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관람하고 나서 잊기 전에 후기 써봅니다.
영화 '더 킬러'는 제목 그대로 킬러에 대한 영화입니다. 이런 류의 소재는 거슬러 올라가면 '사무라이'의 차가운 킬러부터 최근에는 아메리칸이나 리미츠 오브 컨트롤 같은 변주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져 왔습니다. 이 영화는 후자의 영화들처럼 수정주의(?)적 관점에서 소재를 다룹니다.
영화를 한마디로 나타내자면 내추럴 본 킬러가 아닌 자의 악전고투입니다. 주인공은 킬러로서 모든 테크닉을 갖추었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 냉정한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영화 내내 이 인물은 심박수를 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핀처 감독은 다양한 장치로 이러한 부분을 흥미롭게 그려냅니다.
우선 주연인 패스빈더부터 얘기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 배우가 주로 맡는 역들은 감정을 누르고 고뇌하는 타입이지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쪽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과 포스터를 처음 접했을 때 즉각적으로 냉철한 킬러 이야기라고 기대하게 만듭니다. 사실 이 영화도 표면적으론 그렇게 보일 여지가 있지만 여기서 감독은 재밌게도 나레이션을 도입합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 목소리가 자리하고 특히 초반 시퀀스는 이 나레이션이 핵심입니다. 과묵해보이는 이 남자는 속으로 많은 말들을 합니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들을 따라가다보면 이 말들이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할 생각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영화의 중반부분부터 이 부분이 명확해지죠. 동정은 나약함, 계획에 집중. 사실 상 자기 최면에 가까운 얘기들로 중요한 순간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 말들을 해야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가 실제로는 주변 상황에 잘 휘둘리고 동정심이 많은 감정적인 사람이니까요. 사실 그가 복수에 나서는 순간부터 그 여정 중간 중간에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부분이 외적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이 킬러는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기 최면 뿐 아니라 틈날 때마다 스트레칭으로 이완하고 왓치로 끊임없이 심박수를 체크합니다. 이와 더불어 집중을 위해 그가 애용하는 건 음악입니다. 영화 내내 이 킬러가 애청하는 스미스의 명곡들이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그 음악이 차분한 클래식이 아니라 신나는 쟁글팝인건 차치하고서라도 그 밴드가 스미스란건 신기합니다. 질풍노도 시기의 사춘기소년이 쓴것 같은 모리세이의 감성적 가사들은 감정을 흐트리지 정리하게 할 것 같진 않거든요. 어쩌면 이 가사들은 흔들리는 킬러의 마음을 대변하는 걸지도 모르지요.
핀처 감독의 경우 넷플릭스의 방임주의 정책이 잘 맞는지 좋은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다음 영화도 기대되네요. 이상 더 킬러 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