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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이 보이지만 지옥이 들린다.

(5.0/5.0)

 

홀로코스트 영화는 가장 문제적인 장르다. 그 소재가 인류 역사에 전례가 없는 거악(巨惡)이라는 점에서일까, 그들은 소재의 한계를 탈피하려는 듯 저마다의 독특한 시선과 작법을 보여주었고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그 소재를 강력하게 환기했다. <쉰들러 리스트>는 색감을 지운 영상 속에서 빨간 옷의 소녀를 등장시켜 당대의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표현했고, <피아니스트>는 유대인과 나치즘의 선악 구도를 벗어나 양심을 지킨 독일군 장교와 유대인을 핍박하는 유대인의 모습을 묘사한다. <사울의 아들>은 존더코만도 사울의 행적에 초점을 맞춘 카메라가 다른 모든 것을 흐릿하게 처리함에도 그 참상의 현장감을 오히려 배가시켰다. 비교적 최근에 상영되었던 <페르시아어 수업>에서는 페르시아어에 심취한 나치 장교에게서 살아남으려는 주인공이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이름을 단어로 각색하여 생존의 동아줄이자 응보의 철퇴로 삼기도 한다.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마찬가지다. 그가 선택한 화법은 시네마의 형식을 이루는 두 가지 요소, 영상과 소리의 충돌이다. 장벽을 사이에 둔 상반된 공간인 아우슈비츠와 회스의 저택처럼, 형식간의 충돌을 통해 불온한 괴리감을 구조화한다(바로 그렇기에 이 영화는 반드시 극장에서 봐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따뜻한 영상 주변으로 슬프고도 섬뜩한 소리들의 잔상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괴리가 '불쾌한 골짜기'가 아니라 매우 위력적인 현장감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두 요소는 내내 충돌하며 커다란 반향을 남기고, 관객은 눈으로는 한 가정의 지극히 일상적인 광경을 보면서도 귀로는 총성이 몇 번 울렸는지, 비명은 몇 번 퍼졌는지에 대해 집중하게 된다. 그 소리들은 발화자들의 정체를 생각하면 일종의 끊임없는 반향정위(反響定位)이기도 하다. 그때 그들은 어디 있었는가를 묻고, 우리는 어디 있었는가를 외치고 있기에.

 

한편 아우슈비츠를 회사로 삼아 출퇴근하는 루돌프 회스의 사무적인 표정과 아내 헤트비히 회스의 한가로운 일상으로, 영화는 나치를 넘어 인간을 이루는 성심에 대해 무시무시한 질문을 던진다. 평론가 사이에서는 한나 아렌트가 언급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 많이 언급되고 있으나,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그러한 개념마저도 두 부부의 기이할 정도의 인면수심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러한 지옥 한가운데에 살면서도 평범함을 유지했기에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나는 인간이 가진 악에게는 일종의 평온(Tranquility)과 같은 성질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악은, 아니 자신의 세계에 빠진 인간은 지옥불을 지피면서도 정원을 가꿀 수 있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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