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감독이 연출한 1995년 작 <301,302>는 장정일 작가의 원작을 영화화한 폭식증, 거식증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302호에 사는 작가 윤희(황신혜)는 거식증을 어릴 때부터 앓고 있습니다. 정육점을 하는 의붓아버지의 성폭력을 피해 대형냉장고 안에 숨는데 친구가 이를 따라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윤희는 그 사건 이후 음식을 잘 먹지 못하게 되죠.
한편 301호로 이사를 온 송희(방은진)는 무료한 일상을 퇴근하는 남편을 위한 밥상과 더불어 섹스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이에 피로함을 느낀 남편은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심지어 바람까지 피게 되죠. 송희는 눈을 돌려 옆집 여자 윤희에게 음식을 퍼다 나르게 되는데 윤희는 거식증으로 인해 송희의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됩니다.
송희 남편의 사망사건으로 시작해 회상을 교차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독특한 설정이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90년대 중반부터 모스트 모던니즘의 유행이 있었는데 이 작품도 그 유행과 더불어 장르영화로서의 재미도 주는 작품입니다.
지금도 충격적으로 볼 수 있는 식인을 은유하는 장면뿐만 아니라 폭식과 거식이라는 소재도 당시엔 꽤나 유니크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앵글과 조명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지만 그에 반해 캐릭터에 비해 이야기 자체는 조금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특히 형사가 송희를 심문하면서 회상으로 넘어가는 설정과 이야기가 좀 아쉽더라고요.
무엇보다 이 작품은 방은진 이라는 배우를 탄생시킨 작품입니다. 지금은 다수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의 탄생을 알린 영화가 바로 <301 302>였습니다.
10년 전쯤 사고로 인해 아쉽게 박철수 감독이 돌아가셨는데 그에 독특한 작품 중 <301 302>는 그의 대표작이자 할리우드에서도 리메이크 됐을 만큼 다양한 해석이 될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