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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건축이랑 같이 미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무코라는 사이트는 이번에 굿즈때문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영화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 교류가 가능한 곳 같아서 좋아보여요. 이번에 <브루탈리스트>를 보고 무코에서 후기들 읽어보고 있는데, 몇 가지 저와 다른 의견이 보여서 설득(?) 내지는 제가 영화에서 느꼈던 재미를 다른 분들도 느꼈으면 해서 이렇게 첫 글을 후기로 적어봅니다.
(다른 분들의 후기, 해석도 참고했는데 일일이 출처를 작성하지 못했다는 점 양해바랍니다.)
1. 제가 영화 플롯 평가하는 관점.
저는 영화 플롯을 볼 때 시학적 관점에서 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가 역사보다 더 고결하고 철학적인데, 역사는 이미 일어난 개별적인 사실만 나열하는 반면, 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포함하여 보편적 영역까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시는 고대에 음유시인들이 부르는 플롯을 가진 '시가'를 말하는 것이구요. 이 말의 의미는 플롯을 지을 때 어쩔 수 없이 허구적 이야기를 쓰게 되는데, 그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고 실제 있는 인물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고 있을 법한 인물이라면 괜찮은 것이며, 그렇게 지어낸 이야기를 통해 적절한 철학적 탐구를 할 수 있게 되면 그 허구는 좋은 것이면서 동시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적절한 정도를 '개연성'이라고 설명했구요. 이 관점으로 저는 라즐로 토스라는 인물과 이 인물에게 일어난 일들이 적절하게 쓰여진 허구라고 생각했는데요.
2. 라즐로 토스와 <브루탈리스트>를 이루는 큰 줄기
라즐로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 단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브루탈리스트'입니다. 브루탈리즘은 에필로그에서 설명하는 내용 그대로만 이해해도 충분다고 생각했는데요, 좀 더 덧붙이자면 '불필요한 장식적 요소를 제거'하고 '본질'을 추구하는 것인 건축 사조입니다. '순수'의 측면이 있는데, 라즐로는 브루탈리즘 건축을 한다는 점에서도 브루탈리스트이지만 '순수한 예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도 브루탈리스트입니다. 이렇게 생각한 근거는 그가 돈, 물질, 명성에 대한 욕심이 없고 오직 작품을 잘 만드려는 데만 몰두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성격은 영화 내내 드러나는데, 아틸라네 쪽방에 머물 때 '아무런 기대도 안했어'라고 말하면서 보수, 안락한 숙소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라즐로가 눈을 반짝이던 때는 오직 그가 디자인한 가구를 만들 때였구요. (라즐로의 상반신만 보이면서 용접 불꽃이 튀기는 씬이 있었죠?) 완성한 가구를 보고 오드리가 '어떻게 하죠?'라고 했을 때 그냥 전시해두면 된다고 한 것과, 서재 리모델링 보수를 2000달러를 불렀을 때 진짜로 잘 만들려면 그만큼 필요했다고 대답한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커뮤니티 센터를 지을 때도 예산 때문에 설계가 바뀌자 사비를 털어서라도 원래 의도대로 지으려고 하죠. 또 서재가 갑자기 바뀐 것에 분노하는 벤 뷰런에게 아틸라는 라즐로를 '라이센스드 아키텍트'라고 소개하면서 달래려는 반면 라즐로는 '둘러보시죠'라며 그의 작품성을 통해 설득하려고 합니다. 라즐로의 관심은 오직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순수한 예술가이죠.
그 다음에 오는 것이 '유대인 이민자'입니다. 바우하우스에서 공부한 순수한 예술가로서 성공을 거뒀지만, 나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이민길에 오르게 됩니다. 돈도 없이 몸만 덩그러니 와야만 했죠. <브루탈리스트>는 이러한 이민자들이 겪게 되는 고통을 '브루탈리스트'라는 소재를 통해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순수한 예술가이지만,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자본주의의 이면, 자본의 잔인성 때문에 그가 원하는 예술 활동을 추구하지 못하고 고통받죠. 그래서 영화 제목을 '이민 건축가(?)'나 '유대인 건축가' 같은 것이 아니라 '브루탈리스트'로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3. <브루탈리스트>에서 묘사되는 자본주의의 폭력
영화 내에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은 해리슨 벤 뷰런과 그 아들 해리, 시공업자 레슬리와 다른 건축사 짐입니다. 처음에 해리슨은 무조건적인 후원을 해줄 것처럼 다가왔지만, 레슬리 그리고 추후 짐을 고용하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덜 쓸 수 있을까, 하는 자본주의적 태도로 변모하죠. 이들은 예술가의 의도는 무시한 채 돈을 낭비하는 것 같다며 설계안을 마음대로 바꿔버리는 자본주의적 폭력을 저지릅니다. 또 열차사고로 인해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줘야할 위기에 처하자 라즐로는 쓸만한 자재라도 건져서 건축을 계속하려는 반면 해리슨은 큰 지출에 골 아파하며 건설을 멋대로 중단해버리죠. 갑자기 사고가 난 것에 대해 뜬금없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영화 내에서 충분한 설명을 했죠. 워낙 큰 프로젝트여서 운송을 여러번 해야했고,(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사고가 났을 것) 예산때문에 열차도 구매했다고 한 걸로 기억합니다. 감독은 이런 사건을 의도적으로 집어넣음으로써 변덕쟁이인 자본의 특성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구요.
4. 유대인 차별? 이념과는 무관함을 보이려는 '브루탈리스트'
저는 무교여서 종교에 대해 무지하고 시오니즘이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영화 내에서 묘사된 정황을 보았을 때 가톨릭교도들이 유대인들에 대한 묘한 경계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유대인 이민자도 흑인들처럼 차별에 노출된 것이라고요. 시 예산을 따기 위해 설명회를 할 때도 프로젝트 자체보다 라즐로의 종교적 이념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뷰런 가가 라즐로와 에르제벳, 조피아에 대해 오묘하게 깔보는 태도도 보였었죠. 영화 후반부에 라즐로가 차에서 실토하기도 했어요. 가톨릭교도인 오드리가 자신을 못마땅해 해서 아틸라에게 거짓말을 해 자신을 쫓아내게 했다고요.
5. 좋은 디자이너인 라즐로 토스. 좋은 디자이너일 뿐인 라즐로 토스.
이러한 소위 억까들 속에서도 라즐로는 묵묵히 작품으로 이야기할 뿐이었습니다. 사실 뷰런 가가 의뢰한 커뮤니티 센터는 허무맹랑하게 거대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건물 네 개를 만들어야겠다고 할 정도로 욕심많은 프로젝트였어요. 여기에 시 예산을 따려면 가톨릭에 대한 상징적 공간도 만들어야 했죠. 이 모든 요구를 라즐로는 한 건물 안에 해결해내면서도 미학적 성취도 빼놓지 않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빛으로 인해 생기는 십자가', 이 문장만 봐도 무엇보다 기독교적 가치를 드러내고 있지 않나요? 높은 층고도 마찬가지고요. 심지어 하수처리 시스템(명칭이 정확히 기억이 안나네요)도 들어가있죠. 그러나 이러한 가치를 자본주의자들은 알아주지 못합니다. 해고되었다가 복직하고, 짐이 설계안을 수정하자고 계속 달라붙고, 해리가 돈 문제로 끊임없이 압박을 주는 상황에 라즐로는 너무나도 지쳐갑니다.
6. 예술을 질투하는 자본
건축에 대해 관심있는 분이라면 'Form follows function'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문구는 건축에 있어서 '기능이 없는 장식 요소들을 넣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근데 이 말을 한 루이스 설리번이란 건축가는 장식 요소를 썼습니다.(Guaranty Building, NY) 이는 기능적 요소는 생각하지 않고 장식만 하려는 '보자르풍 건축'에 대한 비판인데, '보자르풍 건축'이란 20세기 초반 미국에 유행하던 건축 양식으로 미술관, 기차역, 도서관 등등 모든 건물을 유럽 르네상스 시대 쯤 지어진 신전 모양으로 짓던 것을 말합니다. 돈만 있고 근본은 없던 자본주의들이, 자격지심에 결핍을 채우려고 멋져보이는 건물을 지으려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이 영화 <브루탈리스트>안에서도 드러납니다. 뷰런 가의 집이나 에르자벳이 도착하던 기차역의 양식들 기억하시나요? 중세 유럽 신전이나 교회처럼 생겼습니다. 따라한 것이죠. 또 뷰런은 '명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열차 사고가 났을 때 그랬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라즐로를 띄워주지만 사실 자신이 겸손하다는 평을 듣고 싶어한 것이었죠. 영화 초반 라즐로를 다시 찾아온 것도 자기 서재가 잡지에 실려 좋은 평을 받자 그 명예에 중독되어서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라즐로와 해리슨이 이탈리아 채석장에 간 것은 꽤 중요한 사건입니다!(혹시 이 부분이 뜬금없다고 느끼셨을 분들이 있다면). 영화 초반 설계에 대해 논할 때 뷰런 측은 값싼 미국 대리석을 쓰자고 했지만 라즐리는 이탈리아 대리석을 써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자본과 예술성 사이의 대결의 결과가 드러나는 장소가 바로 이 채석장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해리슨이 라즐로를 강간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죠. 저는 여기서 '강간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면 이 장면을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리슨이 게이였는지 같은 부차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강간' 혹은 '성행위'의 상징적 의미라고 생각해요. 성행위는 때때로 정복, 우월감을 주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강제로 한 강간은 이러한 감정이 뒤틀린 형태로 드러난 것이죠. 예술을 질투한 자본이, '너가 틀리고 내가 맞아'라고 말하면서 열등감을 드러내는 장면인 것이죠. 사실 저는 이때 화면이 어두웠기 때문에 해리슨이 벨트 푸는 것까지는 인식을 했는데, 강간을 하는 것인지, 목을 졸라 살해하려는 것인지 바로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둘 중 어떤 상황인지 명확하게 아는 것보다 해리슨이 라즐로에게, 자본이 예술에게 질투심과 열등감을 갖고 있음을 표현하는 장면으로 이해하는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행위는 어쨌거나 명예롭지 못한 짓이고요. 이 사실이 밝혀지자 명성을 중시하던 해리슨은 행방사라지고 맙니다.
7. 그렇다면 예술이 승리하였나? - 시오니즘 풍자
그리고 사라진 해리슨을 찾으러 사람들이 미완성인 커뮤니티 센터로 가죠. 저는 사실 해리슨이 사라지자마자 여기로 갔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라즐로를 증오하는 마음에 이 건물을 부숴버리려고 할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이 건물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한 장치였고, 결국 라즐로가 의도한 대로 빛에 의해 건물 안에 십자가가 비춰지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해리슨은 없어지고, 예술만이 살아남았다'라고 말하는 듯 했지요. 그러나 감독은 여기에 에필로그를 덧붙였습니다. 이후 라즐로는 건축가로서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또 다시 왜곡당하는 유린을 겪고 맙니다. 시오니즘을 상징하는 조피아의 입을 통해서요. 영화내내 조피아가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여러 해설에서 조피아는 시오니즘적인 발언을 할 때만 말을 했다는 점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라즐로의 첫 작품인 커뮤니티센터를 핍박받은 유대인을 표현한 것이라고 자기 멋대로 해석해버립니다. 이때 자기가 이러한 상징성을 놓친 것이나며 당황하신 분들이 있으실 것 같은데, 당황스러운게 맞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라즐로는 영화 내내 유대인에 대한 생각은 일절 없었고 오로지 좋은 건축을 만들려고 했던 '브루탈리스트'였거든요. 조피아는 분명히 왜곡의 의도를 갖고 있었고, 그래서 올바른 설명도 같이 섞어가면서 라즐로의 건축물에 대한 의견과 사실을 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자기 멋대로 의미를 붙여놓는 시오니즘도 자본주의처럼 예술에 대한 폭력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영화 <브루탈리스트>가 잘 짜여진 플롯이며, 긴 러닝타임 중 불필요한 장면은 없이 밀도있게 꽉 채워져있다고 생각합니다. 러닝타임을 줄이면서 필요한 요소를 욱여넣으려고 노력도 많이 했죠. 이민 장면을 롱테이크로 빠르게 보여준다던가, 도로 달리는 장면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표현하면서 크레딧을 보여주었죠. 러닝타임이 길기는 했는데, 길만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장센, 음악적으로도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기억나는 장면이 너무 많습니다. 처음에 자유의 여신상이 나타나는 장면, 서재를 완공하고 신나하는 장면, 마지막 커뮤니티 센터에 빛이 들어오는 장면 등등. '정육면체를 설명하려면 직접 만들어 보여주는게 최고의 방법'이라는 대사는 정말 훌륭한 창작자의 태도를 보여주는 말인 것 같아요. 영화보면서 여러 방면으로 너무 많이 영감받았던, 저에게 충격적으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라즐로 토스가 허구 인물인 걸 알아서 어떤 건축가를 모티브로 한건지 궁금했었는데, 남상문 건축가님이 인스타 스토리에 올려주신 해설에 따르면 마르셀 브로이어, 루돌프 쉰들러, 노이트라, 루이스 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소설 <파운틴헤드> 등이 이민자 건축가인데 그 중 사고로 코가 삐뚫어진 것과 필라델피아 배경은 루이스 칸, 헝가리 출신 바우하우스 졸업생은 마르셀 브로이어, 채석장 및 석탄 노동은 <파운틴헤드> 등을 참고한 것 같다고 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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