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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는 호러 장르로 보면 좀 이상한 지점들이 있습니다. 일단 악령이 나온다면 그 영화의 기본적인 주제는 이 악령을 어떻게 주인공의 세계에서 내쫓고 평화를 되찾을 것인지에 대한 것입니다. 신부가 됐든 다른 종교인이 됐든 의뢰인 혹은 주인공은 악령과 맞서 싸울 것입니다. 그런데 [파묘]에서 주인공들은 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빈틈이 많이 보입니다. 보는 사람들도 의뢰인의 죽음을 딱히 슬퍼하지 않습니다.

 

[파묘]를 1부와 2부로 나눠봤을 때 1부의 첫장면은 화림과 봉길이 미국의 어느 부잣집 교포의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화림과 봉길은 거기서 악령의 기운을 느낍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과 합류해서 파묘를 하고 귀신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하죠.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화림 일행은 의뢰인이 친일파의 자손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영화는 의뢰인 박지용이 귀신에 들려서 2차 대전 시 일본군처럼 행동하는 장면을 아예 대놓고 보여줍니다. 귀신을 물리치는 과정은 그 귀신이 어떤 귀신인지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니 여기까지는 딱히 이상할 건 없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악령이 의뢰인 박지용을 포함해 박지용의 어머니도 죽여버립니다. 이 때 이 악령은 그저 힘이 강해서 그렇게 할 수 있던 것이 아니라, 무덤에서 파온 관을 고영근의 동료인 병원 담당자가 뚜껑을 열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담당자가 뭔가를 몰랐거나 우연이 맞아 떨어져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순전히 관 속에 값나가는 물건은 없는지 사리사욕을 부려서 악령이 뛰쳐나오고 그렇게 일가족이 몰살당한거죠. 즉, 이 악령이 산 사람의 세계에서 해악을 끼치는 계기를 준 것은 일차적으로는 고영근의 동료 때문이고, 더 간접적으로 보면 화림 일행의 부주의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은 영화 안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영화 바깥에서 본다면 악령과 싸워야하는 사람들이, 악령의 살인사건에 제일 큰 과실을 갖고 있는 셈이죠. 

 

이것을 호러장르로 본다면 이상한 지점입니다. 화림 일행은 딱히 자기 일에 집중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코메디 영화가 아니라면, 악령퇴마사가 악령을 내쫓는데 이렇게까지 허술하게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화림 일행은 '퇴마사'로서 대단히 아마추어스러운 집단입니다. 이들이 진짜 프로라면 의뢰인을 보호해냈어야죠. 이 1부의 내용이 얼마나 이상하냐면 이 퇴마사 일행은 아무 것도 못합니다. 내내 귀신에 농락만 당하다가 이 귀신을 결국 물리치는데 그게 결국 시신을 화장하는 겁니다. 이 악령을 이해하고 어떤 원리를 찾아내고 그래서 무덤이나 어떤 무속행위로 귀신을 물리치고 의뢰를 완수했어야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불길하니 시신을 화장해버립시다, 라고만 했어도 이 일은 해결이 됐을 일입니다. 그리고 의뢰인의 아들 빼놓고 일가족이 도륙나버렸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딱 하나, 영화의 의지로 보는 것 뿐입니다. 이 의뢰인 가족은 죽어야 됩니다. 왜? 친일파 후손이니까. 이들이 귀신을 내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미국에서 잘 먹고 잘 살면" 안되니까. 그러니까 이 지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지점이 있는데 하나는 의뢰인 박지용의 새어머니가 죽는 장면입니다. 귀신은 핏줄을 괴롭힌다고 영화 초반에서 언급을 했는데, 엄밀히 따지면 박지용의 어머니는 핏줄 상 외부인이죠. 그런데 '시아버지'인 혼령이 박지용의 어머니를 죽입니다. 하지만 관객인 우리는 아무도 그걸 따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박지용의 어머니는 그 커다란 집에서 혼자 술마시면서 흥청망청 춤이나 추고 있으니까. 이 어머니란 사람이 가족의 일원이서가 아니라, 그 친일행위의 결과인 부를 만끽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시아버지의 악령이 어머니를 죽이는 걸 괘씸죄 명목으로 납득합니다. 

 

그러니까 악령이 안건드리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먼저 의뢰인 박지용의 아내입니다. 이 사람이 외부인이라기엔 이미 박지용의 아내가 되었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를, 할아버지 악령이 자꾸 죽이려고 하는거죠. 그런데 손자며느리는 괴롭히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 이상하게도 영화는 이 일가족의 고통에서 박지용의 아내는 빼놓죠. 두번째로는 박지용의 고모입니다. 박지용의 아내가 악령 기준에서는 손자 며느리이니 훨씬 더 먼 가족이고 일종의 외부인이라 안건드린다고 친다면, 그보다 훨씬 더 가까운 핏줄인 이 고모, 즉 악령의 친딸은 당연히 괴롭혀야 됩니다. 그런데 안건드리죠. 영화에서 편집이 되었을 뿐 원래는 있던 장면이라고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볼 때 이 고모는 아버지의 악령이 안건드립니다. 왜? 아주 가부장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조금 더 영화적으로 설명을 하면 간단합니다. 고모는 "미국에서" 호의호식을 하는 장면이 없으니까요. 으리으리한 차를 끌고 오긴 했지만 어쨌든 이 사람이 친일파 자식으로 부를 탕진하는 그런 느낌을 화면으로 보여준 적은 없습니다. 관객이 그걸 목격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살려둬도 크게 문제는 없는거죠.

 

그러니까 [파묘]는 조상의 악령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악령을 소환해서 일단 친일파들을 숙청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정치적 의식이 너무 강하다보니 이걸 호러장르에 녹여내지를 못해서 영화가 장르를 스스로 배반합니다. 퇴마사 일행은 갑자기 탐욕이 도져서 관뚜껑을 열고, 갓난아기 빼고는 악령에게 괴롭힘당하는 사람들을 아무도 못구해내고, 그 해결방법은 그냥 화장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게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관객인 우리는 누가 친일파라는 걸 알았고, 그 사람들이 얼마나 잘먹고 잘사는지를 보고 말았으니까요. 어쩌면 그 사람들이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천황폐하 만세를 속으로 외치고 있을지 모른다는 걸 '귀신들린 장면'으로 보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일단 이 사람들을 죽여야 되는거죠. 한국에서 떵떵거리는 사람들까지는 몰라도, 외국까지 나가서 저렇게 잘 먹고 자사는 정도의 친일파들은 천벌을 받아야 된다고 영화가 싸늘하게 말하고 있죠.

 

영화는 2부의 시작에서도 호러로서는 엉뚱한 느낌을 주는데, 일본귀신의 등장은 필연적이라기보다는 애써 그 무덤을 파내서 그 관을 꺼내온 퇴마사 일행들이 자초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역시도 '말뚝전설'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뽑아내야된다는 민족드라마로서의 목적 때문에 인과관계가 뒤집힌 느낌이 있죠. 이 부분은 후에 상덕이 화림에게 자기가 괜한 짓을 했다고 사과를 하면서 봉길의 부상에 책임감을 느끼는 듯한 말로 수습은 하지만, 영화 전체가 민족적 사명감 때문에 불확실한 뭔가를 찾으려하고 자꾸 위험을 자초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사람을 지키거나 또 다른 세계의 이치를 따지는 것보다도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책임의식에 계속 시달리는 것 같달까요.

 

무덤을 파헤쳐보니 먼저 친일파의 계보가 나왔습니다. 그 밑을 또 파보니 묻혀있는 일본 귀신이 나왔습니다. [파묘]의 1부와 2부를 이 흐름에서 이해하면 맨 처음에는 살아있는 친일파 사람들, 즉 육신을 청산하고 또 하나는 오래된 일본 귀신, 즉 친일의 혼령을 청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다양한 제작상의 이유도 있겠지만 친일이라는 역사적 과오를 뽑아내고자 하는 감독의 역사적 태도 때문에라도 이야기가 2부로 쪼개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귀신을 물리쳐도 물리적으로 친일파 후손들이 살아가면, 그건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친일파 사람들만 다 치워내면? 그건 장르적인 문제에도 부딪힐 뿐더러 '혼'이라고 하는 세계관을 영화로 건드리려고 할 때 본격적으로 뭔가 치워내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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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에서 가장 많이 설왕설래가 되었던 부분은 아마 '험한 것'이라는 크리쳐일 것입니다. 귀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갑자기 몸을 가진 괴물이 나오는 것인가. 그리고 그 괴물은 왜 저렇게 말을 하고 걸어다니면서 뭔가를 잡아먹고 다니는가. 이 장르전환이 노리는 호러적 효과가 따로 있을 순 있겠지만 저는 이것을 오히려 민족드라마로서 보고 싶어집니다. 1부의 이야기는 친일파의 시체를 파내서 그것을 태우는 이야기였습니다. 2부도 똑같습니다. 친일을 지배하고 일으키는 '일제' 그 자체의 시체를 파내서 태우는 이야기여야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파묘'이지만 사실은 '화장'이 그 목적에 더 가까운거죠.

 

이 전에 [사바하]에서도 그랬지만 장재현 감독은 '육손'이나 나이들지 않는 몸을 통해서 시각적이고 유물론적으로 어떤 기괴를 실증하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있어야, 그것을 없앨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없애기 위해서는, 일단 몸과 살덩어리가 있어야 됩니다. 아마 이 부분에서 호러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재미가 급감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건 좀 반칙이니까요. 그러니까 귀신의 세계에 좀비가 나온 셈이고 그 인식체계가 다르다는 점에서 관객이 뇌내장르전환을 해야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죠.

 

다만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되어버리니 이 때부터는 그 초현실적인 부분을 증명하기 위해 아주 큰 키에 징그러운 몰골을 해야한다는, 꽤나 직관적인 형상을 띌 수 밖에 없고 이 때부터 [파묘]는 저같은 사람에게는 유치한 느낌이 안들 수가 없었습니다. '거인'은 당연히 무시무시한 존재이니만큼 그 '거대하니까 무섭다'는 다소 일차원적인 묘사가 1부의 '불가해함'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진 종류의 감흥이라 이 영화의 원래 테마인 '묘를 파낸다'와도 좀 거리가 멀어진 느낌이 있었구요. 물론 재미가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험한 것이 몸을 갖추고 퇴마사 일행과 민가를 위협하면서 '투쟁의 대상'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민족드라마에 딱 맞는 성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부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냈다면, 2부에서는 그것과 싸워서 없애야하는 목적만이 남았을테니까요. 물론 그 부분에서 은어나 참외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부분들은 그냥 먹을 것 투정같아서 황당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구전설화가 실체를 갖추게 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묘]는 제가 통일적 완성도를 갖춘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창작자 안에서 정치드라마와 호러드라마가 장르간의 결투를 끝내지 못한 채로 결합했을 때 어떻게 작품이 되는지 보여주는 점에서 더 흥미롭습니다. 아마 이 영화를 어떤 장르로 보느냐에 따라 그 호불호는 갈릴 수 밖에 없겠죠?


profile Solar

안녕하세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극장에 가서 영화보는 걸 좋아하고 노트북으로나 다른 매체로는 영화를 잘 못봅니다...

영화 비평에 관심이 많고 단순한 서브컬처 소비 이상으로 영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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