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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 영화 중에서 리얼리즘 계통의 영화들이 두각을 간혹 보입니다. 2019년에 <레미제라블>이 있었고 2022년에는 <풀타임>이 있었죠.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도 그 계통 위에 있는 강렬한 걸작입니다.

 

예술은 인간에게 있어서 또는 사회에 있어서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그 중에 한 역할로 예술은 인간으로 하여금 타인의 삶을 살아보게끔 한다는 점입니다. 타인의 삶을 살아보게 하면서 우리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우리의 인간성을 일깨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예술의 강력한 힘이기도 하죠.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그것을 증명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술레이만'의 삶 중에서 3일을 대신 살아보게끔 합니다. 술레이만은 기니 출신 불법체류자로 파리에서 음식 배달일을 하고 있습니다.(부국제 제목에는 택배기사라 되어 있는데 그는 음식 배달부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서류만으로는 그는 공식적으로 프랑스에서 노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음식 배달 앱의 계정은 술레이만의 것이 아니고 먼저 정착한 사람으로부터 대여한 계정이라 그는 직접 수입을 계좌로 받지 못하고 계정 대여비가 공제된 금액을 전달받아야합니다.  그리고 그는 난민 브로커가 지어낸 가짜 이야기를 입으로 반복하면서 망명을 위한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매일 새벽마다 예약을 해야하는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샤워실 말고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시간이 없습니다.

 

영화 초반부터 술레이만의 삶은 아슬아슬하게 그려집니다. 하루에 돈을 조금이라고 더 벌기 위해서 자전거로 도로 위를 빠르게 달려야 하고 배달 앱에서는 주기적으로 본인 인증을 위한 셀카를 요구해서 계정을 대여해준 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난민 브로커는 인터뷰를 위한 가짜 서류를 위해 다음 날까지 돈을 요구하지만 배달 앱의 계정을 빌려주는 사람은 술레이만의 사정을 무시하며 그에게 돈을 줄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그리고 가짜 이야기가 잘 외워지지 않아 인터뷰에 대한 술레이만의 불안감은 커져갑니다.

 

이러한 인물의 특성 상 영화는 술레이만이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그는 자전거나 지하철, 버스 등으로 끊임없이 이동하며 긴박한 동선을 보여주는데요. 그 때문에 영화는 서스펜스를 만들고 있지 않음에도

이 긴박한 동선 자체만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서스펜스를 만듭니다. 솔직히 이걸 서스펜스라고 말해도 될지 조심스러워질 정도로 영화는 그가 겪고 있는 극도로 높은 긴장을 관객들에게 체감시키는 듯합니다. 그 동선에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끼어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술레이만의 상황은 위태로워지고 영화의 긴장이 팽팽히 고조됩니다. (반대로 예상치 못하게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들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관객은 술레이만을 따라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기도 합니다.)

 

거기에는 이 영화가 가진 사실감이 매우 크게 작용합니다. 이 영화는 파리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영화가 살갗에 닿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파리의 길거리 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게 난민 또는 불법체류자이고

파리 사람들이 그들에게 음식 배달을 실제로 받으니까요. 실제로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저로서는 상당한 사실감을 받았습니다. 극장을 나서기만 해도 영화 속 공간이 그대로 펼쳐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구요. 게다가 영화는 구원 같은 고상한 상징도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더 직접적으로 현실로 뛰어듭니다.

 

이 영화는 이들을 보호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지적하기보다는 술레이만의 개인의 긴박함과 피로와 불안에 전적으로 집중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프랑스 사회의 난민 또는 불법체류자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노동을 하는지 그리고 사회적 약자로서 어떤 착취를 당하는지를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게끔 유도하기도 합니다. 술레이만이 겪는 개인적인 문제나 감정도 분명 있지만 대체적으로 술레이만에게 가해지는 여러 압박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뼈대가 되는 것은 망명 인터뷰입니다. 그 중에서 '이야기'라는 소재가 이 영화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프랑스어 원제는 L'histoire de Souleymane, 직역하면 술레이만의 이야기로 이야기라는 소재는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런닝타임 동안 관객은 술레이만으로부터 그가 외우는 가짜 이야기를 여러 번 듣게 되지만, 인터뷰 장면에서 그의 진짜 이야기가 결정적인 순간에 발화될 때 그 진짜 이야기에 압축되어 있는 것들이 있는 힘껏 튕겨져나와 관객의 마음을 있는 힘껏 세게 두드립니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은 못하지만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이 인터뷰 장면은 그야말로 숨을 죽이면서 보게 되는데요. 매우 단순한 숏 구성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의 긴장감과 감정적인 폭발력은 가히 대단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짜 이야기를 외우는 술레이만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 살짝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왜 그가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영화는 이 장면에서 끝내 납득시켜버립니다.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이 개인의 문제 또는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명료한 답을 내리진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까지 끌고가는 체험적인 긴장은 누군가들이 겪는 문제들에 관련하여 관객의 인간성에 강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호소력은 <자전거 도둑> 같은 네오리얼리즘 작품의 호소력만큼 강렬합니다. 비전문배우, 야외 촬영 등 여러 특징을 통해서 <어느 파리 택배기사의 48시간>은 고전적인 리얼리즘 영화에 맞닿으면서 리얼리즘 예술의 효력과 역할을 우리에게 다시 강렬하게 상기시키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5점 만점에 4.5입니다

저의 올해 TOP 10에 들어갈 정도로 강렬한 작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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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언친구 2024.10.12 13:25
    어쩌다 보니?  <이오 카피타노>, 이번 부국제 <애니웨어 애니타임>을 보고 이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 마지막 인터뷰 장면에서 저 두 작품의 이야기와 장면들이 오버랩되면서 이야기가 확 다가오더라구요. 술레이만이 무슨 상황이었을지 무슨 마음이었을지 너무나 이해가 되어서 슬펐던... 리뷰 잘 읽었습니다.
  • @라이언친구님에게 보내는 답글
    ㅇㅇㅅㄹ 2024.10.13 06:04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술레이만의 삶이 숭고하게 느껴질 정도였죠..

    난민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고조되는 긴장 속에서도 잠깐의 친절이 그에게 찾아올 때마다 느껴지는 감동이 인상적이기도 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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