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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모리슨. 전설적 록 밴드 도어즈의 리더. 지독한 염세주의적 통찰로 점철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걸작 <지옥의 묵시록>의 오프닝 시퀀스를 끈적하게 적시는 명곡 "The End"의 음유시인.
그는 어릴 적 우연히 인디언의 죽음을 목격한 후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립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당시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던 베트남전 참전 용사죠. 그로인해 "죽음"이란 관념은 그에게 있어 벗어던질 수 없는 화두가 됩니다.
다섯 살 때, 어머니의 손에 의해 분수대에 던져진 적이 있습니다. 잠시 후 행인에게 구조되긴 했지만 물 속에서의 짧은 시간이 저에겐 영겁으로 느껴졌습니다. 비린내가 뒤섞인 락스물이 콧구멍을 통해 기도로 스멀스멀 흘러들어올 때 전 죽음을 처음 보았습니다. 짐 모리슨과 마찬가지로 그 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어차피 인간에게 죽음은 숙명이구나.'
영화는 141분간 짐 모리슨이라는 희대의 록스타의 영광에 찬사를 보내는 대신 처절하게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그의 파멸에 초점을 맞춥니다. 즉 인물에 대한 미화는 철저하게 배제한 채 고통으로 얼룩진 그의 영혼을 발가벗깁니다. '인식의 문을 열고 모든 것의 본질인 무한한 세계로 나아가자'는 의미의 "도어즈"라는 밴드명으로 활동하지만, 음악은 결국 그에게 인식의 문을 부수는 저항의 도구도, 무한한 자유로 나아가는 구원의 통로도 되지 못합니다. 쾌락의 신 디오니소스에 자신을 투영하고 브레히트의 희곡에서 영감을 받아 노래한다는 명분으로 무대 위 일탈을 합리화하지만, 지옥같은 세상과 그 세상에 자신을 존재하게 한 아버지를 증오하며 죽지못해 꾸역꾸역 삶을 이어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환자만이 그의 참 모습입니다. 그저 끊임없이 술, 마약, 섹스로 도망칠 뿐이며 그 안에서 찰나의 쉼을 얻을 뿐입니다. 어쩌면 밴드 동료의 일침처럼 세상을 달관하여 고통을 즐기는 어른인 척 하지만 실상은 고통을 회피하는 데 급급한 겁쟁이 소년에 불과하죠. 음악을 통해 부조리한 폭력에 길들여진 사회 구조와 그러한 구조 속에서 정당화된 폭력을 행사하는 자신의 아버지 세대를 향해 비난과 조롱의 메시지를 날리면서도,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진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스스로를 난도질합니다. 어차피 죽음은 인간의 숙명이라는, 고로 오직 죽음만이 삶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구원의 통로라는 좌절감과 무력감이 죽은 인디언의 환영처럼 그의 내면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죽음은 그에게 있어 두려움의 문인 동시에 그 너머 동경의 세계이기도 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27세라는 나이에 욕조에 누워 그토록 원하던 죽음을 맞이합니다. 평생 연인으로서는 최악이었던 그의 곁을, 그녀 자신의 표현대로 "장신구"처럼 함께했던 팸이 담담하게 묻습니다. '죽음의 순간을 즐겼냐'고... 그녀의 속삭임에 화답하듯 세상 평온한 그의 얼굴을 카메라가 가만히 응시합니다.
실제 베트남전 참전 용사이기도 한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전작 <플래툰>같은 반전 영화와 세계관을 공유하는데요. 세계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의 위선과 폭력성을 일갈하면서도 그것이 당시 사회에 끼친 악영향을 한 뮤지션의 생애에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그의 삶의 무대에 펼쳐진 쾌락의 적나라한 지옥도를 통해, 당시 젊은이들에게 유행처럼 번졌던 히피 문화 또한 겉으론 철학을 논하며 반전과 저항을 외치나 그저 환각으로 도피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합니다. 즉 엿같은 세상을 핑계로 스스로에게 엿을 먹이며 쾌락에 탐닉하는 청춘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여과없이, 집요하게 묘사합니다. 혼란 속에 무너져내린 미국사회의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말입니다. 어쩌면 짐 모리슨의 삶 자체가 시대의 거대한 메타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고로 이 영화는 전기영화의 탈을 쓴 사회극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영화 내내 도어즈의 명곡들을 마약에 흠뻑 취한 채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요. 모리슨의 불안정한 심리를 포착하며 뱀처럼 흐느적거리는 카메라의 움직임에 속이 울렁이기도 합니다. 모처럼 염세적 정서의 끝판왕격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제 내면을 여실히 투영하고 있어 개인적 취향에는 부합하지만, 미학적으로 빼어난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함부로 추천하고픈 영화는 아닙니다. 짐 모리슨과 60-70년대 로큰롤의 팬이 아니라면, 혹은 지극히 건전한 사고를 가진 현실주의자라면 이 영화는 피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회와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짐 모리슨과 상당 부분 일맥상통하는 제가 봐도 정서적으로 만만치 않은 영화니까요. 어쨌든,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인물의 삶 그 자체보다는 인물의 죽음과 그 죽음으로 향하는 광란의 여정을 진득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작품이라 평가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비록 유한한 육신은 랭보, 쇼팽, 오스카 와일드, 몰리에르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과 함께 묻혀있지만 고통으로 가득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어딘가에 무한한 영혼으로 존재하고 있을 짐 모리슨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 그곳에선 진정 자유롭고 편안한가요? 그곳은, 천국인가요?
P.S 이 영화를 보고나니 동시대를 풍미한 또다른 음유시인 밥 딜런의 생애를 다룬 <컴플리트 언노운>이 더더욱 궁금해집니다. 공교롭게도 러닝타임이 똑같던데 발 킬머의 짐 모리슨과 티모시 샬라메의 밥 딜런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을 듯 하네요.
☆별점 및 한줄평:
●●●○(3.5/5) 발 없는 새가 있었다, 늘 날아다니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쉬는.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았는데, 바로 죽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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