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관람 때는 이 영화를 이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장면들이 대체 뭔가 싶고, 드라마틱한 것도 없고 졸려서 흥미를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계속 생각이 났습니다.

 

그렇게 2회차 관람부터 팬이 되어서, 사심을 담아 2023 아카데미 작품상을 주고 싶을 정도가 됐고,

 

어제 한 번 더 보고 오니 끝내 5점을 줄 수밖에 없더군요.

 

 

 

이번 재개봉으로 <애프터썬>을 처음 보신 분들, 원개봉 때 한 번 봤지만 다시 볼까 고민이신 분들께서

 

재관람을 결심하시거나, 놓친 포인트를 다시 보실 수 있도록 제 개인적 견해를 담아...

 

제가 <애프터썬>을 N회차 관람하며 첫 관람 땐 보지 못했던 포인트를 몇 가지 되짚어 봤습니다.

 

 

 

 

1. 샬롯 웰스 감독과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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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썬>은 샬롯 웰스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위 사진은 실제 샬롯 웰스 감독의 어린 시절과, 그녀의 아버지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애프터썬>의 팬들에게 저 사진 보여주고 무슨 영화가 떠오르냐 물어보면

 

모두가 <애프터썬>을 말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느낌이 상당히 유사합니다.

 

<애프터썬>의 이야기가 실제 감독과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더욱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2. 상상력을 활용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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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썬>은 주인공이자 어른이 된 소피가 우연히 아버지에 관한 꿈을 꾸게 되고,

 

과거 아버지와 함께 캠코더로 찍은 튀르키예 여행 영상을 보며 추억을 회상하고 상상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여러 정황을 따져 봤을 때, 아버지인 '캘럼'은 자살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자신이 11살일 때 갔던 여행인데,

 

이 기억을 성인이 되어 아이까지 있는 나이에 떠올려 보려니

 

당연히 100% 온전히 기억해내긴 힘들 것이고, 즉흥적인 상상이 반영된 부분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위의 두 번째 사진 역시 캠코더로 촬영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TV를 통해 송출하다,

 

캠코더와 TV를 모두 다 끄고, 캄캄해진 TV 화면에 두 부녀의 모습을 비추는 연출을 통해 상상임을 암시합니다.

 

이 영화의 일부가 소피의 상상을 통해 재구성된 장면들이라는 걸 인지하고 보면 더욱 아련하게 다가옵니다.

 

 

 

 

3. 소피의 상상 속 아버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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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가 상상으로밖에 떠올릴 수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소피가 그 공간에 존재하지 않았던 순간들이죠.

 

영화에서 '캘럼'이 혼자 있는 모습들이 바로 그러한 부분입니다.

 

혼자 캄캄한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는 모습,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서 혼자 힘겹게 깁스를 자르다 실수해 피를 흘리는 모습,

 

소피와 싸운 뒤 칠흑 같은 바다에 뛰어들어 사라지는 모습,

 

어른이 된 소피는 상상해봅니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곳에서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워 했을지.

 

 

 

 

4. 가라앉는 캘럼

 

 

비싼 물안경을 바다에 빠뜨려서 캘럼이 건져올리기 위해 스쿠버 다이빙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소피는 캠코더로 자신의 모습을 찍으면서 '칼럼은 사실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캘럼은 자격증이 있는 척하고 직원을 속여 스쿠버 다이빙을 감행했죠.

 

소피는 캠코더에 대고 "그래도 괜찮을 겁니다"라고 말하며

 

캘럼이 들어간 바다의 표면을 비추며 "안녕, 안녕, 안녕"이라 외치며 캠코더 영상이 끝납니다.

 

 

이 멘트는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애프터썬>에는 캘럼이 가라앉는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스쿠버 다이빙 장면 외에도,

 

수영장에서 가라앉고, 소피와 싸운 뒤 바다에 뛰어들어 가라앉고,

 

영화 후반부 점멸하는 조명의 댄스씬에서도 캘럼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5. 폴라로이드 사진과 중의적인 대사

 

KakaoTalk_20240831_211757797_02.jpg

 

영화의 엔딩을 10분 정도 남기고 캘럼과 소피는 디저트를 먹다가 폴라로이드 사진을 촬영합니다.

 

가격은 5만 리라.

 

현재 환율로 환산해보면 사진 한 장에 196만원이나 하는 미친 가격입니다.

 

어린 소피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터무니 없는 가격일지, 정말 아주 비싼 사진이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5만 리라 이상을 줘야 한대도 흔쾌히 찍었을 듯한 소중한 사진을 남깁니다.

 

그리고 이 폴라로이드 사진은 점점 선명해지고, 그 위로 다시 한번 의미심장한 대사가 날아듭니다.

 

소피 - "더 있다 가고 싶다."

 

캘럼 - "나도"

 

소피 - "그러면 안 돼?"

 

캘럼 - "무슨 말이야?"

 

소피 - "여기 더 있자고"

 

 

 

 

6. "마지막 밤이니 춤출 시간이야."

 

 

영화 중간중간 이렇게 점멸하는 조명 속에서 성인이 된 소피와 캘럼이 등장하는 씬을 보셨을 겁니다.

 

저는 이를 '성인이 된 소피가 기억 속에서 캘럼을 찾아내는 부분을 시각화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기억은 눈으로 보는 것에 비해 희미하고 불안정하게 깜빡입니다.

 

--------------------------------

 

5번에서 언급한 장면 이후 캘럼이 소피를 데리고 춤을 추러 갑니다.

 

이제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황홀한 교차편집 씬이 펼쳐집니다.

 

소피는 춤을 추지 않겠다며 가만히 서있고,

 

캘럼은 혼자 리듬을 타며 인파 속으로 들어가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공간이이 점멸하는 조명씬으로 전환되고, 성인이 된 소피가 캘럼을 발견하고는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다시 공간이 전환되며 캘럼이 11살 소피의 손을 잡고, 소피는 웃으며 끌려 갑니다.

 

다시 점멸하는 조명 속에서 어른이 된 소피가 캘럼의 어깨를 잡으려 하지만,

 

캘럼은 열심히 춤을 추고 있어서 잡히지 않고

 

어른이 된 소피는 캘럼에게 멈추라고 소리치지만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자 과격하게 캘럼을 넘어뜨리려 하고, 주먹을 쥐어 캘럼의 가슴을 때립니다.

 

(굵은 글씨는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워 각본집에 적혀있는 내용을 옮겼습니다.)

 

 

KakaoTalk_20240831_212433065_02.jpg

 

그리고는 다시 11살의 소피가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캘럼에게 안긴 모습이 나옵니다.

 

이때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는 "사랑, 사랑, 사랑"

 

다시 어른이 된 소피가 캘럼을 꽉 끌어안는 데 성공한 모습이 나옵니다.

 

11살의 소피가 장난스럽게 캘럼을 팔로 밀어내고, 어른이 된 소피와 캘럼도 포옹을 풉니다.

 

다시 캘럼은 혼자서 춤을 추기 시작하고, 점멸하는 조명 속 캘럼은 멍하니 어른이 된 소피를 바라봅니다.

 

 

ㅇㅍ.png.jpg

 

끝내 캘럼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으며 모습을 감추고,

 

어른이 된 소피가 이를 바라보다가 11살의 소피로 전환되며 조명씬이 끝이 나게 됩니다.


처음 스쿠버 다이빙을 했을 때처럼 다시 올라오길 바랐겠지만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이 없는 캘럼은 압박감(Under Pressure) 속에 숨을 쉬지 못하고 익사하고 맙니다.

 

그렇게 소피와 캘럼의 마지막 댄스는 끝이 납니다.

 

 

 

 

 

개인적인 견해가 많이 들어간 글이라 어떻게 봐주실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께서 이 글을 보고 <애프터썬>의 여운을 즐기셨으면 좋겠네요.


profile 조세무리뉴

첼시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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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금유 2024.09.01 00:38
    글 잘 읽었습니다 2회차 가기 전인데 내용 참조해서 관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금유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조세무리뉴 2024.09.01 01:09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예호 2024.09.01 01:08

    저도 명성에 비해 이 영화가 크게 감흥있지 않아서 기대만큼 실망도 큰 작품이었는데 무코님 글 보니 2회차를 하고 싶어지네요,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흥미로워요!

  • @예호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조세무리뉴 2024.09.01 01:10
    2회차 관람 땐 더 좋아지실 겁니다!
  • 청코코누코코 2024.09.01 01:41
    글을 읽고 보면 더 섬세하게 볼 수 있을 듯 해요.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
  • @청코코누코코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조세무리뉴 2024.09.01 02:28
    글 쓰다 보니 한 번 더 볼 결심을 하게 되네요
  • profile
    파워핑크걸 2024.09.01 07:17
    1.을보니 감독이 영화만들면서 많이 울었겠단 생각이 드네요..
  • @파워핑크걸님에게 보내는 답글
    profile
    조세무리뉴 2024.09.01 16:15
    감독도 마지막 언더 프레셔가 나오는 시퀀스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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