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7시 회차의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보러 가기 전에 용아맥 좌석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계속 확인해봤습니다.
- 18시 02분 좌석 현황
- 18시 38분 현황
- 18시 42분 현황
- 18시 45분 현황
- 18시 50분 현황
결론적으로 35석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이런 현상은 다른 영화의 다른 용아맥 회차에서도 생기지 않을까 추정합니다.
1. 저의 문제제기의 핵심은 '입장시간이 임박한 시간에 취소를 하면, 해당 회차 영화를 저 시간과 저 관에서 보고 싶었던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입니다.
나의 예매, 나의 소비는 타인의 기회를 포함하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캡쳐해주신 예매창을 보면 아시겠지만 '되팔이'로 추정되는 좌석은 최초의 가운데 4열 정도이고 나머지는 개개인이 예매를 했다가 취소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누가 업자이고 누가 그냥 관객인지 아주 정확한 판별은 어렵지만요.
객석 취소를 한 사람을 되팔이로 한정하고 비난하는 건 쉽죠.
진짜 문제는 되팔이가 아닌, 일반 관객, 즉 '우리'가 취소를 했을 때 이걸 어떻게 봐야하는가 입니다.
세상 모든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일 때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워집니다.
2. 이 논의를 하는데 네가지 유형의 관객을 구분할 수 있겠죠.
a. 해당관 해당회차에서 저 영화를 반드시 볼 수 있고 선점에 성공한 사람
b. 해당관 해당회차에서 저 영화를 반드시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선점에 성공한 사람
c. 해당관 해당회차에서 저 영화를 반드시 볼 수 있고 선점에 실패한 사람
d. 해당관 해당회차에서 저 영화를 반드시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선점에 실패한 사람
b 때문에 c가 영화를 못봐야하는가? 저는 이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3. 모든 시스템은 사회적 합의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극장 예매 시스템은 자본주의 외에도 '선착순'의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죠.
돈만 있으면 어찌됐든 먼저 좌석을 점하는 게 그냥 최고입니다. 그러니까 좌석을 취소하는 것도 선점만 했다면 자유롭게 할 수 있죠.
선점을 한 사람의 변덕에 따라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다른 사람의 기회가 박탈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일까요?
선점을 한 사람이 어차피 영화를 안 볼 거라면 그 기회는 선점만 못했지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분배되는 게 훨씬 더 이득입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하려면 선점한 사람의 권한을 반드시 줄여야합니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취소수수료입니다.
롯데월드 매직패스 같은 것도 과연 공정한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죠. 자본주의와 공평의 대립이니까요.
4. 여러 반응이 있었고 저와 생각이 같지 않은 분들도 있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취소수수료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상술했던 b와 c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던 의견들에 대해서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이렇게 제가 자세히 풀어 쓴다 할지라도 그 분들의 입장은 전혀 바뀌지 않을 것 같기에 더는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b가 되더라도 c를 굳이 신경쓸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라면 더 이상의 논리가 무의미해지죠.
사회적 책임을 초월해버리는 입장에 대해서는 어떤 논의도 그냥 쓸모가 없으니까요.
5-1. 해당 논의 중에 취겟팅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제 인생 극악의 취겟팅을 일단 이야기해볼까요.
한참 돈벌이가 없을 때 당일선택 출근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통상 몇년 단위, 혹은 최소한 1년은 일해주리라 기대하는 업무 형태가 아니라 그날그날 올라오는 스케쥴을 보고 자기가 출근을 할 지 안할지 고르면 되는 일이었죠. 캐쥬얼 잡이라고 분류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코로나가 터지니까 이 캐쥬얼 잡의 모집 인원과 시간대가 엄청나게 줄었습니다.
통상 하루 내내 있던 스케쥴을 하루에 두세시간짜리 한 두개가 되었고 모집 인원도 최소 15명이던 조건이 3~5명으로 확 줄었죠.
(ex> 06:00 ~ 08:00 3명
13:00 ~ 15: 00 5명 )
그런데 이걸 수강신청처럼 모집했습니다. 네이버 밴드에 스케쥴을 올리면 바로 클릭을 하는 그런 시스템이었죠.
제일 큰 문제는, 업무 신청을 해놓고 취소 가능한 시간이 당일 오전 12시까지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미칩니다. 아주 간혹 취소를 하는 사람이 있기에, 거의 하루 종일 새로고침만 하고 있게 되죠.
이 문제는 후에 해결됐습니다. 왜냐하면 관리자들이 취소 가능 시간을 업무 공지 후 30분으로 고정했거든요.
영화야 안봐도 그만이지만 이건 말 그대로 생계가 달린 문제였기에 이 선착순 시스템과 선점한 사람의 변덕의 권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착순의 시스템을 고민하지 않아서 이런 문제들은 비일비재하게 생깁니다. 대학교 수강신청도 그렇고, 콘서트 티켓 예매도 그렇고...
(뭐하러 그런 일을 하냐고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논점이탈하시는 분은 없으시길 바랍니다 ^^;)
5-2. 저는 무슨 감정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취겟팅조차도 시스템 관리 부실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선점한 사람의 권한이 너무 강하기에 그 사람의 변덕이나 자비를 바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바로 취겟팅을 할 수 있는 배경이라는 거죠.
취소 불가능임박 시간에 취소를 하는 행위를 긍정하게 되니까 취겟팅을 통해 간신히 티켓을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선점한 사람의 취소의 권한을 줄이면 취겟팅도 훨씬 널널해질 뿐더러 혹은 다른 시스템을 통해 취겟팅이 아닌 예매 후보나 양도를 시스템 안에서도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6. 이 취소 수수료에 대한 어떤 반응들은 제게 한국사회의 문제적 속성을 상기시키는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력주의나 '부동산 불패 신화'같은 것이죠.
무한경쟁체제를 일단 긍정하고 작은 가능성이라도 추후에 얻기 위해 그 경쟁의 공정성을 다듬는 일에 반대한다는 점이 그렇게 느껴집니다.
관객으로서 표를 공짜로 취소할 수 있어야 한다 - 는 이 논리에서는 상기했던 b와 c의 관계, 선점한 사람의 권한은 어느 정도로 허용이 되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유의미한 반론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내가 c가 되더라도 b의 권한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들이 반론의 주류라고 할까요.
7. 시스템이 허용한다고 그것을 그대로 유지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런 질문을 예로 들 수 있겠죠.
극히 사회적이거나 예술적 성향이 강한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먹어도 되는가?
이것을 극장의 운영 논리, 즉 자본주의의 논리로만 보면 '네가 뭔데 남 팝콘 먹는 걸 상관함?'이란 답변만 나오죠.
다만 극장이 그걸 허용하더라도 관객으로서 어떤 영화를 감상할 때 다른 관객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논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경우 저는 자본주의보다도 관객으로서의 예의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혼자 영화보는데 팝콘 먹는 거면 그냥 좀 얼떨떨하긴 해도 딱히 남이 신경쓸 이유는 없습니다. 걸작 영화를 비빔밥 먹으면서도 보고 또 그렇게 감동받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다만 어떤 영화를 극장에서 팝콘먹으면서 보는 행위의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이상, 타인의 영화감상을 저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죠. 그냥 신경 끈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저는 그런 논리에서 [ 존 오브 인터레스트]같은 영화를 보면서 팝콘 먹는 사람들의 행태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남이사 이 영화를 어떻게 보든 말든~ 하는 식으로 다른 관객의 입장을 아예 상상 속에서 지운 논리니까요.
(어떻게 보면 영화의 주제의식을 참 잘 살린 행위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8. 자본주의의 시스템은 그 자체로 늘 불완전하고 사회적 이익을 끌어내는데 잘 맞지 않습니다.
선착순의 논리는 선착을 하지 못한 사람들을 전부 다 배제하는 그런 단점이 있는 시스템이구요.
우리가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서 나 몰라라 해도 되는가? 이런 질문들을 나눠볼 수 있겠죠.
물론 어떤 문제들은 어쩔 수 없다는 답으로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만...
9. 이건 조금 부차적인 이야기인데, 저는 커뮤니티에서 냉소적인 태도를 아주 싫어합니다. 거의 경멸합니다.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는 있습니다. 그 정도가 격렬하더라도 인격적 공격만 안한다면요.
관객으로서 타 관객의 취소임박시간의 취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충분히 이야기해볼만한 주제죠.
그러나 논의 자체를 냉소해버리면 그건 그냥 정신승리에 불과합니다.
사실 커뮤니티에 글을 쓰고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시간낭비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논의 자체를 냉소하고 무시한다면, 글쎄요... 뭐 더 할 말이 없죠.
저는 키배를 하다가 퀴어퍼레이드나 다른 시위를 나가게 됐던 사람이기 때문에 공론장으로서의 커뮤니티에 아직도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달에 한두번씩 시위에 나가는 사람으로서, 문제제기 자체를 무력화하는 냉소를 존중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커뮤니티에서 냉소하는 건 거의 무적입니다. 무조건 이기거든요.
작게나마 공감대를 형성하고 작은 논의의 장을 마련해보는 걸 냉소하시는 분들과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진 않습니다.
10. 사실 어제 논의는 거의 끝났기 때문에 취소 수수료를 물리자 말자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저의 의견을 급진적으로 받아들이는 커뮤니티의 흐름을 확인했기도 했고요.
개개인에게 어떤 책임을 부과하자는 의견이 곱게 받아들여질리도 없겠죠.
자신이 영화관객으로서 보고 싶은 영화를 못보게 되는 시스템의 부조리와 그 시스템 안에 있는 관객의 입장을 논의해보는 게 여기서는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어떤 식으로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메일을 씨지브이에 보내볼 생각입니다. 뭐라도 답변이 오겠죠?
어찌됐든 댓글로 논의에 참여해주신 분들께는 감사드리며...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 볼 기회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러는 것처럼, 또 저를 포함해서요.
---
본문 추가합니다.
댓글들 보다가 진짜 기함하게 되네요.
사람들이 다 '자신이 영화보고싶은 욕망'을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나나나나나 1인칭의 세계로만 이야기를 할 거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내가 영화 볼 기회가 소중한 건 모든 사람에게 똑같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지 그 욕망을 근거로 이야기하면 타인도 그만한 욕망을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을 전혀 못하는 게 무서울 정도로 폐쇄적이네요.
세상을 망치는 건 엄청난 악의나 아주 비상식적이고 파괴적인 행위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평범함이 세상을 망치죠. 영화 끝나고 음료수 컵 안들고 나가는 게 대단한 악의가 있어서 그럴까요? 그냥 남 생각안하니까 그렇죠.
자기가 영화 보고 싶은 만큼 남도 영화를 보고 싶은 게 당연한거고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복을 누리면, 남도 그 복을 누릴 수 있게끔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당장 며칠 전에 영자원에서 취소표 기다리던 경험을 한 저로서는 이 모든 논의가 황당하기 그지없네요.
지금 달리는 반론 댓글들에서 전부 다 '나만큼 어떤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다른 사람'의 존재가 아예 삭제되어있습니다.
명당회차만 예약했다가 15분 딱 전에 취소하는 거 인증 릴레이라도 해볼까 생각이 들 정도네요. 그럼 기분 좋으시겠어요? 제가 보기 싫어져서 안보는 거고 제 사정인데 그 때도 다 수긍하실 건지? (그 때는 또 본인들 취소하는 사정은 엄청나게 어쩔 수 없는 거고 제 취소는 아주 사악한 짓으로 취급하실려나요? )
영화란 장르가 애초에 역지사지를 더 실감나게 해보라는 장르인데...
저는 취소수수료 때문에 이 글을 쓴 것도 아니고, 자신의 취소가 타인에게는 그렇게나 보고파하던 영화 회차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쓴 겁니다.
나와 같은 욕망을 가진 타인의 존재를 실감하지 못하는 이상 다른 반론은 다 무의미합니다.
앞좌석에 발올리는 사람들이 왜 그럴까요? 다른 관객을 생각안해서 그렇습니다.
관크를 하지 말아야한다는 건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책임감 때문이겠죠? 그걸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볼 줄 알고 예매를 했다가 정말 부득이한 사유로 취소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죠.
지극히 단순하고 편의적인 분류 같습니다. 모든 관객 유형을 저기에 대입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관객이 예매를하고 난 뒤의 문제는 극장과 관객의 계약 문제입니다.
b2c, 고객과 기업의 계약 관계에서 약관을 어떻게 가져가고 취소 관련하여 어떻게 합의를 볼 거냐의 문제지...
이걸 개인 대 개인으로 대입해버리면...
우리는 모든 상품을 구입할 때, '아, 정말 이게 필요한걸까? 내가 구입함으로서 꼭 필요한 누군가의 기회를 뺏는걸까? 하는 정말 쓰잘데기 없는 생각에 에너지를 소비해야 할 겁니다.
공리주의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말씀해주셨는데
공리주의에서 말하는 최대의 행복은 집단의 행복이 개인 행복의 합이라는 전제 입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 취소 수수료 도입을 말씀하셨는데, 취소 수수료가 절대적으로 각 개인들의 행복을 올려줄거라고 생각하는건 엄청난 비약입니다.
취소 수수료가 생겨서 상영 직후 취소가 줄어들어 얻는 개인들의 행복보다
취소 수수료의 불편함으로 인한 개인들의 행복 감소 크기가 더 크다면 전체 행복도 주는 거니깐요.
이건 단순하게 식당 노쇼 방지를 위한 예약금, 숙박 또는 장소 대관 시 일정 부분 개런티를 거는 것과 유사하게 접근하면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취소 수수료 부분은 관객과 극장이 건전한 영화 관람 문화를 위해 합의를 통해 개선해야할 계약적 문제이지
범사회, 전체 집단을 생각해서 도입은?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