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메시지를 다루는 과정이 스포일러로 보일 수 있겠다 싶어 스포 표시를 했습니다!
조던 필이라는 감독은 "호러 무비의 새로운 총아"라는 타이틀보단 "헐리우드의 문제아"라는 칭호를 좀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이번 "놉"을 포함해 아직 세 작품 밖에 연출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영화는 분명히 '조던필 영화'라고 할만한 견고한 장르적 특징을 갖는다. 관념을 비틀어낸 뒤틀린 아이디어와 애써 무시하고 살아왔던 생의 단면을 쿡쿡 찌르며 억지로 상기시키는 듯한 메시지가 그것이라 할 수 있겠다.
'겟 아웃'이 그러했듯, '어스'가 그러했듯, 이번 '놉'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의 내용은 생각지도 못한 비틀린 - 그러나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은 - 방향으로, 메시지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누군가는 분명 불편함을 느끼도록 정교하게 진행된다. 관객은 비틀린 문법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열광하고 어느새 열렬한 옹호자가 되어 그가 남긴 메시지에 대해 곰곰히 씹고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것이 우리가 조던 필 영화를 보고 영화관에서 나올 때, 잘리지 않는 질긴 끈이 허리에 둘러매진 것처럼 여간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는 이유라 할 수 있겠다.
그 중 '놉'이라는 영화에 대해선 한 마디로 정리가 가능하다, "생각을 배제하고 봐도, 생각을 많이하고 봐도 찜찜함이 남는 영화" 앞서 조던 필 영화에 대해 '정교함'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했듯이, 그의 영화는 매우 잘 직조되어있어 마치 한 편의 논문을 읽는 듯한 기분마저 들게 한다. 하지만 이 논문에는 주석이 달려있지 않다. 이 영화를 해석할 결정적인 주석은 오로지 관객의 몫으로 열어둔다. 관객이 끊임없이 되내이고 찾아보게 만듦으로써 영화를 온전하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여기서 찜찜함의 아이러니가 탄생한다. 그의 영화의 장점인 정교함이 또한 단점으로 돌변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 영화를 단지 장르 영화로서 소비하고자하는 사람들에게 '놉'이라는 영화는 꽤나 많은 맥거핀들이 남겨지는 엉성한 영화가 되어버린다. 왠지 중요해보이는 설정과 중요해보이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표면적으로 이렇다할 무언가 없이 모두 사라져버린다. 그렇게 크레딧이 올라가면 관객은 의문을 갖게 된다, "영화는 재밌었는데 도대체 그 장면들은 왜 있던거야?" 이는 보통의 영화들이 장르 문법을 표면에 드러나는 장치들과 연결시키는 반면, 조던 필 감독은 장르 문법을 메시지와 직결시키기에 발생하는 다소 독특한 현상이다. 작품을 쉽게 장르 영화로 소비하려면 감독이 심어놓은 메시지를 찾아야만 한다는 역설적 상황에 관객은 직면하게 된다.
그럼 영화에 숨어있는 메시지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어떨까. 아쉽게도 이 영화는 그렇게 많은 친절을 배풀지 않는다. 다소 그 메시지가 단순한 편이었던 '겟아웃'과 '어스'와 달리, '놉'은 꽤나 다층적인 레이어로 메시지를 심어놓는 고단수를 선보인다. 그리하여 영화의 서론에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정했던 관객이라도 여러 층위에서 변증법적 논리들이 맞서 싸우는 본론의 아찔함을 느끼고나면 쉬이 결론을 매듭짓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온 관객은 리뷰 논문을 작성하는 대학원생의 마음가짐으로, 영화 속 다양한 논거들을 자신만의 기준으로 짜맞추며 어떻게든 의미있는 결과값을 도출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쉬운 작업은 되진 못한다는 사실에, 결국 여러 차례 다시 감상하거나, 인터넷에 적힌 블로그글에서 해답을 찾아보고, 아니면 파이아키아에 올라온 50분짜리 해설 영상을 시청하게 되고 만다.
그렇기에 '놉'이라는 작품이 잘 만든 영화라는데 누구나 동의하더라도, 그것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짚어내는 경우는 참 드물다. 서사 사이 사이에 껴있는 메타포들을 일일이 따지기에는 러닝타임은 이미 한정되어있다. 그렇다면 의문이 하나 들게된다. 주제가 명징하지 않은 영화가 과연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을까. 더욱이 그것을 영화 관람 경험 중에 캐치해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다른 모든 다양한 해석들은 단지 영화를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한 요소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단일의 주제의식에 대해서 나 개인이 말해본다면 그것은 관계에 대한 것이라 얘기하고 싶다. '놉'은 모든 관계에 대해 다루는 영화다. 특히 "타자를 바라보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며 섣부른 판단으로 타자를 정의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영화는 많은 섣부를 인간군상을 등장시키며, 그 섣부른 판단이 타자에게 폭력으로 변모하는 과정과 결과적으로 그 폭력이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장면을 지속적으로 담아낸다 - 그것이 심지어 인간이 아닐지라도. 마치 찰스 쿨리의 "I am not what you think I am."이란 말처럼, 자신이 타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함부로 선을 넘지 말라며 단호하게 "아니."라는 답을 쥐어준다. 영화는 이 메시지를 확고하게 끌고 가며, 여기에 아주 단순한 권선징악의 원리를 접목해 이를 지키지 않은 인물들에겐 처참한 말로를 선사한다.
앞서 '놉'이라는 영화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어조로 이야기를 전달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충분히 극장에서 볼 이유가 있는 작품이다. 영화 속의 메타포들은 흥미로우며 그것을 이어 어떠한 결론에 도달했을 때 분명한 지적 만족감을 충족시켜준다. 또한 장르적으로 스릴과 서스펜스를 다루는 감독의 실력도 매우 탁월하다. 그렇기에 이 글로써 아직 작품을 감상하기 전의 누군가에게, '놉'이란 영화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영화의 재미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최선의 선이기 때문에.
+) 사실 조던 필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욕심의 선을 조금 넘어 부렸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가 기다려지는 것은 그 정교한 구성에서 주는 만족감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죠. 조던 필 감독 자신 또한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 자신의 선에 대해서 충분히 재고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담아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놉이 어려운 문제 취급 당하는게 공감이나 이해가 잘 안 가네요
이동진평론가처럼 디테일하게 파고들 수는 있습니다만
그냥 봐도 재밌는 장르영화였고 에피소드들은 연관된
주제로 통하는 영화였습니다.
이게 플롯이 아주 복잡하거나 어렵거나 수많은 정보를
생각해야할 문제가 전혀 아니어서 더 좀 이해가 안 가는 듯 합니다.
감독의 전작들보다 재밌고 감동적이었는데
이런 때는 사람마다 생각하는게 참 다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