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편 보고 살짝 기대했던 작품인데....
이런 식으로 실망해보긴 오랜만이네요.
미스터리나 반전이 있는 스릴러 스토리를 쓰다보면
독자보다 한 발 앞서야 한다는 부담이 생깁니다.
훌륭한 작가는 안정된 틀 안에서 심플한 트릭으로 독자를 속입니다.
트릭 자체만 두고 보면 '겨우 이거야?' 싶을 수 있는 걸
전체 서사의 구조에 잘 녹여내거나 개성적인 캐릭터/설정으로 커버하거나해서
이야기를 쫓아가던 독자라면 그렇게 여기지 않도록 만들어요.
[나이브스 아웃]이나 [셔터 아일랜드] 같은 작품이 좋은 예겠죠.
전자의 핵심 트릭은 매우 심플하고 후자는 다른 작품들에서 수없이 반복된 트릭입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명작의 반열에 올랐고 트릭을 두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죠.
오히려 '훌륭한 트릭/플롯 트위스트'의 예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그럼 [설계자]는 어떨까요...
설정은 일단 독특하고 흥미롭습니다. 예고편이나 홍보자료에도 나오듯
소소한 변수들을 통제하여 사고사로 위장해 타깃을 처리하는 청부업자잖아요.
이런 설정을 갖고 놀려면 일단 두 가지 정도는 기본적으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당연하게도 해당 설정/능력을 설득력 있고 매력있게 그려야죠.
둘째는 설정에만 만족하지 말고 그것을 활용한 큰 서사를 그려야 해요 이건 장편극이니까요.
영화는 두 가지 모두 실패합니다.
첫째는 뭔가 해보려고 노력은 했는데 실패합니다.
둘째는 아예 시도해보려다 포기한 느낌이고요.
그냥 번잡하게 늘어놓아서 수용자가 혼란스러운 게 플롯 트위스트가 아닙니다.
적어도 감독은 관객에게 충분히 이야기를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편집'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이 영화의 후반부는 카오스 그 자체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결말이 뭔지 알긴 알겠어요...
하지만 관객이 그걸 억지로 짜맞춰가며 이해해줘야 한다면 이미 이야기로서 실패입니다.
아무리 복잡한 이야기 복잡한 편집이라도 마지막엔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고요.
그리고 이 교통정리란 것을 '뉴스 나레이션'이나 '애니메이션'으로 욱여넣는 건 반칙이고요.
심지어 이런 반칙과 무리수에도 회수되지 않는 떡밥이 있으면 말 다했죠....
한국에 좋은 시나리오 작가지망생, 훌륭한 추리,미스터리 작가들이 많습니다.
제발 깜냥도 모르고 감독이 시나리오까지 도맡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겨줬으면 싶어요.
적어도 이 쟝르에선 말이죠.
+
원작이 있던데 찾아봐야겠습니다.
은근 중화권에서 훌륭한 쟝르 영화/소설들이 많은데
이것도 그런 경우라 원작보다 못한 거면 더욱 실망스러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