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nostalghia.com/TheTopics/On_Sacrifice.html
오늘날 세계는 엄격히 물질적인 지평 하에서 전개되고 있다. 오늘날 사회의 진화는 이제 완전히 경험적이고, 종국적으로 자신에게서 영적인(spiritual) 흔적을 모두 지워버렸다. 만약 누군가가 현실을 만질 수 있는, 물질적인 사물의 질서라고 간주한다면, 그는 그로부터 오직 즉각적 효과, 자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만 기대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사회적, 정치적 또는 기술적 지평이나 또는 자신의 실제 삶의 경험에서 스스로를 오직 경험적 사실에만 국한시킨다면 그 결과는 오직 끔찍할 뿐이며 삶 그 자체가 불가능해질 거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영적인 발전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장 둔한 짐승 같은 자도 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그렇단 걸 느낄 수 있을 거다. 자신의 우주가 쪼그라들고, 그 조화가 파괴되면 인간은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게 된다.
이러한 생각으로 <희생>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삶과의 평범한 관계로 다시 돌아갈 유일한 수단은 삶의 물질적 측면에 대한 독립을 회복하고, 결과적으로 영적인 본질을 다시 확인하는 것뿐이다. 이 영화에서 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누구라도 겪고 있는 이 분투의 한 측면을 다루었다. 기독교적 개념의 자기희생이다. 이러한 느낌을 전혀 알지 못하고, 그러한 욕망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내가 아는 한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고, 동물적 수준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사회와 국가의 실험 대상인 이상한 기계가 된다. 반면 누군가 도덕적 자율성을 얻는다면 그는 자신 안에서 자기희생의 역량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난 이러한 생각이 오늘날 그다지 존중받지 않는단 걸 깨달았다. 아무도 자기 삶에서 어떤 것도 희생할 자그마한 의지조차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스스로를 영적으로 구원하길 바란다면 달리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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