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종국에 이르러서는 지나치다 못 해 과잉된 작가의 자의식이 매우 피로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뭐가 예술인데? 그게 예술이야? 그래서 어쩌라고?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감독의 지나친 교조주의의 산물입니다.

관객들을 가르치려 들면 절대로 안 됩니다. 

대다수 관객들은 영화를 매우 잘 이해하고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금 영화관객의 주류인 2,30대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달고 산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흥행이 곧 영화의 완성도이자 영화의 존재가치가 된 시절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정말 하고 싶었다면, 동주나 박열처럼 아주 미니멀하게 했다면 훨씬 더 눈부신 작품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업영화 사이즈에 유명한 배우들을 모아다 놓고 영화가 예술이니 아니니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70년대 작가주의를 강요하는 공감할 수 없는 영화로 밖에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니 대다수 극장 실관람평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한마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지운감독님이 오랜 고민 끝에 내 놓은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슬퍼지기까지 한 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김지운감독님에 대한 애정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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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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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vin 2023.10.03 13:04

    키노 정말 오랫만에 들어보네요.
    수준이 있는 평론들도 꽤 있었지만
    자아도취에 빠진 중2병 수준의 평론들도 넘쳐났죠.
    키노, 시네21 전성기에는 국내에서도 DVD 가 엄청나게 활성화 되었고 멀티플렉스가 가세하면서 영화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참 만감이 교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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