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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반적으로 전작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의 합집합 느낌입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일본인들의 아픔과 두려움을 어루만지고 희생된 넋을 위로하며 미래의 희망을 노래하는 내러티브와 테마에서 전작들의 동어반복적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의 목소리가 한층 더 깊고 간절해졌습니다.

 

-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구원"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형태로든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베이스에 깔고, 구원이라는 화두에 대해 보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고민한 흔적이 보입니다.

 

- 약 800만의 신들이 만물에 깃든다고 하는 일본의 전통 민간 신앙은 물론이고, 성경에서 차용한 설정으로 보이는 부분들도 눈에 띕니다. 특히 번제물(희생제물)에 관한 내용이 중요한데요. 이것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닥칠 재앙이나 저주를 한 사람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대신 짊어진다는 개념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맞이했다는 성경의 예수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나라 설화에서 찾아보자면 세찬 물살로 인해 수많은 어부들의 목숨을 앗아간 인당수를 달래기 위해 인신제사로 바쳐진 심청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작 <날씨의 아이>에서도 이러한 개념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가긴 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에 대한 감독의 고찰과 가치관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 저승의 세계에 흐르는 죽음의 기운 즉 "미미즈"를 막기 위해서는 "토지시" 즉 재앙의 문을 닫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자기 희생이 필요합니다. 일본 전역을 다니며 열린 문들을 닫는게 전부가 아니라, 선택 받은 자는 반드시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 하는데요. 재앙을 막아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요석이 되어 다른 누군가가 임무를 이어받기 전까지 천년이고 만년이고 자신의 생명을 되찾을 수 없습니다.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재난으로 생명을 잃은 수많은 영혼들을 보듬을 뿐 아니라, '수백만명 혹은 인류 전체를 위해서 한 사람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과연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 이 질문에 대한 감독의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모든 이의 생명이 공평하게 소중한 것인데, 대의 즉 다수의 구원을 위해 한 생명이 희생을 강요 당하는 것은 모순임을 강조합니다. 감독의 이러한 가치관은 요석이 될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국 희생제물로 바쳐진 사토를 구원하고자 애쓰는 스즈메의 결연한 의지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엔딩에 흐르는 노래 가운데 '수천년 후 인류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보다 지금 웃고있는 너를 보고싶어' 라는 가사에서도 확고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어찌보면 사토와 스즈메의 캐릭터 및 관계는 성경의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 같습니다. 토지시, 즉 구원자인 사토에게 재난을 막는 기술(?)을 전수받아 그를 돕는 제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 스즈메는 단순히 이성적인 감정이라고만 단정지을 수 없는 흠모의 마음을 품고 기꺼이 그와 동행합니다. 또한 성경에서 희생제물로 바쳐졌던 예수가 약 3일만에 부활하고, 부활한 그를 가장 먼저 대면하는 제자가 바로 마리아인데요. 사토와 스즈메의 스토리에도 이를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사토의 장발 스타일 마저 묘하게 예수와 닮아 있습니다.

 

- 다이진으로부터 요석의 운명을 이어받은 사토가 의자로 변한다는 설정도 예수의 공생애적 의미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희생제물의 사명을 감당하기로 선택된 자는 그때부터 자유의지를 가진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더이상은 살 수 없게 된다는 구속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이진 역시 본래는 토지시 가문의 어린 아이(사토의 먼 조상)였지만, 넘겨받은 사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고양이로 변했다가 결국 요석이 되는 운명을 맞이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 그런 점에서 가장 연민을 자아내는 캐릭터가 다이진입니다. 일단 비주얼부터가 길에서 만나면 발걸음을 멈추고 츄르 하나 대령하고 싶게 생겼죠. 사람이었을 당시 희생제물로서의 운명을 감당하기엔 너무나 어렸기에 삶에 대한 여한이 굉장히 컸을 것입니다. 이는 오랜 세월이 지나 스즈메에 의해 마침내 부활한 후 그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요석이라는 사명의 바톤을 후손인 사토에게 바로 넘겨버리고, 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사토를 의자로 만들어버립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토의 영혼을 의자라는 물체에 가두어버린 것이죠.(아마 비슷한 이유로 다이진 역시 다른 누군가에 의해 고양이의 몸에 갇혔을 것으로 보임) 하지만 토지시로서의 정체성과 사명감은 잃지 않았기에 스즈메와 사토를 유인하여 재앙을 닫는 일을 지속하게 하죠.(엄밀히 말해 사토를 통해 사랑에 빠진 스즈메까지 유인. 일타이피!)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삶을 다시 얻고자 자기를 대신하여 사토가 희생제물로 바쳐지도록 강요하고 유도합니다. 영화상에 다 드러나진 않았지만 다이진이 삶에 대한 갈망과 사명의 완수 사이에서 얼마나 갈등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른인 사토도 더 살고 싶다고 부르짖는데 어린 아이는 오죽 했을까요?

 

- 그러나 다이진의 마지막 선택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죠. 어떻게든 사토를 다시 살리고자 하는 스즈메의 간절함을 보고 결국 사토 대신 다시 한번 제물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스즈메의 아이가 되고싶었던 자신의 갈망을 뒤로 한채 말입니다. 고양이로 변한 다이진이 다시 인간의 삶을 얻기 위해 필요했던건, 어쩌면 자신이 간택한 스즈메 집사의 뽀뽀 한 번이었을지도. 그리고 어쩌면 스즈메를 통해 그동안 그리웠던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싶었을지도. 하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이 사명은 자신이 끝까지 짊어져야 할 십자가임을 알고 있었는지도... 결과적으로 다이진이 사토와 스즈메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해 희생제물로 바쳐진 모양새지만, 이는 타의에 의해 강요된 희생이 아닌 순수하게 본인의 의지에 의한 자발적 희생이라는 점에서 정당화될 여지와 그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 다른 개체에 갇혀서 죽은 상태나 다름 없는 저주, 즉 잠에서 깨어나 인간의 육체와 생기를 회복하는 방법으로 설정된 행동이 바로 키스인데요. 클라이맥스에서 의자로 변한 사토에게 하는 스즈메의 키스는 이성적 스킨쉽의 의미가 아니라, 타인에게 숨 즉 생명을 불어넣는 성스러운 의미로 보는게 맞을 듯 합니다.

 

- '문을 닫아 재앙을 막는다'는 설정 또한 종교적인 의미와 일맥상통 합니다. 성경에는 모세의 출애굽 사건 직전에 신이 이집트에 열가지 재앙을 내리는 장면이 등장하죠. 이 가운데 마지막 열번째 재앙은 죽음의 천사가 문을 통해 각 집에 들어가 장자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때 양의 피를 문기둥에 바른 집은 문을 닫은 것으로 간주해 재앙을 피하게 되는데요. 문이라는 요소는 공간과 세계를 분리하는 장치일 뿐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생사복화가 넘나드는 통로로서의 종교적 의미가 컸습니다.

 

- 신카이 마코토는 전작들에서도 세밀한 작화를 선보였지만,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시골 마을과 대도시를 오가며 일본 전역의 갖가지 풍경들을 다채롭고 정취있게 묘사하는데 더욱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 유독 평온한 온기가 느껴지는데요. 이는 도시와 마을을 뒤덮는 재난의 기운과 극명하게 대비되어 관객에게 죽음의 공포를 보다 선명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 로드 무비와 판타지 장르의 틀을 가져왔지만 묘하게 마블 히어로물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중요한 일은 원래 눈에 띄지 않게 하는거야' 라는 사토의 대사 뿐 아니라 두 주인공의 케미, 또한 액션이나 판타지적 요소들도 우리가 그동안 마블 영화에서 봐왔던 어떤 것들과 비슷한 결이 존재합니다. 문이 등장할 때 마다 웬지 닥터 스트레인지가 뿅 하고 나타날 것만 같고, 도쿄의 하늘을 덮은 재난의 기운을 표현한 씬이나 마지막 결투 씬에서는 흡사 마블 영화의 빌런과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 빨간색 스포츠카를 함께 타고 여주인공의 고향으로 돌아가, 과거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던 재난과 엄마의 죽음을 직면하고 마침내 치유를 얻는다는 후반부의 내러티브적 설정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상시킵니다. 점잖게 달리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사브900과 달리 중고차의 고충(?)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자동차가 씬스틸러입니다.

 

 - 타임슬립으로 과거의 나를 만나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결말은 다소 식상합니다. 타임슬립은 이미 <너의 이름은>에서 반전의 중심축으로 써먹은 설정이기도 하죠.

 

- 이번 작품은 앞서 두 작품을 통해 그동안 신카이 마코토가 해왔던 이야기를 다시금 강조하고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여러모로 결코 가볍게 볼 작품이 아닙니다. 허나 개인적으로 <초속 5센티미터>나 <언어의 정원> 같은 초창기 작품의 서정적인 정서와 소박한 이야기가 그립습니다. 이제 "재난 3부작"은 잘 마무리했으니, 차기작에서는 다시 힘을 좀 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배경으로 일본인들의 단절과 고독의 정서를 녹여낸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별점 & 한두줄평

●●●○ 죽음에 대한 근원적 공포와 구원에 대한 종교적 고찰, 그리고 생명에 대한 절대적 의지. 전작들의 동어 반복적 느낌은 있지만, 한층 더 깊고 간절한 신카이 마코토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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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문단속 #후기 #리뷰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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