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주기인 4월 16일, [세 가지 안부]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왔습니다. 유튜브로 볼 수도 있는 걸 바쁜데 두시간 왕복하며 가서 보고와야하나 하며 어제 오늘 예매창을 들락거리며 고민하다가, 머릿수라도 채워야지 하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광고상영없는 인디극장이기도 하고 영화도 영화인지라 평소와 다르게 여유롭게 가서 앉아있는데 왠지 상영시간이 다가 올 수록 괜히 왔나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쉽지 않을 그 느낌이 기시감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이 작품은 세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세월호를 취재했던 여러 언론인들의 인터뷰와 그들이 촬영했던 당시 영상을 담은 <그레이존>,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부모님이 보여주는 자식들과 그리고 함께했던 이들의 <흔적>,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단원고 생존자와 친구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이브 97>
첫번째 <그레이존>, 여러 PD 와 기자들은 여느 때, 여느 사건들을 접하 듯 세월호 소식을 듣습니다. 계속해서 사건을 파악하는 와중에 전원구조 라는 소식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그것이 오보라는 것을 알게되고 다른 사건때 와는 전혀 다르게 '파악되지 않는' 그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으며 멘붕상태로 현장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것은 생지옥. 직접 어선을 빌려 세월호 코앞까지 갔던 유가족은 '구조하지 않고 있다'며 주저앉아 절규합니다. 그런데 언론들은 정부가 내보내는 구조 규모를 받아쓰기 하다시피 하면서 유가족과의 마찰이 눈덩이처럼 커졌습니다. 기자들은 나중에는 카메라를 다 내려놓고 휴대폰만 들고 주변을 오가며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기자들과 피디들은 당시의 생지옥을 묘사하며 정부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쓸 수 밖에 없던 상황을, 취재할 수 밖에 없던 자신의 역할을, 샷을 고민하던 자신들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눈물흘리고, 비통해합니다.
두번째 <흔적>은 부모님들을 통해 세월호로 희생된 이들의 흔적들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참사 이후부터 여전히 지우지 못하는 '흔적들' 의 이야기 입니다. 자식의 모습이 담긴 영상부터, 번호까지 모든 것들이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가슴에 남은 부모님들의 이야기 입니다.
세번째 <드라이브97>은 세월호로 떠난 친구를 기억하는 두 친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민지와 애진, 혜진은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떨어지게 됩니다. 민지와 같은 세월호에 있었던 애진은 겨우 살아남았고, 다른 고등학교를 다녔던 혜진은 애진의 곁에 있습니다. 이 둘을 촬영하는 감독은, 추모행사를 촬영하다가 생존자 애진을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중간중간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들어가며 작품이 너무 무겁지 않게 흘러갑니다. 애진과 혜진은 과거가 아닌, 만약 민지와 함께하는 미래라면, 지금처럼 어른이 되어 함께한다면 이 좋은 날씨에 무엇을 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작품 상영 후엔 인디토크가 진행되었습니다. 감독님들이 참여한 만큼 너무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면서도 하지만 너무나 많은 고민들을 해왔음을 알 수 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어딜가나 있는 흔한 질문 -시간상 편집되었지만 전하고 싶던 이야기가 어떤 것이 있는지- 왠지 꼭 묻고었는데... 그에 앞서 출연자, 제작자들에게 격려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버뜩 들었습니다. 이 작품들을 만들기 위해 용기를 내고, 시간을 내고, 노력을 쏟고, 마음을 쓴 모든 관계자들에게 고생하셨다, 감사하다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치만 저보다 더 할말이 있을지도 모를 사람을 위해 조용히 있었습니다. 역시나, 좋은 질문과 좋은 답변들이 나와서 조용히 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네요. (사실 '가만히 있었다' 고 쓰다가 표현을 바꿨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표현이 되어버렸네요)
이 <세가지 안부>는 첫번째에서 세번째 작품으로 갈수록 오히려 관계가 점차 가까워 지죠. 취재기자에서 희생자 부모님, 그리고 희생자와 같은 배에 있던 친구.. 그치만 연출의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덜 무거워집니다. 기획에서부터 이 상영 순서 또한 많은 고민이 있었겠죠. 상영 후 토크에서 '지금까지의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 한 방식과, 앞으로 세월호를 또 다르게 이야기 할 방식' 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아마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상영이 끝난 직후가 너무 무겁지 않았습니다.
상영 후 토크에서 세월호를 비롯한 이런 참사에 대한 슬픔이 늘 분노로 귀결된다는 어느 분의 이야기에, 감독님께서 '오늘 여기 온것도 잘한거다,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같은 편이지 않느냐' 라고 말하셨는데요, 오늘 4.16 에 잠시라도 추모의 마음을 가지셨던, 그리고 그 마음을 주변 어디에 나누기 쉽지 않았던 분들이 계시다면 이 두서없는 글을 보시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적어도 여기 한명은 있었구나 하고 위안을 얻어가실수 있다면 저 또한 감사하겠습니다.
* [세가지 안부]는 현재 공동체 상영 으로만 상영되고 있고, 유튜브 뉴스타파 채널에서 한시적으로 공개된다고 합니다. 글을 쓰며 검색하다보니 인천쪽 공동체 상영이 4월 18일에 있네요
현재 공개된 그레이존 의 링크 입니다. (16일 오전 9시부터 24시간 공개)
https://youtu.be/ay9iFrMKX34?si=FnW1f3Dgz02injq3
1.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세 가지 안부〉 (제작: 연분홍치마,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 한국 사회의 참사 희생자 이야기를 꾸준히 추적해온 김일란 감독(뉴스타파 2대 앵커)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옴니버스 형식의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입니다. 오지수, 한영희, 주현숙 감독이 각각 세월호 참사의 생존자, 희생자 가족, 당시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담아, 세월호 참사 10년이 남긴 의미를 들여다 봅니다. 전국에서 공동체 상영 중인 작품으로 뉴스타파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4월 16일부터 사흘간 하루에 1편씩, 24시간 한정으로 순차 공개합니다.
- 1편 〈그레이존〉 (감독 주현숙, 40분) - 4월 16일 오전 9시 공개 (24시간) : 10년 전 참사 현장 가까이에 있었던 언론인들의 이야기. 참사의 목격자들이었던 언론인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무엇으로 남았나.
- 2편 〈흔적〉 (감독 한영희, 40분) - 4월 17일 오전 9시 공개 (24시간) :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의 부모, 창현 엄마와 호성 엄마에게 지난 10년은 어떤 시간이었까. 그 시간의 의미를 들여다 본다.
- 3편 〈드라이브97〉 (감독 오지수, 40분) - 4월 18일 오전 9시 공개 (24시간) : 참사에서 살아남은 97년생인 우리들의 알수 없는 죄책감. 살아 남은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