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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새해 첫 영화로 그동안 기대했던 작품 <시빌 워: 분열의 시대>를 아이맥스관에서 관람했습니다. 근미래의 미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가상의 내전을 다루고있고 영화사 A24가 제작한 최초의 블록버스터라고 홍보되었지만, 오락적 재미를 제공하는 대규모 상업영화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어찌보면 양극단으로 대립하는 정치 현실과 더불어 대외적으로 세계경찰을 자처하며 침략과 약탈, 그리고 차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미국의 위선 및 파시즘에 정면으로 총구를 겨누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저널리즘의 양면성, 즉 직업적 모순에 거침없이 렌즈를 들이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영화가 취하고있는 스탠스는 중립적이라 볼 수 있으며 직선적이고 신랄한 풍자는 자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질문하지 않으며 대중들이 질문할 수 있도록 기록할 뿐'이라며 저널리즘의 본질을 언급하는 극중 리의 대사처럼 영화도 그저 가상의 현실을 카메라에 담고 보여주는 역할에 충실할 뿐입니다. 그로인해 이것 조금 저것 조금 건드리며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싶은 것인지 애매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요. 반면 이러한 영화적 특성이 스크린 앞에 모인 관객인 동시에 스크린 밖 분열의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각자로 하여금 영화 내외적으로 여러 질문을 던져보게 만드는 기능을 합니다. 정치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고, 철학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즉, 보는 이가 어디에 렌즈의 초점을 맞추어 뷰파인더를 응시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찰나를 포착했지만 관점에 따라 해석과 감상의 포인트가 다양해질 수 있는 한 컷의 사진 처럼 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 본연의 폭력성'을 탐찰하며 직시하는 영화라고 봅니다. 극중에서 내전이 일어난 발단과 상세한 사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선하게 묘사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영웅 같은건 애시당초 없습니다. 정부군과 연합군(반군) 양쪽 다 분열의 이유와 정치적 이념 따위는 잊은 채 서로 죽이기 위해 죽일 뿐입니다. 항복도 협상도 필요 없습니다. '나에게 총을 쏘는 사람이 적일 뿐'이라는 한 군인의 무심한 말이 이 영화가 바라보는 전쟁의 민낯을 단순하지만 확연하게 보여줍니다. 가게를 약탈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자행하고 투항하는 적을 아무렇지 않게 사살하는 것을 넘어 미국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기자에게 무자비하게 총을 쏘는 군인들의 표정과 몸짓에서, 마치 혐오와 적개심 자체가 전쟁의 목적이 되어버린 인간의 추악한 폭력성이 건조하게 드러날 뿐입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폭력성을 비단 총구에서만 찾고있지 않습니다. 저널리즘에서도 그것이 내포하는 또다른 의미의 폭력성을 끄집어냅니다. 종군기자들의 고충과 함께 그들의 고뇌 어린 직업정신을 설파하는 것 같지만, 치열한 전투 현장에 몸을 던지는 그들을 보노라면 투철한 사명감보다는 본능과 광기에 가까운 행위로 느껴집니다. 군인이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듯 이들은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를 뿐인데요. 마치 먹이를 향해 본능적으로 돌진하는 맹수와도 같습니다.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말입니다. 이는 자신의 과거를 닮은 제시와 동행하며 직업의식이 흔들리는 리와 그런 그녀의 전철을 그대로 밟아가며 냉혹한 사진기자로 성장 혹은 변모하는 제시의 대비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동료가 죽는 순간마저도 "기록"하는 것이 기자의 숙명이라지만,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자신의 생명을 구한 동료의 마지막 모습 앞에서조차 그저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과 전진하는 발걸음을 어찌 직업의식의 산물이라 무작정 단정할 수 있을까요? 기자들이 백악관까지 향하는 지난한 발걸음 또한 내전의 참혹한 진실을 기록하고 알리겠다는 목적 곧 본질을 쫓는 것 보다, 대통령이 죽기 전 인터뷰 한 번 하겠다는 목적 곧 특종을 쫓는 것에 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피가 난무하는 생지옥에서 누가 더 희소성 있는 사진을 건졌는가 농담 섞인 어조로 비교하는 기자들의 모습에 숭고함 따위는 온데간데 없습니다. 이같은 모습들은 그저 또다른 얼굴의 폭력으로 비춰질 뿐입니다. 마침내 사살된 대통령의 시신 앞에서 환하게 웃는 군인들의 모습을 기자의 렌즈에 자랑스럽게 담아낸 엔딩의 기념사진은 이러한 폭력성의 정점과 마주하게 합니다. 군인이든 기자든 가릴 것 없이 인간이 지닌 잔혹한 본성이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의 정당한 성취로 포장되는 모순에 소름 끼치면서도 역겨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과도 맞닿아있는데요.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어 싸우는 사람들을 보고서도 말리기는 커녕 기록이라는 명목으로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의 렌즈만 들이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전혀 다를 게 없습니다. 폭력은 곧 방임이라는 이름으로도 그 날개를 유유히 펼치니까요. 어쨌든 영화는 성장 드라마의 색채 속에서 저널리즘을 옹호하면서도 그 이면의 폭력성에 질문을 던져보게 만드는 깊이까지 도달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여러모로 노자의 성악설에 기반을 둔 영화로 읽혀졌습니다.
이 영화는 연출의 형식적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점들이 많습니다. 사진기를 든 네 명의 기자를 중심으로 로드무비의 장르적 구조 안에서 전쟁의 참상을 따라가며 포착하고 있는데요. 숏의 구도와 편집을 통해 나열된 보도사진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유도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중립적 관찰자 태도에 동참하게 만듭니다. 마치 감독의 영상용 카메라와 종군기자의 사진용 카메라가 오버랩된 듯한 착시를 유발합니다. 뜬금없는 힙합 음악에 맞춰 벌어지는 정부군과 반군의 총격전 시퀀스에서도 관객이 어느 한쪽 편에 서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몰입을 방해하며 종군기자와 같은 시점을 그대로 유지하게 합니다. 조금 전 언급한 장르적 구조면에서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영화적 호흡과 영상미 면에서는 테렌스 맬릭의 <씬 레드 라인>같은 걸작 반전영화들과도 은근히 결이 비슷하게 느껴지는데요. 고막을 찢을듯한 총격음과 처참한 전투 현장에 대비되는 잔잔한 새 소리와 평온한 길가 풍경들, 총상으로 죽어가는 노기자 새미와 반딧불이 처럼 흩날리는 불꽃의 이미지가 교차되는 가운데 서정적인 음악이 더해져 부조화스러운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장면 등이 묘하게 고전 전쟁영화의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영화 속 전쟁이 가상의 내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세계 평화 수호라는 명분으로 관여하고 참전해왔던 베트남전을 비롯한 수많은 전쟁들로 자연스레 확대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거대한 미대륙의 "시빌 워"는 지금도 전세계 곳곳에서 각자 혹은 집단의 신념을 내세워 분열하고 혐오하며 자행하는 폭력 그 자체에 대한 메타포로 볼 수 있으니까요. 대한민국 이곳도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총과 카메라 사이에서 영화가 직면하고 시사하는 폭력의 민낯을 보고있노라면 먹먹한 심정이 슬그머니 가슴을 짓눌러 올 뿐입니다. 2025년에 처음으로 만난 영화 속의 현실과 달리 올 한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현실만큼은 성악설이 아닌 성선설, '그래도 인간의 내면에는 진정 선한 것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는 소식들로 가득하기를 바라봅니다.
+ 영화의 사운드 믹싱이 빼어납니다. 총격음, 폭격음은 물론이고 전반적으로 음향 효과와 음악, 대사가 귀에 팍팍 꽂히며 시원시원하게 들립니다. 후반부 워싱턴 시가전과 백악관 점령전은 리얼리티와 함께 장르적 쾌감을 만끽할 수 있는 구간입니다. 아이맥스 뿐 아니라 돌비 포맷 관람도 좋은 선택이라 사료됩니다.
+ 세련된 웰메이드 영화라고 치켜세우기엔 조금 아쉬운 점도 있는데요. 서사적으로 특출한 점이 딱히 눈에 띄질 않습니다. 엔딩 시퀀스에서 리의 희생과 맞물리는 제시의 각성은 다소 작위적인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획기적인 소재에 비해 이야기 자체가 흥미진진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극중에서 제시가 입고있는 흰색 티셔츠의 프린팅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는 듯한 세 사람과 뒤를 돌아보는 한 사람이 의미심장하게 그려져있습니다. 이는 워싱턴으로 향하는 여정을 함께 하는 네 명의 기자를 암시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혼자 시선을 돌리는 한 사람은 세 명의 베테랑 기자들과 달리 오직 피사체만을 바라보며 전쟁터를 누벼야 하는 종군기자로서 아직은 미숙한 상태의 제시 자신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어찌보면 혼자 정부군과의 대면을 거부하고 남았다가 결국 일행을 구해낸 후 죽음을 맞이한 새미의 처지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결정적인 순간에 피사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위험에 처한 동료에게 눈을 돌리는, 즉 그토록 투철하게 지켜왔던 직업의식에 반하는 행동으로 싸늘한 주검이 되고만 리를 암시하는 그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영화 초반 영화 외적으로 씁쓸한 감정에 휩싸였는데요. 한때 저의 아이돌이나 다름 없었던 커스틴 던스트도 '세월 앞에서는 장사 없구나..' 싶을 정도로 부쩍 늙어버린 모습 때문입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인만큼 같이 늙어가는 처지 같아서 가뜩이나 암울한 영화 분위기에 울적함만 한 스푼 더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는 필모 중 최고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차갑고 절제된 표정 뒤에 감춰진 고통, 즉 두려움과 회의감 속에서 종군기자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가했을 모진 채찍질, 그것이 남긴 내면의 상흔이 고스란히 엿보이는 호연을 보여줍니다. 극중에서 제시가 하는 말처럼 "웃는 얼굴이 예쁜" 배우인데, <멜랑콜리아>, <파워 오브 도그>에 이어 이번 작품까지 희한하게도 거의 안 웃는 역할을 맡아야 연기가 더 빛이 납니다. '늙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나이가 들수록 배우로서 점점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는 그녀를 지켜보며 응원합니다.
☆별점 및 한줄평:
●●●○(3.5/5) 총구와 렌즈, 방아쇠와 셔터가 하나로 겹쳐 보일 때의 섬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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