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의 전작을 본 적이 없고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관람했는데 일단 철학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영화였습니다. 생로병사와 희노애락의 굴레를 깨달아가며 성장하는 주인공을 내세워서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다루고있는 듯 했으나, 페미니즘과 유신론적 관점까지 아우르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향한 "연민"이라는 테두리 안에 감독 자신만의 철학으로 귀결시키는 스토리텔링이 돋보입니다. 기독교와 불교에서 모티브를 따온 장치들도 눈에 띕니다. 평소 현실적 고민보다 '나는 누구인가' '삶은 무엇인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이 공허한 마음 속에 늘 자리하고 있다면 관람하는 내내 곱씹는 즐거움이 큰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 페미니즘 영화로서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얼마전에 본 <바비>가 무슨 음을 어떻게 내야 아름다운 선율이 되는지도 모른채 무작정 이것저것 다 두드리는 시끄러운 악기 소리 같았다면, 이 작품은 페미니즘을 관객에게 영화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에서 독창성과 노련함이 엿보입니다. 감독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정리되어 잘 쌓아올린 서사와 맞물리는 느낌이라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바비>에서 성장하는 바비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쁘게 꾸민 "마고 로비"만 보였다면, <가여운 것들>에서는 엠마 스톤의 파격적 변신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체성을 탐구하며 고민하는 여정 가운데 마침내 주체성을 가진 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벨라"가 보일 뿐입니다. 그레타 거윅이 가서 한 수 배워와야 할 것 같습니다.
- 사람에 따라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장면들은 많습니다. 영화 컨셉상 고어한 장면들과 섹스신들이 적나라한데 웬만하면 2시간 반 동안 단식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섹스신들도 수위가 높은데 에로틱하다는 느낌은 거의 없습니다. 여성 주인공이 주체적인 성적 탐닉을 해나간다는 점에서 라스 폰 트리에의 <님포매니악>도 연상이 되는데 <님포매니악>의 섹스신이 뭔가 독창적이면서 처연한 느낌이었다면, 이 영화에서의 섹스신들은 귀엽고 순수한 느낌에 가깝습니다. 어찌보면 섹스코미디 장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스토리텔링 방식이 어렵거나 내러티브가 난해한 영화는 아니지만, 다시 보면 놓치고 지나갔던 영화적 장치들을 다시금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 정식 개봉하면 한번쯤 더 관람해볼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 엠마 스톤의 두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은 유력해보입니다.
*별점 및 한줄평:
●●●●(4/5) '실존주의적 페미니즘'이라는 뇌와 '연민'이라는 심장을 이식받아 비상하는 '엠마 스톤'이라는 육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