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코 회원님들. 제가 계정이있고 눈팅하는 커뮤니티가 이곳밖에없어 염치불구하고 무코에 글 적습니다.
저는 올해 스물셋이고 올초 군대를 전역했습니다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중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제 확고한 꿈이 있었습니다. 영화감독이 되는 겁니다. 영화만 봤고, 영화만 좋아했고, 유일하게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한 시간이영화를 보고 만드는 시간이였습니다.
당연히 영화공부를 하기위해 준비했고 미국으로 유학을 준비했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에 집안 경제상황이 무너졌고 어머니는 가진 모든 재산들을 매각하여 빚을 틀어막았습니다. 현재도 4천만원정도 남아있어 조금씩 변제중입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어머니는 유방암 판정을 받으셨고 그나마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수술과 항암치료를 병행한 끝에 올해 완치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제가 준비하던게 한순간에 무산되고 집에 여러가지 안좋은 일들이 몰려오니 아무것도 할수없는 무기력증이 찾아오더라고요. 당시 저는 몸이 좋지 않아 고등학교를 중퇴후 검정고시로 졸업장을 취득하고 따로 유학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부도, 일상생활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집에만 틀어박혀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군대에 입대했고 군대에서 남는게 시간이니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당장 지금부터 9급 공무원을준비해서 조금이라도 어린나이에 취업해 어머니 부담을 덜어드려야 한다는 생각과,
평생을 사랑했고 이걸 하고 싶어서 이 유일한 꿈만을 보고 달려왔던 영화의 꿈을 다시한번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
수천 수만번 갈팡질팡 고민한끝에 저는 꿈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군대에서 군수를 준비했고 제가 원하는 학교의 영화과에 입학할 성적을 맞추었습니다.
근데 기쁨보다도 두려움이 몰려오더라고요. 어머니는 이전에 하던일을 더이상 할 수 없으시기에 식당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집은 현재 작은 원룸에 어머니와 저 둘이 살고 있고요.
어머니가 언제까지 경제활동을 하실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거니와 집안의경제상황도 너무나도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오로지 내 꿈만을 위해 달려나가는게 맞는 걸까?
영화라는게 다들 아시겠지만 정말 극소수의 그 바늘구멍을 통과한 사람들만이 간신히 입봉을 하게되는, 그 전까진 전혀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그런 일이잖아요
이전과 같은 상황이였다면 고민없이 영화공부를 시작했을 것 같습니다. 남들보다 경제활동이 좀 늦어져도, 조금은 실패해도 그 리스크를 감당하고서라도 내가 사랑하는 일을, 행복한 일을 하자는 생각이 더 컸을겁니다.
제 선택이 정말 이기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몰려오고 지난 몇주간 고민을 엄청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공무원을 준비할까.
대학 졸업하면 스물여덟일텐데 그리고 졸업해도 바로 취업도 어려울텐데, 지금부터 1~2년 다시 공부해서 스물다섯쯤 경제활동을 시작해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주는게 맞지 않을까.
그렇게 수없이 고민한끝에 솔직히 말하자면 이쪽으로 많이 기울었습니다. 참 미련한놈이죠. 그렇게 꿈만 보고 달려와서 이제 좀 시작해보려하는 타이밍에 또 후회를 하고 번복하려고 하다니.
영화의 꿈을 접는 순간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 영화를 다시 볼자신이 없습니다. 볼때마다 내가 원망스럽고 우리집이 원망스러울 것 같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들이 개봉해도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이 더 클 것 같습니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그 절망감때문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공무원 공부 시작하자는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었습니다.
어쩌면 꿈 접으라고 누군가의 마지막 한마디가 듣고 싶어 이렇게나 길게 주절주절 글을 쓴 것 같습니다.
이런 고민글을 여기에다 올려도 되나 정말 많이 고민했는데 제가 유일하게 보는 커뮤니티라 그냥.. 그냥 여기다 올리는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올렸습니다 너그러운 양해 부탁드립니다.
한심하기 짝이없는 놈의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아무리 공무원 경쟁률이 줄었다 해도 아직 경쟁률도 높고 되기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준비 기간 동안 벌이도 없는데다가(병행하면 더 쉽지 않겠죠.) 되더라도 솔직히 일확천금도 아닌데 영화와 꿈 이야기를 제쳐놓고서라도 공무원 자체가 메리트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상의는 충분히 하셨는지도 궁금하고요.
2. 공무원으로 마음이 기울었다손 치더라도 무코님 스스로 무언가에 진중하게 집중해서 확 하실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전 이 글만 보고 파악하기에 어떠한 분이신지는 본인이 잘 아실 겁니다. "공부도, 일상생활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집에만 틀어박혀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이 일이 반복되길 바라진 않지만 개인의 심리적일 때 드러나는 양태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특히 이런 양태는 공부에 치명적이고요. 거기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현실은 암담한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가는 길 가다가 회의를 품기 시작하거나 꼬이기 시작하면 그 길은 무엇 하나도 얻지 못하고 원망과 더 큰 좌절만 남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ex. 꿈에 대한 갈망으로 공무원 장수생이 되거나 공무원 준비하다가 현실적 여건으로 벌이를 해야 되어서 장수생이 되거나 결국 내가 택하지 못해서 잘못되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물론 악의도 없고 공무원의 길을 택하시면 꼭 한 번에 합격하셔서 좋은 결과 있으시길 매우매우 바랍니다.
3. 영화감독과 공무원의 직업적 특성은 정 반대입니다. 정말 기계적이고 창의성을 거세해야죠. 특히 그 특유의 조직문화가 제 주변 친구들 얘기만 들어봐도 쉽지 않습니다. 내가 짤리진 않지만 죽도록 싫어하는 사람도 짤리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구인구직이 어렵다 해도 공무원 정도의 벌이는 노가다가 아니더라도 솔직히 없지 않습니다. 차라리 맘먹고 1~2년 빡세게 일해서 아낄거 아끼면 빚 4천 있는 거 얼추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갚았고요. 잘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20대 초반에 영화와 공무원 이 두 가지로 한정하지 마세요. 길과 방법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