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저에게 불안감과 공허감이 많아졌었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두려움과 좌절감을 느꼈던 적이 많았거든요.
먼저 말씀드리면 저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다가 해외로 교환학생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지금은 현지의 학교 과정은 다 끝나고 지금은 언어를 독학하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해외에 체류 중입니다.
해외의 학교 과정이 끝난 다음에 저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주어졌는데요. 혼자 있는 시간동안 자연스럽게 계속 제 스스로를 마주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다보니 문득 무서워졌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직접적으로 느낀 것 같았습니다. 제 꿈은 영화비평이었습니다. 대학도 영화 관련 학과로 진학을 했었구요. 그런데 저는 영화에 대해서 제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펴는 능력은 잘 없다고 느껴질 뿐더러, 제 생각을 글로 써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글을 쓰고 나중에 그것을 보면 제 글이 진부하게 느껴져서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해외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단점인데, 외로움입니다. 문화적 차이나 이런 것들이 너무 크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도 오랫동안 이야기를 할 만한 주제를 찾는 게 저에게 쉽지 않을 뿐더러, 스몰 톡을 계속 이어갈 만큼 저의 외국어 배터리(?)가 넉넉한 것도 아니구요. 솔직히 그 때문에 언어적, 문화적 장벽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 장벽에 계속 부딪히면서 언어 독학을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언어고 뭐고 일단 한국으로 돌아갈까는 생각을 여러 번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인 친구가 없는 건 아닙니다. 만약 없었다면 저는 이 외로움을 버티지 못했을 거는 분명해요.)
아무 목적도 없이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서 뭐라도 해야할 것만 같은 초조함이 가끔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난 뭐 해야 하지?'라는 불안감이 저절로 따라오더라구요. 고등학생 때부터 저는 경쟁이라는 거에 너무 피로를 느꼈었는데 다시 그 불 같은 사회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게 한편으로 거부감이 들기도 했구요. 1~2년 사이에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긴 하지만, 저는 해외에서 오랫동안 있어보는 게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어서 저의 막연한 초조함 때문에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미래에 무엇을 하고 있을 지가 그려지지가 않아서 무서웠습니다. "꿈만 있었고 영화만 많이 봤지 너무 게을렀다"라며 저에게 질책을 많이 합니다. 영화 비평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게 내가 진짜 원하는 길이었나 헷갈리는 지경까지 왔었습니다. 제가 진짜 원했던 거라면 이렇게까지 게을렀을까도 싶었었구요.
게다가,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실패를 겪기도 했습니다. 여러 제약과 장벽이 많아서 안 될 거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안 된다'는 확실한 판결을 받았고 그것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네요.
제가 부정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들이 폭포처럼 쏟아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인생을 아직 많이 못 살아봐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그 때문에 평생 앓고 있는 우울증도 격하게 온 그런 시기였습니다.
계속 마음을 바꿔보려 산책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산책에 익숙해지니 그것도 지루해지는 순간까지 오더라구요. 친구들을 만났지만 집에 오면 늘 공허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에 있든 해외에 있든 이 우울감은 누구에게나 오는 보편적인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한꺼번에 겪고 나니 저는 '사람들은 이런 감정들을 어떻게 다 견디고 살아가는 거지?'라고 생각을 했었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저는 그냥 감정과 상황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요. 제 감정과 상황을 받아들이니 제 마음이 점점 나아지더라구요. 그게 '포기하면 편해' 이런 의미는 아닙니다. 나의 감정과 상황을 거부하지 말고 차분하게 받아들이고 나니 내가 그것들을 어떻게 다루면 될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슬프거나 외로운 감정이 찾아오면 그것에 젖어들면서 감정을 터뜨려 버리고 지금 내가 불안하면 '무언가를 조금이라도 하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로 모르는 길 위에서 제 자신의 위치를 짐작해가는 그런 과정일 뿐이고 타인이 보기에는 엄청 시시한 결론이겠지만 저에게는 어떤 깨달음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영화 얘기를 섞어 마무리를 하자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에서 주인공은 30년 동안 공무원으로서 기계적으로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암에 걸려 자신이 시한부 인생임을 알게 되고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방황하다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을 무언가를 하게 됩니다. 제가 노년의 주인공의 슬픔과 고뇌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한편으로 그의 죽음에 대한 불안과 그로 인한 외로움이 오히려 자신의 삶의 의미를 탐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불안하고 외롭기 때문에 제 자신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하게 만드니까요. 저에게 불안과 외로움을 도려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거고 저는 그것들을 평생 안고 살아가겠죠. 추후에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저의 성격 상 외로움은 계속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들을 견뎌내면서 제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절해고도>에 그런 대사가 나오더라구요. "돌아올 수 있는 길이야. 막힌 길도 아니고."
긴 푸념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3.16.2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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