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작년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던 영화를 보게 되니 뭔가 좀 반가웠습니다.
24년전이라는 자막이 뜰 때 생각해보니 셀린 송감독의 아버지 송능한 감독이 넘버 3로 대박을 치고 차기작 세기말을 말아먹은 시기더군요.
진짜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영화는 인연의 이야기를 느긋하게 풀어냅니다. 영화의 세공이 참 대단했습니다.
어린시절 첫 사랑인 두 남녀가 12년 단위로 만남과 이별을 나누는 이야기는 평범하면서도 독특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힘들것인지를 아는 나이가 되었기에 두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끊어내고 알아내려는 과정이 밀도있게 다가와서 좋았습니다.
3.극중에 표현되는 코리안 코리안이기에 코리안 아메리칸이 보고 듣고 시차를 겪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 연출이 좋았습니다.
유퀴즈에서 보니 유태오 배우의 한국어 구사능력이 좋았는데 극 중에서는 왜 이상하게 들릴까 생각해보니 여주가 말하는 교포의 묘한 뉘앙스를 제가 듣는 것처럼 코리아 어메리칸의 귀에는 뭔가 그렇게 들려서 표현한건가라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자라 한국에서 언어를 다듬어 온 유태오 배우의 경험을 잘 녹인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4.전형적인 한국남자라는 걸 아는 한국여자의 정체성과 두 번의 이민을 감당한 코스모폴리탄적인 자유성이 돋보이는 여주캐릭터는 역시 감독의 자전적인 인물이라 그런지 입체감이 좋았습니다.
남편 캐릭터도 참 좋았고 특히 후반의 전개와 미장센은 정말 꼼꼼하면서 느긋하더군요.
회전목마로 표현되는 동심의 만남과 퇴장의 이미지도 좋았고, 극 후반의 달리숏의 느낌이 간만에 좋은 영화였습니다. 극중 캐릭터에게 몰입시키는 방법이 기본적인데도 느낌있더군요.
5.반지나 자판, 중국의 사십년노점에서 남주의 인연을 표현하는 것 등, 미장센을 이용한 섬세한 텔링도 좋았고, 신발을 신고 있거나 벗고 생활하는 디테일로 여주의 정체성이 어떤 상태인가를 표현하는 방식도 좋았습니다.
데뷔작에서 이런 배치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감독의 시선이 참 좋더군요.
패스트 라이브즈 저는 참 좋았습니다. 무코님 나눔덕에 너무 잘봤네요. ㅎ
섬세한 직조로 세밀한 감정을 느긋하게 보여주는 쌉싸름한 멜로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이 영화 조심스럽게 추천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