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나른하고 낙관적인 세계관을 좋아합니다.
이번에도 그런 류의 힐링물이려니 막연하게 예상했는데 느낌이 좀 다르네요.
일단 제목 무코리타가 불교의 시간단위라는 오프팅 크레딧의 설명에
관람 후 찾아보니 한국식으로 모호율다(牟呼栗多)라고 읽는 모양입니다.
찰나 - 달찰나 - 납박 - 모호율다 - 일주야 - 세월 - 겁의 순서인데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24시간을 의미하는 일주야 직전의 단위네요.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어느 순간을 의미한다고 이해했습니다.
영화의 주제는 분명하게도 '죽음'입니다.
곳곳에 죽음의 사연과 이미지와 상징들이 들어가 있어요.
그만큼 어둡거나 슬프거나 뒤틀린 순간들이 있지만 감독답게 찰나(ㅎ)의 순간으로 그려집니다.
대신에 죽음을 어떻게 수용할지 등장인물 각각의 입을 빌어 말하면서도
그중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는 못 박지 않는 느낌입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주인공이랄 수 있는 야마다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야마다는 전과자로 막 출소해 일자리로 주선받은 젓갈공장이 있는 곳으로 온 타지인입니다.
무력하게 비척대며 아무렇게나 집안을 어지르고 계획적인 지출조차 못한 채 너부러진 그의 모습은
이미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옆집의 시마다가 죽었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죠)
엎친데 덮친 격이랄까, 그런 그에게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 사라진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고
어찌저찌 아버지의 유골을 인수하며 그의 삶의 파편들을 하나씩 접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야마다가 '나같은 전과자(사회적으로 사망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의구심을 밖으로 내뱉는 순간
영화는 계속해서 품고 있던 아버지의 유골을 뿌리며 장례를 지냄으로서 죽음과 환생의 순환처럼 끝을 냅니다.
옆집의 미니멀리스트 시마다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 우스꽝스러운 인물이지만
죽은이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스님과 친구이며 자신의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듯 보입니다.
때문인지 어느 순간 침잠해 용서를 빌고 저승으로 향하는 영혼에겐 자신을 함께 데려가 달라 애걸합니다.
앞집의 부자는 상복같은 정장을 차려입고 묘비를 팔러 다니는데 어린 아들은 버려진, 그래서 연결이 죽어버린
전화를 붙들고 어딘가와 통화연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엔 어머니가 부재합니다)
이들이 사는 임대주택 무코리타 하이츠의 여주인은 오래전 암으로 사망한 남편을 잊지 못해
수목장을 지내고도 그의 유골을 집에 보관하며 마치 육체적 애정을 나누듯 자신을 위로합니다.
심지어 자신이 죽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듯한 할머니 귀신마저 등장하고
떠나가는 영혼이 외계인의 형상으로 나타난 듯한 환상적인 순간도 있습니다. (뭐.. 실재론 누군가 잘못 날린 연 일수도..)
감독의 전작들도 그렇지만 메시지를 정해서 전달하기 보다는
느긋하고 나른한 연출 가운데 일상과 비일상을 적절히 섞어서 이것저것 보여주며
관객이 자기주도적 학습..아니 결론을 내도록 유도하는 듯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론 죽음의 이미지들이 작금의 일본사회와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개 묘비로 2천백만엔을 지불하는 부자들이 코앞에서 해피하게 살아가는 와중에
당장 백엔이 없어 배를 곯고 텃밭을 가꿔 겨울을 대비하는 개미같은 민중들은
나베요리 하나에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를 지탱하는 거죠.
얘들아 일본이란 나라는 ㅈ망한 거 같지만(죽어버렸지만)
그래도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며 하루하루에 충실하게 5년이고 10년이고 살다 보면
살아가는 자체가 의미를 갖는 거야... 뭐 이런 느낌의 망각적 힐링이랄까요.
영화의 시간대는 불명확하게 묘사되는데 강변에 쌓여있는 가전제품의 무덤은
디자인 적으로 버블 전후인 쇼와말에서 헤이세이 초기, 그러니까 20세기 끝단을 떠올리거든요.
이전의 오기가미 나오코 작품처럼 마냥 나이브하게 받아들이긴 살짝 무거운 영화였습니다.
+
간사이식 스키야키....는 너무 맛나게 묘사되서 먹고 싶어지더군요.
일본 여행에서 한 번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엔 너무 달고 짜고 자극적이란 이미지가 강했는데 말이죠.
찾아보니 백종원 버전의 스키야키 레시피가 있네요... 이건 맛있겠죠? ㅎ
2천만엔이 아니라 2백만엔이 아니였나요? 정말 삶과 죽음에 대해 깊게 성찰하는 영화였어요 전 오징어젓이랑 그냥 생야채에 쌈장이 그렇게 맛있어 보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