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우상화의 대부분은 우상이 되는 대상의 의지와 상관 없이 대중들이 멋대로 휘두른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창작물 속에서는 [베테랑 2]의 '해태'가 그랬고, 영화 커뮤니티 속에서는 이동진 평론가를 비롯한 평론가들이 있겠네요. 본인들은 그저 본인의 자리에서 본인의 신념에 충실했고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았는데, 정작 대중들은 그들의 신념을 신격화하고, 자신들의 신념을 꺾고, 따르고, 맞추려고 애씁니다.

 

토드 필립스의 '조커' 시리즈에 나오는 아서 플렉도 이런 우상화의 급류에 휩쓸린 나약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커]의 아서는 이전까지 어떠한 정치적/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았고, 지하철 불량배나 머레이를 쏴죽인 것 또한 자신을 괴롭혀서 복수한 것일 뿐 시스템에 대한 도전이나 영웅 심리 같은 것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행동이었죠. 하지만 이 행동으로 영화 속 고담의 하층민들은 방화와 약탈을 일삼으며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고, 영화 밖 관객들은 '웃기지도 않는 4류 코미디언 아서 플렉'이 아닌 '세상을 혼돈에 빠뜨린 역대 최악의 빌런 조커(의 탄생)'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커: 폴리 아 되]는 타인에 의해 강제로 우상화된 아서 플렉이 파멸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변호사는 아서와 조커를 어떻게든 분리하려고 하고, 인터뷰어는 오로지 조커로서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에만 관심 있으며, 할리 퀸젤은 아서가 아닌 조커를 동경하는게 아닌지 의심됩니다.

 

조커가 아닌 자신을 봐달라고 끝없이 절규하고 몸부림치던 아서는 결국 그들이 원하는 조커 분장을 했고, 점점 더 완벽한 조커가 되어갈수록 할리의 방청석 자리는 조커와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조커를 포기한 아서를 본, 그리고 노래를 그만 부르라는 아서를 본 할리는 더이상 조커가 아닌 그를 떠납니다(노래와 환상이야말로 이 영화에서의 조커를 상징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교도소의 죄수는 조커가 아닌 그를 (아서가 머레이를 죽일 때와 같은 대사를 외치며) 죽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아서는 죽어서 조커를 남겼습니다. 가죽을 남기고 죽은 호랑이는 까마귀의 밥이 되었는지, 조커가 아닌 채 죽은 아서는 무연고 장례라도 치렀는지, 그건 아서를 관극한 우리의 관심 밖입니다. 아서가 죽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 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결국 조커가 아닌 아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네요.

 

그렇게 우리의 불쌍한 아서 플렉은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사회복지제도로부터 낙오되고, 관객들에게 외면받고, 시청자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할리에게 버림받고, 추종자들에게 부정당했으며, 종국에는 대다수 관객들에게까지 버림받았답니다. 생각해보니 아서 플렉의 인생을 다룬 이 영화의 제목마저도 [아서 플렉: 폴리 아 되]가 아니라 [조커: 폴리 아 되]였네요. 그리고 영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사람들은 새로운, 더 나은 조커를 찾아 떠났습니다.

 

불쌍한 아서 플렉, 이렇게나 잘 짜여진 현대 예술 작품 속 비극의 주인공이여, 이제는 막을 내린 스크린 안에서 편히 잠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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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빈 1분 전
    감독이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몰라도
    묘하게 겹쳐지는 현실 속 반응에 재밌기도 하고 암튼 기분이 참 오묘해졌어요.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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