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 선호도는 [너의이름은.] >[스즈메의문단속] >>>>>>> [날씨의 아이]입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최근 3작품의 한줄평을 써보자면,
[너의 이름은.] - 청춘 로맨스에 재난을 살짝 끼얹은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 - 청춘 로맨스와 재난을 뒤섞은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 재난 영화에 청춘 로맨스를 살짝 끼얹은 애니메이션
그래서인지 [스즈메의 문단속]은 신카이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개연성이나 심리 묘사가 부족하다는 평이 많이 보이는 것 같고, 저도 거기에 어느 정도는 공감합니다. 단, 저는 그 이유를 감독이 영화에서 추구하는 바가 인간 '관계'의 묘사에서 인간 '성장'의 묘사로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너의 이름은.]은 타키와 미츠하의 로맨스로 끝맺은 반면 [날씨의 아이]는 호다카와 히나의 로맨스보다는 각자의 내면의 성장이 포인트였고, 이번 [스즈메의 문단속]도 스즈메와 소타의 로맨스보다는 스즈메의 성장이 핵심이었으니까요.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개연성 없는 영화만 보면 물어뜯던 저도 스즈메의 행동에 가장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인 '스즈메는 왜 소타가 없는 세상을 못 견딜정도로 그를 좋아하는걸까?'에 대해서도 생각보다 관대하게 넘어갔습니다. 그냥 운명적인 사랑이겠거니 하고요. 일본 로맨스 영화에서 남녀간에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인해 어느 순간 서로에게 미친듯이 빠져드는게 한두번인가요 뭐. [초속 5cm], [언어의 정원]을 만들었던 감독이 이런 식으로 로맨스를 풀어냈다고 하면 실망이지만, 그 기대를 내려놓고 보면 어느 정도는 묵인할 수 있어보입니다. 좀 더 말하자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최근 트렌드에 맞춰 좀 더 대중적인 노선을 택한게 아닐까도 싶습니다. 요즘 웹소설이나 웹툰들을 보면 스토리가 탄탄한 작품보다는 시원한 전개에 빠른 진행이 대세에 가까우니까요. 그래서 영화에서 언급은 되지만 메인 스토리(스즈메의 성장)과는 상관 없는 떡밥은 굳이 회수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ex. 그래서 의자 다리는 왜 3개 뿐인가?) 그거 회수했으면 영화가 더 길어졌을테니까요. 개인적으로 액션 블록버스터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화는 2시간을 넘는 순간 루즈해지고, 그러면 대중에게 외면당한다고 봅니다.
사족을 하나 더 붙이자면, 소타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이유는 2가지일겁니다. 첫째는 어렸을 때 먼 발치에서나마 소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그래서 소타와의 첫만남에서 예전에 만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죠), 둘째는 이례적으로 영화에서 몇번이고 몇번이고 언급되는 소타의 '잘 생긴' 외모 때문이라고 봅니다. 역시 사람은 잘생겨야...
그나마 개연성 부족...이라기보다는 살짝 아쉬웠던 전개를 꼽자면 타마키 이모와의 언쟁과 화해였네요. 재난의 1차 피해자와 2차 피해자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다뤘다는 점 자체는 매우 좋았고 꼭 필요한 요소였다고 봅니다만, 급발진에 이은 급화해를 통한 급마무리가 살짝 갸우뚱했습니다. 꼭 필요한 요소니까 어떻게든 다루고 싶었는데, 막상 이걸 넣을 곳을 못찾다가 영화 마무리에 급하게 넣은 느낌이랄까? 조금만 더 여유를 줘서 풀어냈으면 싶었지만 그러면 영화가 루즈해졌으려나...
그래도 화해 장면에서 타마키 이모가 '그런 마음(스즈메를 원망했던 마음)을 가졌던건 사실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라고 하는건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졌던 적이 없다고 거짓말(부정)하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한다는 점, 하지만 그 마음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점에서 정말 현실적이면서도 감동적이었어요.
어린시절의 스즈메와 여행을 통해 성장한 스즈메, 둘이 속해있는 시간 사이의 공백
(혹은 스즈메 어린시절 기억과 관련된 진실)
을 나타낸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현재의 스즈메는 어렸을 적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던 만남의 진실(남은 하나의 다리)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여행을 통해 찾았고요!