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는 <어거스트 버진>을 연출했던 스페인 감독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의 신작입니다
개인적으로 <어거스트 버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올해 칸 영화제에서 이 영화에 언뜻 관심이 있었는데
그때는 결국 보지 못하고 나중에 보게 되었네요
줄거리는 한 줄로 요약 가능합니다
14년을 같이 살았던 한 젊은 부부가 자신들의 이혼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무슨 이상한 이야기인가 싶으면 그게 맞습니다..ㅎ
영화를 보다보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별 큰 기대는 안 했는데 막상 보니 감탄하게 되는 그런 영화들이 있죠
<어거스트 버진>이 저한테는 그런 작품이었는데요
그런데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예상치 못한 감흥을 주는 영화였습니다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아직 보지는 못해서 이 감독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에서 그의 영화적, 철학적 스펙트럼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극중극'이라는 형식은 장 뤽 고다르나 웨스 앤더슨 등등 수많은 감독들이 활용을 했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정말 흔해빠진 형식이죠
그래서 이 영화가 그 형식을 드러낼 때는 별로 큰 감흥은 없었는데요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 수록 '극중극'이라는 형식을 활용하는 방식이 독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식적 유희가 영화 자체에 대한 메타 유머가 되기도 하고 인물의 심리와 정확하게 연결되기도 하면서
삶과 영화에 대한 철학적인 깊이를 잘 받쳐주고 있습니다
깊이로만 비교하자면 빅토르 에리세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 견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더니즘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이 영화를 감히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장 뤽 고다르,에릭 로메르,잉마르 베리만이 나란히 떠올랐습니다
<어거스트 버진>이 에릭 로메르의 영향 아래에서 벗어나지 있는 영화라면
<이젠 다시 시작하려고 해>는 그 셋의 교집합에 있는 영화 같습니다
(홍상수가 떠올랐기도 했는데 이분도 에릭 로메르의 영향을 받은 감독이라 뺐습니다)
또한 덴마크의 철학가 키르케고르를 극중의 대화에 끌어들이면서 영화에 지적인 풍부함을 북돋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어려운 영화는 아닙니다
지성과 통찰력과 공감력을 같이 겸비한 영화이고
이 영화에 나오는 레퍼런스를 몰라도 감수성과 풍부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따라서 <어거스트 버진>과는 좀 다른 매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명백하게 대비되는 점 하나만 더 말씀드리면,
<어거스트 버진>은 인물의 대사가 적은 영화인데
<이젠 다시 시작하려고 해>는 대사가 많은 영화입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우디 앨런 영화가 떠오르기도 하더라구요
올해 부국제에 상영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시네필이라면 한번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원래 제가 추천글을 잘 안 쓰는데
이 영화는 제가 올해 본 영화 TOP 10에 들어갈 법한 영화여서
흥분한 상태로 글을 썼습니다
우연이겠지만 한국어 제목이 찰리 카우프만 감독의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연상시키는 것도 재밌네요
보니깐 관심생기는데 부국제때 기회되면 한번 봐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