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미루다가 곧 내릴 것 같아서 서둘러 봤는데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로 조커 시리즈를 만든 감독의 명확한 의도가 마침내 완성되는 느낌이네요. 전편이 아서 플렉이라는 한 인물이 악당 조커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속편은 조커에서 다시 아서 플렉으로 포커스를 맞춥니다. 전편의 인물과 사건, 세계관이 확장되는것이 아니라 절묘하게 데칼코마니를 이룹니다. 따라서 속편에서 확장 혹은 전편만큼의 강력한 영화적 에너지를 기대했다면 극중 할리 퀸 처럼 상당한 배신감을 느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전편과 동일선상에 놓고 보며 비로소 아서 플렉의 빛바랜 초상화가 완성되는 것을 지켜보는 희열감을 느낄 것입니다. 전 후자였습니다.
전편과 속편을 망라하여 감독의 의도는 조커라는 DC코믹스의 빌런을 모티브 삼아 창조된 가상의 인물이자 범죄자인 아서 플렉의 심리 및 그가 고담이라는 사회와 주고받은 영향을 그의 일생과 사건들을 토대로 프로파일링하는 데 있습니다. 그 의도를 부각하기 위해 전편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를 취합니다. 즉 아서 플렉을 보다 냉철한 태도로 바라봅니다. 범죄심리학적 관점으로 범죄자의 내면을 이해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범죄는 범죄일 뿐이다'라는 객관적, 합리적 관점을 환기합니다. 이는 아서 플렉 자신이 저지른 죄를 인정하고 판결을 기다리는 법정 안 범죄자의 모습과 확연히 대비되는 법정 밖의 현실, 즉 허상의 빌런 조커를 광적으로 추앙하는 어찌보면 범죄자보다 더 소름끼치는 군상들의 모습에서 그 무게감을 더하며 감독의 의도와 함께 속편이 필요했던 영화 외적인 이유까지도 기어이 납득시키고야 맙니다. 그러면서도 인간 아서 플렉에 대한 연민 어린 시선 또한 끝내 놓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아서가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보이는 엔딩에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쿨하게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 영화는 정신적 문제가 다른 개체에 전이된다는 부제 "폴리 아 되"의 의미와 같이 개인 내면의 자아와 자아, 개인과 타인, 개인과 사회, 나아가 현실과 쇼비지니스의 허상까지 요소 간 상호작용을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뮤지컬 장르의 형식에 로맨스 스토리를 녹여 현실과 망상 가운데 놓인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 하는데요. 그런데 '왜 뮤지컬이냐' 라는 질문을 한다면 전편과 차별화를 두되, 현실과 망상의 유기적 대립과 충돌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이기 때문이라 답하고 싶습니다. 즉 범죄물과 뮤지컬이 마치 경계선 인격장애 처럼 한 울타리 안에서 심리적으로 극단의 지점끼리 변화무쌍하게 충돌하는 것과 같은 장르적 관계를 형성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극중 할리 퀸과의 로맨스 조차 아서만의 망상이 아닐까 하는 다소 과장된 해석도 가능할 정도로 뮤지컬 형식은 기막힌 한수였다고 봅니다.
이 영화에서 호아킨 피닉스는 그동안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들을 집대성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특히 감옥에서 일생일대의 사랑에 빠진 희대의 살인마의 모습은 추억의 한국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떠오를 정도로 애틋합니다. 그만큼 감정적 설득력이 큽니다. 이거 보고 눈물 흘릴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하지만 호아킨 피닉스를 위한, 그에 의한 영화에 가까웠던 전편에 비해 속편은 감독 토드 필립스의 역량이 보다 잘 드러난 영화라고 봅니다. 특히 애니메이션 형식을 취해 영화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오프닝과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고 재치있게 표현한 몇몇 뮤지컬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튼 오랜만에 아서 플렉에게 푹 빠져서 웃고 울고 그와 닮은 듯 다른 나의 모습도 비춰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으며, 이 정도로 혹평 받고 폭망할 영화인가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전편이 다시 보고싶어지네요.
☆<조커:폴리 아 되> 별점 및 한줄평:
●●●●(4/5)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그 모든 게 나였다.
+ 전편 <조커> 별점 및 한줄평:
●●●●●(5/5) 개인의 삶과 그 삶을 둘러싼 세상 모두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코미디다.
아서의 조커 각성 부정에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음...ㅠㅠ
저또한 대중처럼 아서의 조커 각성과 뉴 빌런의 폭력성을 대리 만족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어 그 배신감에 '불호'였지만 N차 관람하며 호아킨 피닉스와 레이디 가가의 미친 연기 호흡에 부제 '폴리아되(감응성 정신병)' 전염된것 처럼 '호'로 바뀌었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