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베테랑2>가 <범죄도시4>보다 재미 없었습니다. 일단 전편의 개성을 상실한데다가 이런 류의 이야기는 이제 컨텐츠의 홍수 시대에 살고있는 현시점에서 더이상 새로울게 없네요. 최근 제작된 OTT 시리즈 <비질란테>, <노 웨이 아웃:더 룰렛>에서 다루었던 설정과 이야기의 재탕에, 전편부터 시작해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와일드 카드>, <공공의 적> 등 1990년대 말~2000년대 초의 형사물까지 고루 연상시키는데 한마디로 현시대의 이야기를 하고는 있지만 감성과 작법은 올드합니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액션에 땀내 나는 캐릭터들의 앙상블, 열혈 형사와 골때리는 빌런의 팽팽한 대결 구도, 그리고 위트있는 사회 풍자가 적절히 배합된 전편의 호쾌한 매력은 사라지고 정의와 심판의 윤리적 개념, 현세대 미디어에 대한 비판 등 하고싶은 말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톤 앤 매너가 전반적으로 촥 가라앉고 무거워진 느낌인데 그렇다고 메시지가 진득하고 깊이있게 전달되는 것도 아니며 산만한 인상마저 줍니다. 전편을 오마주한 장면과 대사들은 물론이고 간혹 소소하게 던지는 유머조차 도무지 웃기질 않습니다. 몇몇 연출은 촌스럽기까지 하고 쿠키 영상은 없느니만 못합니다.
UFC를 연상시키는 하드코어하고 현란한 액션씬들이 내러티브와는 별개로 손에 땀을 쥐는 볼거리를 제공하며 아드레날린이 샘솟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각본이 총체적 난국입니다. 스포할 요소도 딱히 없을 만큼 기발하고 신선한 아이디어가 부재한데다 내러티브 또한 단선적이고 진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루었어야 할 빌런의 서사가 지나치게 생략되어 있어 형사 vs 빌런의 대결 구도가 전편만큼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지 않습니다. 조연급 형사들의 활약도 딱히 새로울게 없고 오히려 전편보다 미비하여 속편이랍시고 그냥 의리로 출연한 것 같은 느낌만 듭니다. 솔직히 이 정도 각본은 시나리오 창작 수업을 듣는 대학생들 조차 전편을 감상했다면 충분히 써낼 수 있는 수준으로 보입니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개별 작품이 증명하듯 이런 류의 영화는 빌런의 존재감이 성패를 좌우하는데 영화 내내 유아인이 그리웠습니다. 정해인 같은 이미지의 배우를 범죄 영화의 빌런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관객으로 하여금 납득이 갈만한 서사의 빌드업이 필수인데 전편의 조태오는 둘째치고 마동석이 원맨쇼 하다시피 한 <범죄도시> 3, 4편의 빌런들보다도 존재감이 빈약합니다. 최소한 그들은 나쁜 놈이라는 인식은 들었으니까요. 전편에서 철 없고 야비하게만 보여 얄밉기가 그지 없던 빌런이 선보인 의외의 싸움 실력 때문에 "저 새끼 싸움 존나 잘해"라는 대사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클라이맥스의 임팩트도 이 영화에서는 실종되었습니다.
<범죄도시2>가 전편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고 현재까지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손석구가 맡았던 강해상의 존재감이 전편의 장첸 못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러한 맥락에서 <베테랑2>는 향후 시리즈의 지속 여부가 전혀 기대되질 않는 이벤트성 속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삐걱거리기도 하고 비판도 받긴 하지만 고유의 클리셰를 양산할 정도로 자기 공식과 개성을 우직하게 따르는 점, 철저하게 무거운 범죄 실화를 기반으로 내러티브를 재구성하면서도 관객들이 기대한 만큼의 가볍고 익숙한 재미 포인트가 확실하다는 점 등이 대중영화로서 <범죄도시> 시리즈의 지속적인 성공 요인이 아닐까 싶으며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영화 인력들이 OTT라는 플랫폼에서 길고 여유로운 호흡으로 양질의 컨텐츠를 완성해내고 관객은 그것을 손쉽게 접하고 즐기기 충분한 이 시대에 이런 무색무취한 2시간 짜리 범죄물, 형사물이 더이상 어떠한 메리트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P.S 류승완 감독 영화 중 쌈마이 액션과 와일드한 감성에 전율과 페이소스를 느끼게 했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능가하는 영화는 아직도 없는 것 같습니다...
*별점 및 한줄평:
●●(2/5) <범죄도시> 시리즈의 승승장구가 부러웠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