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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니 이해영 감독이 장르 영화를 계속 만들어도 될까 싶을만큼 그의 추후 행보는 본인 스스로 진지하게 고민해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영화를 모두 섭렵할만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천하장사 마돈나, 경성학교 그리고 이번 신작인 유령을 보고 드는 생각은 상업영화로서 필히 따라오는 장르적 구조를 벗어나 본인이 진정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를 만드는 게 어떨까 여겨진다. 비록 데뷔작인 천하장사 마돈나는 김씨표류기, 나의 독재자를 연출했던 이해준 감독과 공동 협업한 초기작이기에 순전히 개인의 역량으로서 평가하기에 애매한 측면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외면받는 소재인 퀴어라는 소재를 경쾌하고 솔직하게 다뤄가는 포텐은 1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여겨지지만 장르물로서 형식의 구애를 심하게 받는 경성학교, 유령의 경우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확실한 컨셉을 통해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미장센을 구축할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영화에서 실현시키고 싶었던 비전이 지리멸렬하게 흩어져 주제의식을 뭉개버린다는 느낌을 받게 만든다. 

 

유령은 추리 혹은 액션의 영역에서 바라보기보단 여성 영화로서 지니고 있는 가치와 무게가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유령은 경성학교의 연작이자 더욱 확장되고 화려해진 경성학교의 완전체 같은 느낌으로 봐야 한다. 두 영화 모두 극의 중심을 이끄는 인물의 시작과 변화를 겪은 이후 마주하게 되는 끝의 이미지가 결국엔 서로 밀접하게 맞닿은 채로 완결된다는 점과 여성 캐릭터간의 연대로 인해 발생하는 극적인 굴곡들 역시 서로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는 부분들이다. 경성학교의 경우 주인공인 주란이 홀로 학교로 들어서 연덕을 통해 쌓여진 내적 친밀감이 주란의 물리적인 에너지를 방출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면 유령의 경우는 박차경과 윤난영이 교차하는 이미지로 시작해 박차경이 윤난영을 잃은 상실로 인해 내면에서 순환하던 박차경의 에너지가 유리코를 만나 완전해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경성학교는 홀로 상실을 맞이하는 소녀의 비극적인 서사라면 유령은 여성의 개인적인 비극으로 시작하여 두 여성의 새로운 희망으로 마무리 지어지는 진보적인 서사인 격이다. 어찌보면 둘은 서로 상충되는 면이 확실히 존재하지만 서로 역사적인 사건에 휘말리게 되어 비슷한 위치에서 조우하게 된 여성들의 관계를 통해 결론 지을 수 있는 희극과 비극을 모조리 갖고 있는 2부작으로서 이러한 토대는 나름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경성학교에서 유령으로 건너와 더욱 확장된 스케일과 여성간의 화합을 더욱 극적으로 화려하게 다듬어내는 데 있어선 구조적으로 소정의 발전을 이뤘다. 유령은 특히나 경성학교와 달리 더욱 다채로워진 로케이션을 통해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운 미술을 통해 보는 재미를 한껏 끌어올렸기에 독전의 성공을 발판삼아 본인이 추구하는 미학적 욕심을 전부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이 부분에 있어선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앞서 서술했듯이 주제의식을 지리멸렬하게 흐트러뜨리면서도 장르물로서 실격인 수준의 연출들과 장르간의 어색한 연결성이 억지성과 부자연스러움을 돋보이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일단 유령은 서스펜스를 초래하는 방식부터 심히 어긋나있다. 물론 이는 영화의 복합성과 짧고 간결하게 압축되지 못하는 장르극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인해 발생된 마케팅의 한계가 초래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밀폐된 공간 내에서 진행되는 '마피아 찾기'류의 미스터리 서스펜스 극을 지향했다고 보기엔 유령의 존재를 초반부부터 대놓고 까발리기에 이 부분부터 추리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극장 앞에서 우산을 쓴 박차경과 비를 맞으며 박차경이 붙여준 불로 담배를 피는 윤난영이 서로를 담아내는 눈빛의 감정적 여운과 짧지만 아린 대사들을 통해 둘의 관계를 쉽게 유추할 여지를 남겨놓으며 영화의 시작점을 강렬하게 내리꽂곤 총독 암살을 시도하다가 총에 맞은 윤난영을 끌어안고 흐느끼는 박차경의 눈물은 분명 미술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인해 인상깊은 포인트들을 남기지만 한치 앞도 예상하지 못하는 미스터리 장르극으로서의 덫에 걸려들게 되며 스스로가 감독의 트랩에 의해 어떻게 농락당할지 기대하며 들어온 관객들의 니즈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는 전개였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는 유령의 정체를 인물간의 관계 사이에선 어떻게 숨기며 전개될지 기대하는 스릴러로서도 유령은 철저히 실패한다. 호텔 안엔 5명의 인물들이 용의자로 지목되어 갇힌 상태다. 하지만 호텔 안에서 진행되는 시퀀스 내내 5명 중 한명에 포함되는 이백호는 박차경과의 짧은 대화 이후론 다카하라에 의해 심문받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요 인물들 중 가장 극과의 연관성이 떨어져있는 인물이여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감독이 아예 이백호는 유령이 아니라는 식으로 못을 박듯이 설렁설렁 다뤄내는 것이 대놓고 느껴진다. 천계장 역시 암호 해석 능력을 지닌 인물로서 극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설정을 지녔음에도 이 역시 유령이 절대 아니라는 식의 명확한 태도로 하여금 추리의 폭을 다시끔 좁혀버린다. 적어도 이들이 유령이 아니였다면 각자만의 이뤄야하는 목적이 확실하게 존재하는 만큼 그만큼의 행보 혹은 이들의 행위로 인해 조여오는 위기와 극의 변화를 확실하게 보여줬어야 맞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백호는 허무하게 내던져 버려지고 천계장은 1차원적인 분위기 환기용 소모품으로서 처참하게 활용하곤 그대로 가져다 버리고야 만다. 혹여나 전형성을 벗어난 전개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였다면 주요 무대에서 벗어난 인물들의 성향과 행보가 이들에게 어떤 사건을 맞이하게 만들지에 따른 빌드업과 긴장감을 조성하는 문제에 있어선 나름의 성과를 얻었어야 했으나 철저히 실패함으로서 스릴러로서 흥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 외에도 영화는 호텔 내에서 유령을 찾는 시퀀스 내내 본인이 정해놓은 장르를 전혀 집중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미술은 화려하지만 그것이 인물을 대변하지 못할 만큼 호텔 내에서 보여주는 캐릭터성의 깊이는 얕고 사건에 연루된 인물의 대다수가 장르와 요소간 엇박만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감추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애초에 이 인물들이 정말 한 공간 안에 있는 건지 의심될만큼 캐릭터들이 서로 붕 뜨는 행보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어색한 기류는 극의 전환점을 맞이한 이후로 정제되기 시작하는데 애초에 이걸 보여주고 싶어서 그랬던 건가 싶을 지경이다. 적어도 경성학교는 공간과 인물의 실종에 대한 미스터리한 기류를 장르적으로 나름 괜찮게 조율하여 흥미를 이끌었고 극의 전환점을 맞기 이전까진 자연스러운 흐름을 유지하다가 무리수를 남발했다면 유령은 시작부터 엉망이니 전환되는 장르마저 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경성학교와의 연관성을 거론하며 유령의 발전성을 언급하긴 했지만 사실 유령에서 다루고 있는 여성간의 화합은 다소 억지스럽고 감흥 없이 흘러간다. 어찌보면 일종의 강박처럼 느껴지면서도 경성학교의 실패를 의식하여 무리하게 우겨넣은 구도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비록 앞서 언급한대로 극적으로 화려하게 묘사해놓은 것은 맞지만 미스터리 스릴러로서 제대로 집중을 못한채 갑자기 불쑥 끼어든 장르로 하여금 그 화려함이 어떤 순간에선 대책없는 억척처럼 연출되기도 한다. 구조적으로 이뤄낸 화려함을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해내지 못하니 가뜩이나 밋밋한 액션이 더욱 시시해지기도 한다.

 

이해영 감독의 단점은 스타일과 과잉으로 가장 중요한 본질을 흐릴 때가 있다는 점인데 여성 캐릭터들의 단합력과 활약을 돋보이게 하기 위헤 설경구 캐릭터를 그렇게 만든건지 의심이 되기도 한다. 다수가 소통하는 공간 내에서 말하기엔 논쟁을 불러올 해석이긴 하지만 여성 캐릭터 간의 관계는 초반부와 다르게 후반부로 접어들 수록 남성 캐릭터들이 서로에게 날을 세우는 것과는 철저히 대조되는 이미지로 전시되어 결국 서로가 나란히 서있는 형태의 1차원적인 구도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 연출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희안한건 그저 액션 영화로서 반짝거렸다면 이런 생각이 아예 안났을텐데 촌스럽게 떠오르는 캐릭터들과 특정 이데올로기를 의식한 듯한 이미지가 괜히 기분을 이상하게 만드는 건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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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스필벅 2023.01.20 08:07
    경성학교 그래도 언급이 이따금씩 되는걸 보면 볼만한 구석은 있는건가요
  • @스필벅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현짱 2023.01.20 09:20
    제 사견으로는 없습니다...^^;
  • profile
    우야네 2023.01.20 08:42
    천하장사 마돈나를 정말 재밌게 봐서 극장에서 두번이나 봤는데 말이죠. 김윤석 배우가 이 영화에서 주인공 류덕환 배우의 아버지로 조연 출연하시고, 스맙의 쿠사나기 츠요시도 나왔었죠.
  • @우야네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현짱 2023.01.20 09:22
    저도 천하장사 마돈나는 재밌게 봤어요.
  • 아슈르 2023.01.20 11:21
    세트장과 연출이 나쁘지 않았는데 후반부 가면서 시간을 늘려서 만든 듯 한 전개와 어이 없는 엔딩. 그런 마무리도 픽션이라 봐줄 수 있겠지만 과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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