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들이 서로 교황 되려고 투닥거리다가 유력 후보들 나락 가고, 힘 잃고
주인공이 될 뻔하나 싶다가 결국엔 다크호스 같은 인물이 뽑혔는데 그마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저는 <콘클라베>의 각본이 상당히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토리 자체만 본다면 '콘클라베'를 주제로 각본을 쓴다고 생각해봤을 때,
그렇게 막 참신하다는 느낌이 들 만한 스토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정석적인 스토리텔링에 가깝지만 흡인력 좋게 텐션을 잘 유지하는 쪽에 가깝지 않나 싶네요.
개인적으로 <콘클라베>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스토리에 '종교'라는 요소를 잘 녹여냈기 때문입니다.
추리극스러운 쫄깃쫄깃한 스토리의 재미와 더불어
종교의 기원, 의의, 한계 등을 고찰해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종교가 '인간의 나약함'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나약함'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가장 핵심적인 나약함은 정신적, 심리적인 부분입니다.
<콘클라베>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 역시 이 '정신적, 심리적 나약함'이라 생각하고요.
물론 종교인은 나약하고, 무교는 강인한 사람이란 뜻은 아닙니다 ㅎㅎ
교황 자리에 관심 없다고 하면서 점점 본심을 드러내는 벨리니
성적 충동을 못 이겨 교황 선거에 출마하지 못할 오점을 남긴 아데예미
교황이 되고 싶어서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수를 쓰고 해임 사실을 속인 트랑블레
처음엔 교황을 할 생각이 없다가 점점 가능성이 높아지니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로렌스
이 4명 모두가 고위 성직자에 해당하는 '추기경'임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나약함을 잘 보여주고 있죠.
"확신은 통합의 강력한 적입니다. 확신은 포용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종국에서는 확신을 두려워하시지 않았던가요? '주여, 주여, 어찌 저를 버리시나이까.' 십자가에 9시간을 매달리신 후 고통 속에서 그렇게 외치셨죠. 우리 신앙이 살아있는 까닭은 정확히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신앙도 필요가 없겠죠."
콘클라베 시작 전 '확신'의 위험함을 이야기한 로렌스의 연설은
끊임없이 의심하며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자문하길 멈추지 말라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 그리고 '종교'라는 제재 두 가지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내용이죠.
언뜻 보면 추리극 같기도 한 이 영화를 통해 캐릭터들의 행동과 상황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위 연설 내용이 러닝타임 내내 와닿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걸 아주 그냥 화룡점정해버리는 결말을 보여주죠.
로렌스는 베니테스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그가 자신보다 훌륭한 교황이 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로렌스를 다시 한 번 시험에 들게 하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들려오죠.
바로 베니테스가 여성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원칙적으로는 가톨릭 신자 남성만이 신부 - 주교 - 추기경을 거쳐 교황이 될 수 있기에
충분히 논란이 될 만한 사안이지만 베니테스가 남성이 아니라고 단언하기도 애매한 상황.
겉으로만 봐선 전혀 문제가 없기에 그냥 혼자 안고 가자니 너무 불편한 진실인 것 같고,
이를 모두에게 밝혀 베니테스의 교황 자격을 박탈하고 자신이 다시 한번 교황직에 도전하자니
그게 과연 옳은 건가 싶은 생각이 들고...
확신을 경계하며 통합과 포용을 가져오려던 진보적인 성향의 로렌스에게
그 통합과 포용의 선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새로운 시험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로렌스의 내면에는 다시 한 번 거센 파도가 일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종교'라는 핵심적인 소재를
그저 콘클라베 열어서 스토리의 큰 틀 잡아주는 설정에만 그치게 하지 않고,
끊임없이 인간의 심리를 흔들고 내면의 한계를 시험하는 모습을 통해
종교의 기원, 의의, 미래, 한계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한 점이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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