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습니다. 평범한 중산층, 아니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사는 남자입니다. 남자의 주변은 늘 북적입니다. 가족들은 끊임없이 자기 할 말만 하고 학교에서도 다들 자기가 잘났다고 떠들어댑니다. 남자는 끊임없는 주변의 소리들을 귓등으로 흘립니다. 그런 가운데 남자는 가끔 기이한 악몽을 꿉니다. 정체 불명의 악몽을 꿀 때마다, 남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흔들리지만 다시 자신의 주변을 감싸는 수많은 사람들의 잡음에 섞이자면 안심하게 됩니다. 남자는 가끔 생각합니다. 어쩌면 천국은 잡음으로 가득할지도 모른다고요. 그렇다면 지옥은 무엇일까요.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죽음이란 아마도 평소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진지하게 들리는 곳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 하나에 무언가의 의미가 담겨 있고, 그 의미는 분명 비극을 내포하고 있으며, 사소한 악몽, 데쟈뷰라 느끼는 그 어떤 것을 일일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평소엔 비웃는 음모론에도 우린 끝장이야, 이제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고 말 거야라고 믿는 그런 것일 겁니다.
이 영화 '화이트 노이즈'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일상과 비일상을 가르는 순간이 왔을 때,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임으로써 에로스로 가득한 삶이 미친 듯이 타나토스를 추구하는, 심지어 그 타나토스마저 죽여버리고 싶어하는 자아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고요. 하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은 결국 죽음으로 향하고 있어도 우리는 이승에서 굴러야 한다고요. 헛소리와 같은 그 잡음이, 살아있음의 신호가 된다는 그 사실이, 얼마나 안도를 느끼게 하는지 깨닫고 난다면, 이 수없이 잡다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속에서 그저 즐기며, 바코드에 찍힌 듯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날이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겠느냐고요.
삶과 죽음을 노래하는 듯한 '화이트 노이즈'의 엔딩크레딧은 정말 멋집니다. 말 그대로 에로스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단번에 훅 느끼게 한달까요. 이상, 극장에서 어렵고 재미가 없어 난리가 났다고 했는데 저는 너무나 재밌었던 넷플릭스 영화 '화이트 노이즈'의 짧은 감상문이었습니다.
#화이트노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