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 다른 시네필 한분 두분씩 2024년에 공개된 영화 베스트를 선정하고 순위를 매기시고 계신데요.
저는 아직 볼 영화가 몇 편 남아있어서 베스트 순위 선정을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올해 가장 지루하게 본 영화들은 지금 뽑아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악의 영화를 일부러 찾아보는 건 아니더라도
생각 이상으로 처참했던, 또는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였던 영화들을
1년 동안 아주 적어도 한편씩은 마주치기 마련입니다
그 안타까운 영화 10편의 리스트입니다 ;)
무순입니다
마담 웹
어떤 감독이 와도 기획의도에 맞게 못 살릴 각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각본으로 어떻게 크랭크 인이 될 수 있었던 건지 의문입니다.
보더랜즈
괴팍한 유머의 에너지는 온데간데없고 전체적으로 올드한 데다가, 코스프레하고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는 케이트 블란쳇을 계속 보고 있으면 점점 민망해지기까지 합니다. 그건 배우의 잘못이 아니라 영화의 잘못이겠죠
크로스
혹시 설경구, 문소리, 다니엘 헤니가 나왔던 <스파이>(2013)라는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빠르게 잊혀진 영화인데요. <크로스>를 보면서 그 영화가 다시 떠올려지더군요. <스파이>도 개봉 당시에 신선한 건 전혀 없는 작품이었는데 <크로스>는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때에 공개됐습니다.
더 슈라우즈
저에게 올해 가장 미스터리한 영화입니다. 무수한 카메라로 짜여진 수의로 무덤 속의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슬픔과 그리움의 육체성을 왜 이렇게까지 딱딱한 방식으로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남았습니다. 대부분의 장면을 대화로만 처리하는데 런닝타임 절반은 횡설수설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많이 따분하더군요. 어떤 평론가는 '일부러 차갑게 굳힌 영화 같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센강 아래
2024 파리 올림픽은 센 강 수질 문제로 전세계적인 우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센강 아래>는 올림픽 개막 직전 그 우려가 컸을 때 공개된 작품입니다. 그래서 파리 센 강에 나타난 상어라는 설정은 센 강 수질 문제를 은유하는 것이라 보일 수 밖에 없었죠. 실제로 선수 건강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와 파리 시청은 올림픽 경기를 센 강에서 운영하려고 고집했었는데 영화 안에서도 파리 시장이 그런 고집스러운 인물로 나오죠. 다만 전반적으로 말이 안 되는 괴수물이고 괴수 영화의 클리셰들만 가지고 한편 뚝딱 만들어 공개 타이밍만 잘 잡은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Rebel Moon - 파트 2: 스카기버
파트 1보다 낫긴 합니다. 다만 여전히 이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차별점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호라이즌 : 아메리칸 사가 챕터 1
<늑대와 춤을>을 연출했던 케빈 코스트너의 또다른 야심작입니다. 사실 야심작이라는 표현에 이만큼 잘 어울리는 작품은 드물 겁니다. 미국 서부의 역사와 삶의 모습들을 다 담아 미국에 대한 대하극을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이 매우 충만하지만 문제는 챕터 1이 관객으로 하여금 그 야심에 대한 신뢰감을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챕터 1만해도 3시간의 런닝타임을 가지고 있는데도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조짐이 잘 안 보일 정도로 '3시간짜리 서막'에 가까웠습니다. 개인적으로 의도가 의심스러운 대목도 있어 챕터 2를 봐야할 거 같은데, 챕터 2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트랩
서스펜스는 트릭을 얼마나 교묘하게 잘 짜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트랩>의 트릭은 참 단순하고 정직하기 그지 없습니다. 영화 중반이 지나면 긴장감도 떨어지는 데다가 엔딩쯤 가면 진부한 정신분석학도 가미되면서 영화는 용두사미의 허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메갈로폴리스
이 영화가 난해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영화가 너무 무질서합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장대한 이미지를 통해 인류와 문명에 대한 시를 쓰고 철학을 하려고 하지만, 이미지들이 통일감 없이 파편화되어 있고 제 위치를 찾지 못한 채 붕 떠있다는 느낌을 저는 영화 내내 떨쳐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엔딩을 마주했을 때의 허무함은 압도적이었습니다. 런닝타임도 길어서 끝나기 전 30분 동안은 한숨이 계속 저절로 나왔습니다.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올라간 작품들을 좀 봤는데 그 중에서 이 작품이 최악인 거 같네요.
더 킬러: 죽음의 여왕
왜 오우삼 감독은 자신의 최고작이라 평가받기도 하는 <첩혈쌍웅>을 리메이크 했을까요? <더 킬러: 죽음의 여왕>과 <첩혈쌍웅>의 이야기를 비교하면, 주윤발이 맡았던 캐릭터를 여성으로 바꾸고 도시를 홍콩에서 파리로 바꾼 것 외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35년이 지나도 오우삼은 여전히 자신의 오래된 트레이드 마크인 비둘기를 화면에 배치하고 액션 장면에서 과할 정도의 슬로우 모션을 통해 작품에 비장미를 넣고 있습니다... 쌍권총은 원작의 트레이드 마크니 그럴 수 있어도 지금은 그것마저도 세련되지 않다고 느껴지는 시대입니다. 원작의 배경과 느낌이 아예 다른 파리로 옮겨서 원작의 도시적인 정취도 잘 안 느껴지구요. 개인적으로 이 리메이크에서 자신의 요원한 전성기 시절을 바라보는 오우삼이 더 눈에 보였습니다. 한편으로 안타깝더군요.
다행히(?) 이 리스트에 들어가지 않은 작품들을 알려드리면... 허명행 감독의 <황야>, 정 바오루이 감독의 <구룡성채: 무법지대>, 켈리 마르셀 감독의 <베놈: 라스트 댄스>가 있습니다.
그 중에는 한국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도 있습니다. 카토 타쿠야 감독의 <흐트러지다>, 엘리제 지라드 감독의 <시도니 인 재팬>, 오드리 디완 감독의 <엠마누엘>, 압데라만 시사코 감독의 <블랙 티>가 있습니다. 이 작품들에 대해 유독 생소해 하실 것 같아서 간단하게만 적어봅니다.
간단하게 영화 제목과 한줄평만 남길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저절로 글에 살이 붙었네요
이번 주 개봉하는 작품을 보고 베스트 리스트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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